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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Jun 13. 2022

그래서 우린 친해졌을까?

직장 사람들과 친해질 필요가 있을까?  

직장인들은 직장 내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기 때문에 같은 부서나 팀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는 낫다.   


그렇다면 다른 부서 사람들과도 잘 지내야 할까?  

일이라는 것이 혼자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다른 부서 사람들과 협업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일과 연관되는 타 부서 사람들과도 역시 원만하게 지내면 좋다. 껄끄러운 부탁이나 어려운 얘기를 꺼내야 할 때도 일면식이 없는 사람한테보다 그래도 아는 사람한테 말 꺼내기가 쉽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나오는 미정(김지원 분) 회사의 동호회며 '친밥조(친해지기 밥 모임 조)'도 그런 목적으로 구성된 것이 아닐까 싶다. 동호회 활동 및 뒤풀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타 부서 사람들과 친해지고 직장에 애착을 가지라는 의도일 것이다. 이 회사는 동호회도 모자라 점심시간에 타 부서 사람들과 친해지라고 '친밥조'까지 배정해 준다.  동호회나 친밥조의 순기능이 분명히 있겠지만 내성적인 사람이나 개인주의자에게는 상당히 불편한 일이다. 극 중 박상민 부장(박수영 분)이 친밥조에 대해 심하게 구시렁대는 말은 구구절절 다 맞는 말이라 웃음을 자아낸다.

"밥 먹는 시간까지 사람 부담스럽게. 내가 회사 전 직원 다 알아야 돼? 다른 부서 사람들이랑 친하게 지내서 뭐 하려고? 내 부서 인간들이랑도 힘든 판에. 학교 때 오락부장들만 모아 놨나?"


동호회 활동 안 하는 3인, 그리고 이들과 같은 조가 되어 불만인 1인


이 장면을 보다 보니 옛 기억이 떠오른다. 어느 회사에나 오락부장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꼭 있나 보다. 그 당시에 우리 회사도 '화합'이라는 주제로 많은 강제 친목 활동이 조직적으로 자행(?)되었다. 주관부서는 '화합'의 성과를 내기 위해 많은 활동을 기획하고 활동 후기를 게시판에 올릴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하였다. 우수 후기를 올린 팀에는 소정의 상품도 지급했다.  


부서원들끼리 친해지는 시간을 가지라고 한 달에 한 번 오후에 공식적인 친목의 시간을 주고 떡볶이나 핫도그라도 사 먹을 돈을 쥐어주니 거기까지는 즐겁게 활동에 임할 수 있었다.

(사실 즐겁기만 한 건 아니었다.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일부 사람들의 말을 듣느라 앉아있느니 빨리 일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한 적도 수 차례 있었다.)

그러나 다음 활동에 비하면 이것은 예고편! 애교에 불과했다.


다음 화합은 '팀 자매결연 활동'이었다. (공식 명칭은 아니었지만 여기선 이 명칭으로 사용한다.)

먼저, 자매결연을 맺기를 희망하는 팀에 메일을 보낸다.  

"우리 팀이랑 자매결연 맺지 않을래?"

"어, 그래."

라는 메일이 오면 자매결연 성공!

"미안. 먼저 맺기로 한 팀이 있어서."

이렇게 되면 자매결연 실패! 다른 팀을 찾아야 한다.

(실제 메일이 저렇지는 않았다. 재미를 위해 반말 구어로 각색하였다.)  


그래서 뭘 하느냐? 자매결연을 하는 두 팀은 만나서 운동이나 문화 활동 등 특별한 활동을 한다. '부어라 마셔라' 회식은 '두 팀이 건전하게 화합한다'는 취지에서 어긋나므로 지양해야 한다.

내 입장에선 처음 보는 사람들과 차라리 '부어라 마셔라'가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부끄러움과 뻘쭘함을 술로 날려 버리자!!

   


어쨌든 나의 팀은 팀장님의 동기가 팀장으로 계신 팀과 자매결연을 맺었다.

"건너편 팀에다 제안해 봐. 팀장이 내 동기라서가 아니라 여러분이 어느 팀과 모일지 못 정하고 있으니까 의견 주는 거야. 일하다 보면 저쪽 팀이랑 연락할 일이 있으니까 이 기회에 알아두면 좋지, 뭐." 


