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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Jul 14. 2022

자녀를 키운다는 것

전쟁 같은 숙제 시간이다.

작년까지 30초에 한 번씩 엉덩이를 떼며 숙제에 집중하지 못하던 큰 아이 건이는 올해 초4가 되면서 제법 숙제에 집중한다. 비글미* 넘치던 아이가 약간 차분해졌다. 아이가 많이 컸음을 느낀다.


* 비글미: 비글 강아지처럼 발랄하고 시끄럽고 산만한 매력을 뜻함.


초1인 작은 아이 규는 형과 성향이 달라서 엉덩이를 쉽게 떼지 않고 앉아 있는다. 문제는, 하기 싫은 것이나 어려운 것이 나오면 멍한 표정으로 "몰라."라고 말한다. 친절하게 자세하게 설명해도 요지부동이다.

 

건이는 조금만 설명해줘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성미가 급한 아이라 조금 듣다가 자기가 이해됐다 싶으면 다음 말은 듣지도 않고 "이러이러하다는 거죠?" 하고 결론을 내렸다. 공부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큰 아이는 모든 게 빠르다. 말도 매우 빠르고 의사결정도 빠르고 밥 먹는 속도도 빠르다.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 기대감을 가지고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규는 여유 갖기를 좋아한다. 말할 때도 "엄마 그거 알아?" 하고 잠시 뜸을 들인 다음 말하고 의사결정은 신중하고 (그래도 많이 늘었다.) 밥도 세월아 네월아 먹는다. 재촉하면 "하고 있는데 왜 자꾸 재촉해?"라며 여유를 부린다. 새로운 환경에 가는 것에 긴장하고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에 저항이 크다.


성향이 다른 아이들이니 둘을 다르게 대해야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건이에게 대하듯이 규를 대하면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규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다. 아는지 모르는지, 모른다면 어떤 부분이 이해가 안 가는지라도 속 시원하게 말해주면 좋겠는데 규는 아무 말도 안 하거나 모른다고만 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그래서 매일 숙제 시간마다 나는 규와 마찰을 빚는다.


어제도 규는 말했다.

"엄마, 이거 몰라. 못 써."

"어디 보자."


아기 원숭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엄마 원숭이가 돌봐준 것처럼 여러분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을 떠올려 보고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써 보세요.


"쓰는 게 어려우면 엄마랑 얘기해 볼까? 규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 누가 있지?"

"몰라."

"규가 건강하게 자라려면 밥도 먹어야 하고 옷도 입어야 하고 집도 있어야 하잖아. 그런 걸 누가 해줬어?"

"몰라."

"아니, 왜 몰라? 규 그러면 지금 아무 도움도 안 받고 너 혼자 살 수 있어?"

"아니."

"그럼 도움은 필요해?"

(고개 끄덕)

"규가 생활할 때 엄마 아빠의 도움을 받고 있잖아. 그럼 어떤 도움을 받고 있어?"

"아 몰라. 한 개가 아닌데 어떻게 하라는 거야? 그리고 엄마, 아빠, 할머니. 많은데 어떻게 고르라는 거야?"

"응? 그래, 엄마 아빠 할머니 도움을 받았지. 일단 누구의 도움을 받았는지 쓰기 전에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자유롭게 얘기해 보자."

"도움받은 것도 한 개가 아니고 엄청 많은데 어떻게 해?"

"그럼 안 골라도 돼. 그냥 얘기만 해 보자."

"어어... 아빠가 나 다리 아프다고 할 때 주물러 준 거. 엄마가 나 배 아플 때 찜질팩 갖다 준 거. 할머니가 햄 계란말이 해준 거. 할아버지가 주말 아침에 샌드위치 맛있게 먹는 법 가르쳐준 거. 엄마가 나 혼자 학교 갈 때 엘리베이터 문 닫힐 때까지 손 흔들어 준 거. 이렇게 많은데 어쩌라는 거야? (눈물 글썽글썽)"

"아, 그랬구나. 이렇게 많아서 규가 못 고른 거구나. 엄마는 규가 도움받은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줄 알고 좀 서운했는데 규가 이렇게 생각을 많이 했구나."

"응. 한 50개, 아니 100개도 더 될 걸?"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는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생각은 깊지만 제대로 전달하는 법을 아직은 잘 모르는 듯하다.


"그렇지만 규야, 질문을 받으면 못 들은 것처럼 가만히 있거나 무조건 모른다고 하면 안 돼. '어...'라고 하거나 '지금 생각 중이에요.'라고 말해야 상대방이 오해를 안 해. 그리고 이번처럼 대답이 너무 많아서 말을 못 하겠을 때는 '너무 많아서 못 고르겠어요.'라고 하면 되는 거야."

규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다시 한번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아이를 통해 인간에 대해 배운다.

인간의 기질은 참으로 다양하구나. 쟤는 누구 닮아 저러나? 의사 결정이 빠르고 호불호 확실한 나는 안 닮은 거 같은데. 아주 한참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딱 저랬던 거 같기도 하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내 과거의 모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오늘은 화내지 말고 잘해줘야지, 결심한다.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인간을 배우고 정신을 수양하는 과정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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