"네가 선생님을 좀 도와주면 좋겠다. 극기훈련은 한 조에 5명씩인데 우리 반은 한 명이 남아서 다른 반과 같이 조를 짜야 할 것 같아."
"저는 1반 **이랑 가장 친해요."
"아, 1반은 다 차서 안 되고 3반엔 친한 친구가 있니?"
"3반에는 oo랑 친해요."
"그래. 그럼 oo와 같은 조로 짜주고 너 조장시켜줄게."
어린 나이라 조장시켜준다는 말에 우쭐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에게도 나쁘지는 않은 제안이었다. 어차피 우리 반에 친한 친구가 없으니 친한 친구가 있는 곳에 가서 2박 3일을 보내는 게 낫겠다 싶었다.
3학년까진 문제없던 학교 생활이었다. 새 학년을 앞두고 반 배정을 할 때마다 친한 친구와 같은 반이 되지 못해 속상해도 학교 생활을 하다 보면 친구를 사귀고 친한 친구도 생기게 마련이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는데 4학년부터 나를 싫어하는 애들이 몇 명 생기더니 5학년부턴 같은 반에 친한 애가 거의 없게 되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같은 반 친구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극기훈련을 가기 며칠 전에 조별로 뭔가를 준비하는 활동이 있어 3반에 갔다. 4명 중 1명은 나와 친한 oo였고 3명은 처음 보는 친구들이었다. 나의 반이 아니라서, 그리고 같은 조에 처음 만난 친구들이 있어 어색했지만 같은 조 친구들과 대화는 잘 통했다. 나에 대한 편견과 적의가 없는 사람을 대하는 것이 아주 편안한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극기훈련은 외부 수련원에 맡긴 활동이었다. 5명씩 짜인 조 순서대로, 교관들의 지시에 따라 걷고 그물을 건너가고 줄을 매달리는 등의 활동을 했다. 힘든 극기훈련이었지만 재미도 있었던 것 같다. 2박 3일 동안 별문제 없이 잘 지내다가 왔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낀 것은 극기훈련을 다녀온 후였다. 우리 반 애들은 극기훈련 후에 그곳에서 있었던 추억에 대해 조잘조잘 얘기했지만 나는 다른 반에 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추억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들이 웃고 떠들 때 나는 철저히 고립되었다. 사진이 나왔을 때도 나는 그곳에 없었다. 우리 반 단체 사진에도, 조별 사진이나 개인 사진에도 없었다. 그때 나는 9반이 아니라 3반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극기훈련에서 찍은 사진을 구경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나의 담임 선생님이 그 반 선생님에게 사진을 받아올 리 만무했다. (그런 세심한 분이었다면 나를 보내지도 않았을 것 같다.) 나는 극기훈련을 다녀와서야 다른 반에 가기로 한 내 선택을 후회했다. 나에게 선택권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전까진 같은 반에 친한 친구가 없는 거라 단순히 생각했던 나는, 알고 보니 선생님도 인정한 공식적 '왕따'*였다.
* 그 당시엔 '왕따'라는 말이 없었다. 몇 년이 흐르고 '왕따'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얼마나 소름이 돋았는지 모른다. '왕따'라는 단어가 출현했을 때 나는 왕따 신세는 면한 상태였지만, 이런 단어를 만든 인간들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체는 있었지만 어휘는 없었던 '왕따'라는 단어가 널리 쓰이게 되면서, 언어로 인해 따돌림이라는 행위가 더 공고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