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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May 30. 2022

신촌 나들이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 방문기

지하철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주말이면 지하철 모험(?)을 떠나곤 했다. 1호선부터 9호선, 공항철도와 분당선, 신분당선, 경의중앙선, 의정부 경전철, 우이신설선 등 웬만한 지하철은 다 타 봤다. 도장깨기 하듯이 안 타본 지하철 노선을 타러 다녔다. 코로나 기간에는 애들을 데리고 지하철을 타기가 위험할 듯하여 지난 2년 간은 지하철 모험을 자주 떠나지 못했다.  


수도권 지하철은 이미 빼곡히 많은데, 새로운 노선이 자꾸 생긴다. 큰 아이는 우리가 안 타본 경강선, 서해선, 용인 에버라인 등을 언젠가는 타자고 주장하는데 이번 주말에 신림선이 새로 생기면서 위시 리스트에 신림선이 추가되었다.  

 

수도권 지하철 노선도


지하철 모험을 다녀오면 피곤해서 한동안 주말에 움직이기 싫다. 그러나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힘들었던 건 까먹고 좋은 기억만 남는다. 그렇게 또 지하철을 타러 간다.


이번 주말 행선지는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이다.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이 5살 즈음 공룡을 좋아하다가 나이가 들면서 공룡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진다. 우리 집 아이들도 그랬는데 아이들이 얼마 전부터 다시 공룡에 관심을 가지며 공룡백과 책을 읽어 달라고 하였다. 여러 번 읽어 너덜너덜해진 책을 또 부여잡았다. 책과 장난감으로만 접했던 공룡을 화석으로 만나면 아이들이 좋아하겠지, 싶어 내가 다 신이 난다.




내가 아이 둘을 데리고 지하철을 타보면 감사하게도 많은 어른들이 자리를 비켜 주시곤 한다. 이번에도 호의적인 분들을 만나 아이들이 편히 앉아 갔다. 나는 내내 서서 갔지만 아이들이라도 앉을 수 있는 게 어디인가!


2호선 신형 열차의 안내 모니터


신촌역에 도착했다. 얼마 만에 와보는 신촌역인지.

옛날에 술 마시고 신촌역에서 지하철을 타면 꼭 반대 방향 열차를 타곤 했다. "이번 역은 이대, 이대역입니다." 해야 하는데 "이번 역은 홍대입구, 홍대입구역입니다."라는 방송을 듣고서야 잘못 탔음을 인지했다. 몇 번 잘못 탔던 경험이 있어서 각별히 유의를 하며 지하철을 탔는데도 반대 방향 열차였다. 신촌역은 진짜 '이상한 역'이었다. (신촌역은 죄가 없다. 내가 취한 거였다.)


신촌역에 와본 김에 현대백화점, 연세대 앞, 이대 앞까지 쭉 둘러보고 싶었으나 언감생심이다. 얘네들의 원성을 듣느니 내 추억 여행을 포기하는 편이 낫다. 점심때가 된지라 아이들은 배고프다고 난리다. 신촌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기 전에 우동 집에 들어갔다. 아이들이 먹을 새우튀김우동과 돈까스, 내가 먹을 냉우동을 주문하고 앉으니 토이(윤하)의 '오늘 서울 하늘은 하루 종일 맑음'이 흘러나온다. 캬아!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노래다. 이 노래를 들으니 감성이 촉촉해지는 느낌이었지만, 그것도 잠시. 작은 아이가 포크를 바닥에 떨어뜨린다. 숟가락이나 포크를 떨어뜨리는 것은 식당에서의 통과의례 같은 건가?   


"포크를 안 떨어뜨릴 순 없는 거야?"

한 마디를 하며 일어났더니 아이도 지지 않는다.

"아니, 이건 실수잖아. 내가 떨어뜨리려고 한 게 아니잖아."


이 우동 가게는 젓가락만 비치되어 있어서 가게 사장님 (혹은 직원)한테 일부러 얘기하여 포크를 받아온 거였는데 새 걸 받으러 가려니 영 눈치가 보인다. 새로 포크를 받아와서 작은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아까 그 포크가 무거워서 떨어졌나 봐요. 이 포크는 가볍네요."

큰 아이가 분위기를 풀어주려고 말한다.

"그래, 포크 손잡이가 무거워서 그랬구나. 이제 먹어라."


이제야 나도 냉우동을 한 젓가락 든다. 이번엔 큰 아이가 "악!" 한다. 혀를 깨물었단다.

"어디 봐봐. 어, 아프겠다. 좀 빨개졌네."

"어디? 어디? 나도 보여줘."

작은 아이가 형에게 혀를 보여달라고 하니 형이 싫다며 계속 밥을 먹는다.

