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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Jun 29. 2022

이 말이 문득 궁금하다면

조항범, <우리말 어원 사전>을 읽고

정육점에 갈 때마다, 고깃집을 지날 때마다 궁금했다. '갈매기살'은 갈매기 고기도 아닌데 왜 '갈매기살'일까? '젓가락'은 'ㅅ' 받침인데 '숟가락'은 왜 'ㄷ' 받침을 쓸까? 제육볶음의 '제육'은 '돼지고기'라는 한자를 생각하면 '저육'이어야 맞는데 왜 '제육'으로 부를까?


궁금하면 집요하게 찾아보면 될 텐데, 나의 호기심이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잠깐의 궁금함은 어차피 잠시 후면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아이들도 묻기 시작했다.

"엄마, 저 고깃집에서 갈매기 고기를 판대. 갈매기 고기도 먹어?"

"아니야. 갈매기살이 갈매기 고기가 아니고 부위 이름이야."

"근데 왜 갈매기살이라고 불러?"

"그러게. 왜 그렇게 부르지?"


도서관을 갔다가 우연히 찾은 <우리말 어원 사전>을 보고 이거다 싶었다. 평소의 궁금함도 해결하고 잘 알아두면 유식한 척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될 듯하였다.


이 책은 제목에 '사전'이란 말이 들어있지만 사전처럼 딱딱하지는 않다. <문화일보>에 연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엮은 책이라 칼럼을 읽듯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물론 '구개음화', '원순화', '모음 탈락' 등 일부 국어 용어들이 나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용어의 의미만 알면 어원의 변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었는데 목차를 보고 궁금한 단어들만 뽑아서 읽어도 될 것 같다. 어떤 말이 왜 그렇게 쓰이는지 문득 궁금해진다면 이 책이 꽤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다.


내가 재미있게 읽은 단어의 어원을 요약해 보았다.


갈매기살 

소나 돼지의 횡격막에 붙어있는 살. 한자어 '횡격말'의 고유어가 '가로막'인데, '가로막살'이 '가로마기살'을 거쳐 '가로매기살'로 변한 뒤에 '갈매기살'로 불리게 됨.


수육

한자어 '숙육(熟肉)'에 뿌리를 둔 말. '삶은 고기'인 '숙육'은 중세국어에서 '슉ㅿㅠㄱ'*으로 발음되고 이후 'ㅿ(반치음)'이 소실되어 '슉육'으로 변한 후 '슉육'에서 동음 'ㄱ'이 탈락하여 '슈육'이 된 다음 '슈육'의 제1음절 모음이 단모음화되어 '수육'이 됨.  


제육볶음

돼지고기 '저육(豬肉)'으로 만든 음식. '豬肉'의 중세국어 음은 '뎌ㅿㅠㄱ(뎌육)'* 또는 '뎨ㅿㅠㄱ(뎨육)'*이었을 것으로 추정됨. 이후 '뎌ㅿㅠㄱ'은 '뎌육', '져육'을 거쳐 현재의 '저육'으로 이어지고 '뎨ㅿㅠㄱ'은 '뎨육', '졔육'을 거쳐 현재의 '제육'으로 이어짐. '뎌육'과 '뎨육'은 20세기 초까지는 같이 쓰였으나, 현재는 '저육'은 단독으로 잘 쓰이지 않음.


숟가락 

숟가락을 의미하는 고유어 '술(슐)'에 '길고 가는 물건'을 뜻하는 '가락'이 합쳐져 만들어진 말. '술가락'에 사이시옷이 개재된 '숤가락'에서 [ㄷ] 받침음이 나는 것을 'ㄷ'으로 표기하기로 정한 규정 때문에 '숟가락'으로 표기. 저자는 [ㄷ] 음이 사이시옷의 현실음이므로 '숫가락'으로 표기하는 것이 맞을 것으로 보고 있음. '삼짌날'과 '이틄날'도 사이시옷이 개재된 어형에서 변한 것이라는 역사적 정보를 놓친 표준어 규정 때문에 '삼짓날'과 '이틋날'이 아닌, '삼짇날'과 '이튿날'로 표기하고 있음.


깡통

영어 '캔(can)'에 대한 일본어 '간(かん)'을 국어가 '깡'으로 받아들인 뒤 그것과 '통(筒)'을 결합한 어형. '깡'과 '통'은 같은 의미 범주이므로 동일한 의미의 두 요소가 결합된 동의 중복형 합성어. 이러한 일본식 영어의 차용어와 한자어가 결합된 동의 중복형 합성어에는 '깡패(꺙그, gang + 무리 패, 牌)'가 있음.


독도

조선조 울릉도로 이주한 호남 사람들이 울릉도와 인접한 돌로 된 이 섬을 자기 지역 말로 '독섬'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짐. '독섬, 돌섬'이라는 고유어를 한자화하는 과정에서 '독도(獨島)'가 됨. '독'은 '돌'의 뜻이고, 지금도 전남과 경남의 일부 지역에서는 '돌'을 '독'이라 하고 '돌로 된 섬'을 '독섬'이라고 부름.

'독'이 '石(석)'을 뜻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그저 음이 같은 한자 '獨(독)'을 대응하여 '독도(獨島)'라고 함. '石島(석도)'는 대한제국 <관보(官報)>에 실려 있으며, 20세기를 전후한 시기에는 '독섬, 석도, 독도'가 함께 쓰였음. 이 가운데 '독도'가 세력을 잡아 공식 명칭이 됨.  


썰매

'눈 위를 달리는 말'에서 비롯된 말. 18세기 문헌에 '셜마'가 나오는데, '셜마'는 대체로 한자어 '雪馬(설마)'로 봄. 18세기의 '셜마'는 음절 말에 'ㅣ'가 첨가되어 '셜매'로 변했다가 제1음절의 모음이 단모음화하여 '설매'로 변했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단모음화를 먼저 겪어 '설마'로 변했다가 그것에 'ㅣ'가 첨가되어 '설매'로 변함. 이후에 '설매'는 제1음절의 어두음이 된소리화하여 '썰매'로 변함.


도떼기

'물건을 돗자리째 사고팔다'에서 나온 말. '도떼기'의 '도'는 '돗자리'를 뜻하는 '돗'에서 온 것. 조선 시대에 객주(客主, 조선 시대에 다른 지역에서 온 상인들의 거처를 제공하며 물건을 맡아 팔거나 흥정을 붙여주는 일을 하던 상인)들이 시골에서 올라온 상인들에게 물건을 돗자리째 떼어 팔았다고 하는데, 그러한 상거래 방식을 '돗떼기', 곧 '도떼기'라고 함. 돗자리에 수북이 쌓인 물건을 사려고 상인들이 몰려들어 흥정하면서 그 주변이 늘 번잡하고 시끄러웠고, 그런 이유로 '도떼기'에 '시끄럽고 어수선하게 이루어지는 상거래'라는 의미가 부여됨.



* 'ㅿ'에 모음을 붙일 수가 없어서 풀어서 썼다. 반치음 'ㅿ'은 [z] 발음과 비슷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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