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태가 생일 파티에 나를 초대했다. 지태는 같은 유치원을 다녔던 친구다. 유치원을 졸업하고 매주 토요일 성당 어린이 미사에서 지태를 봤지만, 인사 정도만 나누었고 지태와 특별히 대화를 할 일은 없었다. 지태가 신부님 옆에서 복사를 서는구나, 그 정도의 인지 뿐이었다. 그 당시 성당을 열심히 다니는 남자애들은 대부분 복사단이었다. 6학년에 지태와 같은 반이 되고 몇 달이 지나도록 지태와 대화해본 기억이 없었는데, 지태가 갑자기 생일 파티 초대장을 건넨 것이다.
지태가 무슨 생각으로 자기 생일에 나를 초대했는지 모를 일이다. 6학년 때 나의 입지를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다. 나는 우리 반에서 친한 친구가 없었다. 친한 친구는커녕 공식적 외톨이에 가까웠다. 은연중에 이루어지는 따돌림이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된 일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도 우리 반 애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반 분위기는 학기 초 반장 선거 때부터 좀 이상했다. 고지식한 내가 보기에 선웅이는 반장감이 아니었다. 학급 임원은 성적도 어느 정도 좋고 타의 모범이 되는 학생이 되어야 하는 것 같은데, 선웅이는 공부에 관심도 없는 데다 까불이였기 때문이다. 그런 선웅이가 압도적 표를 얻어 반장이 된 건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알고 보니 6학년의 반장 선거는 인기 투표였다. 쌍꺼풀이 진하고 예쁘장하게 생긴 선웅이가 인기가 많았던 것이다. 사회성이나 이성에 대한 관심 면에서 또래보다 한참 뒤떨어진 나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은 그뒤로도 이어졌다. 여자애들은 남자애들한테 잘 보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고 일부 남자애들도 그런 관심을 즐겼다. 학기 초에는 그런 애들이 소수의 세력이라 나는 그네들을 그저 ‘까진 애’, ‘날라리’ 등으로 생각했는데, 소수는 어느새 주류가 되어 우리 반 전체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던 우리 반 주류 세력 여자애들이 나에게 다정하게 말 걸었던 때가 생각난다. 같은 반 남자애들이 뜬금없이 낄낄대며 나를 놀렸다.
- 얼레리 꼴레리, 옆 반 원석이가 너 좋아한대!
원석이가 누구람. 대화 한 번 해본 적 없는, 같은 반도 아니라 누군지도 모르는 애인데. 나는 당황스러움과 창피함에 엎드려 울었다. 그러자 여자애들이 다가와 나를 위로해줬다.
- 울지 마. 이거 울 일 아니야. 근데 원석이랑은 친해? 언제부터 친했어?
내 어깨를 토닥여주는 다정한 손길이 소름 끼쳤다. 이런 일이 있어야만 나의 존재감이 드러나는구나. 며칠 후인지, 몇 주 후인지 원석이란 애가 더 이상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면서 나의 존재감은 다시 흐려졌다.
애들은 생일이 되면 친구들을 초대했다. 나는 늘 초대받지 못해 속이 쓰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생일 초대를 받지 못한 게 나만은 아니었을 텐데, 그땐 나 혼자만 배제되는 기분이었다. 쓰린 마음을 속이고자 나는 생일 파티 따위 관심 없다고 자기 합리화도 해보았다. 내 생일이 1월이라 생일에 누구를 초대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주말이 지나고 나면 지난 주말 벌어진 생일 파티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 토요일에 엘팅 진짜 재밌었지?
나는 엘팅이 뭔지 궁금했지만 직접 물을 수 없었으므로 잠잠히 엿들었다. 엘팅은 엘리베이터 미팅의 줄임말이었다. 남자애들이 층을 정해 서 있고 여자애들이 엘리베이터의 층을 랜덤으로 눌렀다가 내려서 파트너를 정하는 미팅이었다. 그 당시 내가 살던 도시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5층 짜리 주공아파트가 아파트의 전부였다가 1, 2년 전부터 15층 짜리 고층 신축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애들은 신문물인 엘리베이터로 나름대로의 놀이를 만든 것이었다.
정상이 아니야, 집단으로 미쳤나 봐, 나는 진짜 쟤네들이랑 안 맞아.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지태의 생일은 엘팅의 열풍이 잠잠해질 무렵이자, 내가 애들한테 생일 파티에 초대될 거란 기대를 아예 접고 있을 때였다. 유일하게 대화하던 친구마저 2학기 들어 학교에선 나와 대화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지태로부터 생일 파티 초대장을 받았으니 믿을 수가 없었다. 지태의 용기가 가상했고, 나를 왜 초대하는지 궁금했다. 무엇보다 기뻤다. 생일 파티에 초대받은 게 얼마 만이야? 2년 만, 3년 만?
막상 생일 파티에 가려고 생각하니 내가 가도 괜찮을까 걱정이 되었다. 지태가 어울려 노는 친구들은 우리 반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애들이었다. 그러나 나를 초대해준 지태의 호의를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생일 파티라는 곳에 가고 싶었다. 그동안 생일 파티 따위 관심 없다고 무수히 많이 자기 최면을 걸었지만, 사실은 친구들과 김밥이랑 치킨을 먹고, 선물을 주고, 놀이터에서 놀고 싶었다.
문구점에서 천 원짜리 생일선물세트를 샀다. 연필, 지우개, 자 등이 들어 있는 문구류 선물세트다. 90년대에 생일 파티에 갈 때는 그 선물세트를 들고 가는 게 국룰이었다. 선물세트를 사서 지태네 집에 갔다.
선웅이, 민호, 보라, 현아 등이 있었다. 생일 파티에 참석한 여자는 나까지 네 명이었고, 남자는 세 명이었다. 아마도 남녀의 짝을 맞춰 초대한 것 같았다. 보라와 현아는 어른을 흉내낸 듯한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고, 보라는 빵모자까지 쓰고 멋을 냈다. 나를 보자마자 보라는 현아에게 말했다.
- 쟤는 왜 왔어?
예상을 전혀 못한 건 아니지만 막상 직접적으로 들으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말보다 아픈 건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나자신이었다. 남자든 여자든 한껏 꾸민 복장이었는데 나만 초라해 보였다. 왔는데 바로 갈 수는 없으니 태연한 척 했다.
선물 증정 시간이 되었다. 보라는 지태에게 꽃다발을 내밀었다. 다른 애들도 선물 세트가 아닌 멋스러운 선물들을 건넸다. 천 원짜리 선물세트를 가져온 사람은 나뿐이었다. 얘는 뭐 촌스럽게 이런 걸 갖고 왔나, 라는 시선을 이겨내고 지태에게 선물을 건넸다. 애들이 놀이터에 나가서 논다고 하길래 나는 성당에 가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먼저 집에 갔다. 나를 붙잡는 사람은 없었다. 지태는 이런 상황을 만들어 미안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지태는 나를 다른 친구들과 다를 바 없는 그냥 친구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학급에서 소외된 한 명이라는 걸 인지하기엔 둔했는지도 모른다. 지태의 그 둔함이, 무심함이, 눈치 없음이 두고두고 고마웠다. 근 1년 동안 내가 유일하게 받은 호의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