"왜? 왜 나만 안 보여줘? 나는 혀 깨물었을 때 형이 보여달라고 해서 보여줬는데 왜 나는 안 보여줘? 불공평해!"

하아. 뭐 좋은 구경이라고 혀 깨문 걸 보겠다고 저러는 걸까? 식사하는 젊은이들, 미안합니다.


정신이 없었지만 나도 냉우동 한 그릇을 다 비우고 아이들도 우동과 돈까스를 다 먹었다. 아, 새우튀김 우동의 핵심인 새우튀김은 둘 다 먹지 않아서 내 몫이 되었다. 자기네가 생각한 맛이 아니었다나? 물에 빠진 튀김은 튀김으로 인정이 안 되나 보다.




신촌역 4번 출구에서 서대문 03번 마을버스를 타고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 정류장에서 내렸다. 그곳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주 가파른 언덕이었다.

"어후, 이건 완전 등산인데!"

가파른 언덕 하나를 오르니 또 하나의 언덕이 나온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이 왜 이리 험난한지. 우리 그냥 자연사박물관에 가게 해주세요~ 땀을 뻘뻘 흘리며 자연사박물관에 도착했다.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


1층 로비에 들어가니 대형 아크로칸토사우루스 모형이 우리를 맞이한다. 아이들은 이렇게 큰 공룡을 처음 봤으므로 흥미를 보인다.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의 관람은 3층부터 2층, 1층의 순서로 하게 되어 있었다. 3층은 우주 섹션이다. 빅뱅부터 우주가 시작되어 태양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영상부터 원소주기율표, 태양계 행성 등 우주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이라면 즐거워할 만한 공간이다.


2층은 생물 섹션이다. 삼엽충 등 고생대 생물, 공룡 등 중생대 생물의 화석부터 현시대의 동식물, 곤충의 모형이 한가득이다. 각종 암석도 전시되어 있어서 학교에서 얼마 전에 퇴적암을 배운 초 4 큰 아이가 흥미를 많이 보였다.


1층은 인간과 자연 섹션이었는데, 지구를 보호하자는 교훈을 주는 공간이었다. 3층과 2층을 열광적으로 보던 아이들과 나는 1층은 보는 둥 마는 둥하며 지나쳤다. 1층에는 3D 관람관이 있어서 입체 안경을 쓰고 만화를 보았다. 엄마를 잃어버린 아기 공룡이 엄마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이야기였는데, 나는 어찌나 피곤했던지 티라노가 이빨을 보이며 나한테 얼굴을 확 들이밀어 놀래켜도 눈이 계속 감겼다.   


사진에 비협조적인 아들들


마을버스를 타러 내려가는 길에 아이들이 말한다.

"여기 다시는 오지 말자."

"왜? 별로였어?"

"아니, 그게 아니고 이 언덕을 다시 올라오기 싫어."

"그럼 다음엔 아빠랑 차 타고 오자."

"엄마, 신촌역에서 택시 타고 와도 되지 않아?"

"그래. 다음엔 택시 타자!"


마을버스를 타고 이번엔 2호선 신촌역이 아닌, 경의중앙선 신촌역에 내렸다. 집에 갈 때는 올 때와 다른 지하철을 타고 싶다는 큰 아이의 강력한 요구 때문이었다. 나 역시 옛날에 간이역 같던 신촌 기차역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했다.


경의중앙선 신촌역


"어머어머, 신촌역이 이렇게 바뀌었어? 옛날 신촌 기차역이 신촌관광안내센터가 되었네. 얘들아, 저 지붕 있는 데가 원래 기차역이었어. 저기로 들어가서 표 끊고 바로 나가면 기찻길이 있었어."

"에이, 거짓말. 저게 기차역이었다고?"

애들이 내 말을 불신한다. 이래 봬도 엄마가 22년 전에 혼자 여행해 보겠답시고 저 신촌역에서 기차 타고 의정부까지 갔다가 군인들 바글거리는 의정부 롯데리아에서 햄버거 먹고 집에 왔던 사람이야!

쓸데없는 말은 속으로 넣어두고 집으로 향한다.


장장 7시간의 지하철 모험이 끝났다. 이렇게 아이들과의 추억 하나를 더했다.



토이(윤하), 오늘 서울 하늘은 하루 종일 맑음

https://youtu.be/wxw2tFXU1zk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 안에는 식당이 없으며, 주변 도보 거리에도 식당이 없어 보임. 박물관 1층 카페는 정비 시간이 있다고 하여 이용하지 못함. 박물관 근처 교회에 카페가 있는데 깨끗하고 비교적 넓음. 커피와 스무디도 맛이 괜찮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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