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신촌 기차역으로 향했다. 충동적인 발걸음에 실연의 아픔을 훌훌 털어내고 싶다는 의지를 싣고, 언젠가 꼭 한 번은 혼자 여행하고 싶었다는 명분도 싣는다.
신촌 기차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는 문산행과 의정부행이 있다. 문산은 서울의 서북쪽, 의정부는 서울의 동북쪽. 그녀가 아는 건 그 정도다. 어차피 두 곳 다 가본 적이 없으므로 어딜 가도 괜찮다. 그냥 혼자 떠날 수만 있다면. 시간표를 보니 문산행 기차는 이미 끝났고 의정부행만 남아 있다.
기차표 한 장이요.
'한'이라는 말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한 명이요, 식당에 들어갔을 때도, 기차표 한 장이요, 기차역에서 표 살 때도.
간이역 느낌의 신촌 기차역에 앉아 열차를 기다린다. 목적도 없이 이리 떠나는 게 맞나, 확신이 없지만 그녀 나름대로는 다 계산을 한 것이다. 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이며 시험 기간도 아니고 다음날에 제출해야 할 과제가없는 날, 오늘은 다시없을 기회다.
막상 기차를 타니 신이 난다. 얼마 만에 타보는 기차던가. 기차에 앉아 밖을 바라본다. 기차는 연세대 앞 다리를 지난다. 다리를 지나는 기차를 늘 밖에서만 봤는데, 오늘은 기차 안에서 밖을 본다. 기차 안에서 본 신촌 거리는, 북적이는 풍경에 걸맞지 않게 고요하다.
기차는 서고 또 선다. 차창 밖의 풍경이 빠르게 바뀌면 상념에 빠지겠노라고 그녀는 다짐했건만 그녀의 다짐은 실현되지 않는다. 이렇게 많은 역에설 바엔 걸어가는 게 더 빠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 기차를 왜 탔지,라는 생각이 들 무렵 기차는 송추역으로 향한다. 기차는 계곡 바로 옆을 달린다. 마을도, 계곡도 기찻길에서 몇 걸음이다. 에이 거짓말! 너무 신기하지 않아? 일행이 있었다면 외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 싱글벙글 거릴 뿐이다. 거짓말 같은 풍경은 송추역까지 이어진다. 역사 바로 옆이 민가다. 이상할 것도 없이 그냥 그렇게 되어 있다. 이 모습을 보려고 내가 기차를 탔구나.
신기한 풍경은 금방 끝이 난다.
이번 역은 우리 열차의 종착역인 의정부, 의정부역입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도시의 모습이 펼쳐진다. 방금 전까지 봤던 풍경이 허상인 것처럼 느껴진다.
의정부역에 내리자 수많은 군인들이 눈에 들어온다.
와! 의정부에 군부대가 있어?
그녀 평생에 구경할 군인을 다 본 느낌이다. 군인이어봤자 제 또래거나 한두 살 위겠으나, 군복을 입은 사람들을 보니 왠지 무섭다.
집에 갈 생각을 하니 까마득하다. 의정부에서 집까지 지하철을 타면 족히 두 시간은 걸릴 것이다.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지는 해를 보니 그제야 허기가 몰려온다. 아는 것 없고 돈도 없는 대학생은 롯데리아에 들어가 햄버거를 먹는다. 여기도 군인, 저기도 군인. 군인들 사이에 앉아 햄버거를 먹는다.
그녀는 그 광경이 조금 웃겨 혼자 웃었다. 헛짓거리 같긴 하지만 그래도 혼자 여행하고 싶다는 로망을 이룬 하루다. 그녀는 먼 훗날 이 여행을 기차, 계곡, 군인으로 기억할 것이다.
+ 지금은 신촌 기차역이 경의선 신촌역으로 바뀌어 기차는 다니지 않고, 송추역 또한 2004년 이후 운행 중단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