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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Jul 04. 2022

극장 데이트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가기로 한 주말이다. 아이들은 할머니네에 가면 엄마 아빠의 잔소리에서 벗어나 자유 시간을 누린다. TV도 자유, BTV 게임도 자유다.

(TV로 하는 게임은 모바일 게임에 비해 건전하고 활동이 제한적인 편이다.)



"탑건이 재밌다던데 애들 어머님네 보내고 보러 갈래?"

애들을 어머님네 댁에 보내고 남편에게 영화를 보러 가자고 제안했더니 남편이 격한 반응을 보인다.

"오! 나 진짜 보고 싶었어. 난 극장 가서 볼 생각은 못하고 나중에 넷플릭스에 나오면 봐야 하나 했네."


내가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2019년에 애들과 함께 본 <겨울왕국 2>이다. 남편이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훨씬 더 전인데, 결혼기념일 기념으로 나와 함께 본 영화였다. 그게 2015년인지 2016년인지 2017년인지...

어쨌든 남편과 나 둘 다 정말로 오랜만에 가는 극장이었다.

 


팝콘과 콜라 등은 과감히 생략하기로 한다.

상영 10분 전에 입장을 했는데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엥? 거의 다 매진이라고 안 했어?"

"그러게? 이상하네. 잘못 들어왔나?"

"2관 맞아. 그냥 앉자."

우리 다음으로 들어온 사람들도 텅 비어 있는 극장이 이상했는지 한 번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잠시 후에 극장이 차기 시작했다. 동네 극장이라 가족 단위로 많이 온 듯했다. 아직은 더빙 만화밖에 볼 줄 모르는 우리 아이들과도 언젠가는 함께 극장에 올 날이 있으리라.


우리 옆 자리에 젊은 훈남 훈녀 커플이 들어온다. 보기만 해도 아주 그냥 흐뭇하다. 20대 커플이 영화만 보러 왔을 뿐인데 주책맞게 내가 다 설레네. 아참, 나도 남편과 데이트 중이었지. 옆에 있는 남편의 존재를 잠시 잊을 뻔했다. 영화 시작할 때까지 남편과 손을 잡으며 데이트하는 기분을 내다가 영화 볼 때는 편하게 (손을 놓고) 보기로 했다.    


호평일색인 '탑건'은 재미있었다. 비록 '왜 적국에 침입해서 저러지?'란 생각과 일부 개연성이 떨어지는 장면에 대한 의문이 들었으나, 보는 내내 심장을 졸이며 몰입하게 되었다. 다 보고 나니 온몸이 아플 지경이었다. 내가 한껏 긴장하여 전투기를 조종한 기분이다.



영화를 보고 온 지 이틀이 지났다. 남편은 '탑건'의 여운에 한창 빠져 있다. OST를 듣고 "크으!"라고 외치거나 테마 음악을 휘파람으로 분다. 출연 배우들과 촬영 비하인드 스토리를 얘기하는 모습이 신나 보인다. '탑건' 이야기에 신이 난 남편을 보니 극장 데이트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40대 부부의 데이트에는 심장이 터질 듯한 떨림과 설렘은 없지만, '이 사람이 한결같이 내 곁에 있다'는 안정감과 든든함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쌓아온 시간과 추억들은 우리만의 얘깃거리가 된다. '탑건'이 한동안은 우리 부부의 좋은 얘깃거리가 되어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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