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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Jun 19. 2022

나의 여행 성장기(3)

남편 없이 아이들과 떠난 여행

오전에 작은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느라 진이 빠져 얼마 놀지 않았는데도 배가 고팠다. 하긴 서서 지하철을 타고 오는 것만 해도 에너지가 어마어마했을 거다.


점심을 먹으며 쉬는데 춥다! 최근 열흘 중 오늘이 가장 좋은 날씨였지만, 구름이 끼고 바람이 간간이 불어 추웠다. 그나마 수영장이 온수라 물에 들어가 있을 때는 따뜻하지만 밖에 나오면 물이 바람에 마르면서 추웠다. 그래도 오후엔 해가 난다고 하니 기대를 해보기로 했다.


오후가 되니 해가 나고 사람도 많아졌다. 튜브를 들고 수심이 135m인 깊은 물에 가서 놀았다. 작은 아이는 튜브에 한참 매달리느라 팔꿈치가 아프다고 했지만 그래도 즐거워 했고, 수영을 배우고 있는 큰 아이는 물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잘 놀았다.


우리는 '화성과 위성' 놀이를 했다. 내가 화성인 '아레스'고, 아이들이 '아레스'의 아들이자, 화성의 위성인 '데이모스'와 '포보스' 역할을 했다. 위성은 화성 주변을 돌아야 하는데, 위성들이 정상 궤도를 이탈하여 달아나면 가서 잡아서 화성 곁에 두는 놀이이다.

"막내 포보스 자꾸 어디 가냐? 궤도를 이탈하지 말고 이리 와!!!"

"데이모스인 제가 포보스를 데려오겠습니다."

과학과 그리스 신화가 결합된 고품격 놀이 같지만 사실은 단순한 잡기 놀이였다.




10시 30분에 입장하여 5시까지 유아풀과 성인풀, 그리고 온탕을 왔다갔다 하며 잘 놀았다. 튜브 바람을 빼고 썬베드의 짐을 다 정리한 후 아이들과 나는 각자의 샤워실로 향했다. 수영장에 아이들을 데려오기 전에 가장 걱정했던 게 바로 이것이었다. 나와 아이들의 성별이 달라 샤워실을 따로 써야 한다는 것. 우리 가족은 풀빌라 펜션, 호텔 등 수영 후 방에서 바로 씻을 수 있는 곳으로 여행을 가곤 했다. 바깥 샤워실에서 씻는 것도 낯선데 보호자가 없어서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우려되었지만, 매주 수영을 배우러 다니는 큰 아이를 믿기로 했다.

"락커 키는 어떻게 해요?"

"응, 손목에 잘 걸어. 잘 씻고 나와. 이따 보자."


천근만근인 몸을 이끌고 천근만근인 짐을 들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수영복을 벗는데 손목에 건 락커키가 걸리작거려서 키를 잠시 락커에 올려놨다. 옷을 벗어서 락커에 넣고 문을 자연스레 닫자 "띠리링" 소리가 나며 문이 잠긴다. '앗! 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문이 닫히고 난 뒤였다. 직원을 찾아봐도 직원이 안 보였다. 빨리 씻고 나가서 아이들을 기다리려 했는데, 이를 어쩐다? 아이들도 혹시 나처럼 이런 일을 겪고 있는 건 아닐까? 애들이 다 씻고 먼저 나와서 나를 한참 기다리면 어쩌지? 오만 생각이 다 들어서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알몸인 상태로 직원을 찾으러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답답했다. 나는 수영복을 입고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에게 부탁했다.

"저기... 락커 키를 안에 넣고 문을 닫아서 문이 잠겼는데요. 밖에 나가서 직원에게 말씀 좀 해주세요."

"아, 네. 그럴게요."

그분은 밖에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 직원에게 말했으니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나갔다. 빨리 샤워를 해야 하는데 샤워하러 가면 직원을 만나지 못할 테니 계속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나는 한참 후라고 느꼈지만) 직원이 와서 락커 번호와 내 신원을 확인한 후 다시 마스터키를 가지러 갔다. 또 잠시 후 (역시 한참 후라고 느꼈다.) 직원이 다시 와서 락커 문을 열어주었고, 나는 문 열리는 소리에 환호성을 지를 뻔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씻고 나오니 아이들이 먼저 나와 있었다.

"얘들아, 나온 지 오래 됐니?"

"아뇨, 저희 방금 나왔어요. 제가 규가 잘 씻을 수 있게 도와줬어요. 탈수기가 있어서 수영복 탈수도 했어요."

큰 아이 건이의 말에 눈물이 날 뻔했다. 오구오구, 엄마가 락커 사건으로 혼이 빠진 동안 너희들은 참 잘하고 있었구나.

"형아가 지도해 줘서 잘 씻었어."

작은 아이 규도 정말 기특하다고 폭풍 칭찬을 해주는데!

"근데 엄마, 형아 수영 모자는?"

"뭐? 아 맞다, 아까 네가 형 수영 모자 갖고 논다고 잠깐 달라고 했잖아. 어디다 놨어?"

"몰라."

"아니, 왜 몰라? 네가 갖고 놀았잖아."

"몰라."


아까 내가 튜브 바람을 빼러 갈 때 큰 아이는 "제가 도와 드릴게요."라며 나를 따라 나섰고, 작은 아이는 "나 가지고 놀게 형아 수영 모자 줘."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그리고 그 모자가 어디 갔는지 기억이 안 난단다. 하는 수 없이 온탕과 유아풀, 우리가 앉았던 썬베드에 다시 가서 살펴보았으나 어디에도 없었다.

"수영 모자 잃어버렸네. 마지막에 갖고 있는 사람이 책임져서 챙겨야지!"

"아니, 엄마. 형아는 내가 잃어버렸다고 했더니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해줬는데 엄마는 왜 그래?"

"형은 자기 돈을 안 써서지. 수영 모자 다시 사려면 엄마가 돈 쓰잖아. 그리고 형은 수영장에서 받은 모자가 있어서 평소엔 그 모자 쓰거든. 오늘 잃어버린 수영 모자는 규 수영 등록하면 씌우려고 했던 건데."


관대한 큰 아이를 칭찬하고 작은 아이한테 괜찮다고 하면 좋았을 걸, 모자란 엄마는 이렇게  구시렁대고야 만다. 그러다가 기분 좋게 잘 놀고 나서 이런 걸로 오래 기분 상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서둘러 말을 정정하여 함께 기분을 풀었다.

"그래. 건이가 동생 걱정하지 않게 괜찮다고 말해준 건 정말 잘했어. 그리고 규는 이번에 물건을 잃어버린 건 어쩔 수 없지만 다음엔 잘 챙기자."




남편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처음으로 떠난 여행은 롤러코스터를 처음 타기 전처럼 긴장되고 떨렸다. 날씨, 짐, 이동편, 샤워 등 여러 가지 걸리는 게 많았다.


그러나 날씨는 다행히 괜찮았고 나와 아이들도 잘 해냈다. 비록 아이와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당황스러운 일도 있었지만 이 정도면 잘 헤쳐나갔다고 본다. 작은 도전을 해냈을 때의 뿌듯함이 우리를 성장시키는 듯하다. 이번 여행으로 나와 아이들의 여행 능력이 +1 향상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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