우리 사무실과 그 팀 사무실은 복도를 사이에 끼고 있었지만 교류는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팀장님의 제안으로 그 팀과의 자매결연이 성사되었다. 야구를 보러 갈까, 공연을 보러 갈까, 주말에 합동 체육대회를 할까 등등 많은 의견이 나왔지만 우리 팀 주최측(과장 1, 대리 2 - 나는 그때 대리였다.)의 목표는 유일했다. '무조건 평일에, 최대한 덜 민망하고 빨리 끝낼 모임을 만든다!'  

야구는 경기장도 멀고 연장전까지 가면 5시간까지도 걸릴 수 있으니 불합격이었다. 공연은 마땅한 공연을 찾기가 어려웠고 공연장까지 거리가 있어 탈락이었다. 주말에 하는 모든 활동은 무조건 제외하였다.


그렇게 정한 활동이 바로 저녁 식사와 영화 관람이었다. 물론 영화관은 회사 근처였다. 일정 금액이 회사로부터 지원되었으므로 영화표는 리클라이너가 있는 좋은 영화관의 표로 예매하였다. 안 그래도 가기 싫은 모임인데, 평소에 못 가 본 '좋은 극장' 가는 기쁨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드디어 모임 D-Day가 되었다. 우리는 멕시칸 식당에 갔다.

"자리를 어떻게 앉지? 뭐 뽑기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우리 팀장님은 왠지 신나 보였다.

"김 팀장, 뽑기 이벤트를 준비한 거야?"

자매(?) 팀장님도 신나 보였다.


"네? 아뇨, 그런 건 없고요. 그냥 적당히 섞어서 앉으시면 되는데요."

모임을 준비하신 과장님은 다소 난감한 듯 웃으며 안내했지만 나는 그 말에서 지긋지긋함을 읽을 수 있었다.


맥주 한 잔과 타코, 브리또, 화이타 등을 앞에 두고 약 스무 명의 인원이 웃으며 대화했다. 진심으로 즐겁게 웃은 누군가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치열하게 노력했다.

'이 대화가 끊어져서는 안 된다. 대화가 끊어지기 전에 다음 주제를 자연스럽게 얘기해야 한다.'

양 팀의 업무가 많이 달랐으므로 각자의 팀에서 담당하는 업무와 애로사항 등이 언급되었다.

(원래는) 맛있는 멕시칸 음식이 맛있는지 맛없는지도 모른 채 식사가 끝났다.




이제 영화를 볼 시간. 드디어 해방되는 시간인가 했더니 그럴 리가 없었다.

"두 팀이 화합해야 하니까 자리라도 같이 앉아야 하는 거 아니야?"

라는 누군가의 말에 우리 팀과 자매결연 팀은 한 명씩 조를 이루었다.

다행히 우리 팀은 그쪽 팀보다 인원이 많은 관계로 나는 우리 팀원과 앉게 되었다!


이미지 출처: 롯데시네마


아직 안 친해진 이와 짝을 이루어 영화를 봐야 하는 매우 불편한 상황이었음에도 사람들은 극장에 들어서서 저마다 들뜬 목소리로 "나 이런 데 처음 와봐."라고 말했다. 


나는 그나마 같은 팀원과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가장 상황이 좋았다. 등받이도 살짝 내리고 발판도 올려서 편안한 자세로 시청했으니 다른 사람들에 비해 양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편하진 않았다. 안 어울리는 편안함이 주는 불편함이랄까. 영화가 끝나고 다른 사람들 얘기를 들어 보니 다들 정자세로 꼿꼿이 앉아 영화를 봤단다. 저 편안한 의자를 두고.


그때 봤던 영화 (봤는데도 기억이 안 남)


영화가 끝나고서 한 잔 하러 가자는 팀장님의 제안은 다행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우리 팀이나 저쪽 팀이나 낯선 이들과의 몇 시간은 체력과 정신력을 방전시키기 충분했었나 보다. 우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갔다.



그래서... 우린 친해졌을까?

그럴 리가! 한 번의 짧은 만남으로 친목이 다져질 리 없었다. 그렇다고 이 불편한 모임을 두 번 이상 이어갈 사람은 없었다. 자매결연을 잠시 맺었던 팀원들과 복도를 오가며 인사를 하고 함께 느낀 전우애의 눈빛을 보내는 것으로 충분했다.


11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어색한 공기가 생생하게 생각나는 걸 보니 많이 불편했나 보다. 이토록 강렬한 이벤트를 기획한 직원들은 칭찬받고 진급하고 승승장구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기획했던 오락부장 나와!)


우리 그냥 일만 하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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