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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Jun 01. 2022

애쓰지 않아도 편안할 수 있기를

최은영, <애쓰지 않아도>를 읽고

단숨에 몰아치듯이 독자를 이끌어 가는 책이 있고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독자를 데리고 가는 책이 있다. 최은영의 <애쓰지 않아도>는 후자에 해당하는 소설집이다. 작가는 따스한 손길로 문을 열어 주며 독자에게 말한다. 한번 들어가 볼래?


다른 단편소설에 비해 매우 짧은 분량의 소설들이다. 나는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잠시 책장을 덮고 생각에 잠겼다. 나의 학창시절, 소중한 친구들, 어학연수에서 만났던 친구들, 상처받았던 기억, 불편했던 감정. <애쓰지 않아도>는 그런 소설이다. 추억의 문을 열어주며 공감대의 길을 안내해 주는 소설.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커다란 일로 다가온다. 나쁜 사람한테 당한 나쁜 사건이 아니다. 주변에 있는 누군가의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되는데, 상처받은 이의 섬세한 감정이 '예민함'으로 받아들여질 때 상처받은 이는 그 상처를 세상에 꺼내놓을 수 없게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주고 받는 상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치지 않고 사람들과 잘 지내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 노력이 제대로 통하지 않을 지라도.


할머니가 다른 할머니들의 호감을 사기 위해 계피 사탕 같은 것을 건네는 모습을 떠올려봤어요. 그 무리에 끼기 위해서 틈을 찾으려 노력하는 할머니의 모습을요. 그게 잘되지 않아 낙담하고, 낙담한 채로도 멀어지지 못한 채 그 무리를 곁눈질했을 할머니의 모습을요. 할머니 왜 그래. 왜 그러고 살아.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살아. 짜증이 나서 소리치는 저를 할머니는 눈물이 가득 찬 눈으로 바라봤어요. 사람의 마음은 좀처럼 지치지를 않나봐요. 자꾸만 노력하려 하고, 다가가려 해요. 나에게도 그 마음이 살아 있어요.
- 손 편지 (p. 163)


그러나 영원할 것 같은 상처도 시간이 흐르면서 상처가 무뎌지고 나의 마음을 노력 없이도 온전히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영원히 용서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유나에 대한 나의 마음은 그게 어떤 모습이든 늘 과하고 넘친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이제 애쓰지 않아도 유나를 별다른 감정 없이 기억할 수 있다. 아마 영원히 그 애를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알고 싶다. 유나는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 애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 애쓰지 않아도 (p. 32)



"애쓰지 않아도 선물처럼 찾아올 우리의 봄날을 기다리며"라는 작가의 말처럼, 비록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이 세상이지만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편안하고 안정적인 일상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부디 모두 그러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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