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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Jun 24. 2022

교통 안전 지킴이

오늘은 1년에 한 번 하는 중요한 행사가 있는 날이다. 바로 교통 안전 지킴이 봉사다.

(아, 올해 둘째 아이가 입학했으니 이제 1년에 두 번 하는 행사가 되겠다.)

아이들의 학교는 아침 등교 시에는 전문 봉사 인력이 교통 지도를 해주고, 하교 시에는 전교생의 학부모가 한 번씩 봉사하도록 되어 있다. 3월에 6학년부터 시작하여 1학년까지의 순서로 1년 간 스케줄이 짜여진다.


올해 초 4인 첫째 아이가 1학년이었을 땐 겨울에, 3학년엔 가을에 교통 안전 지킴이를 했다. 그리고 4학년은 여름에 하게 되었다. (2학년엔 코로나로 등교를 안 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당번이 사라졌다.)

날씨가 너무 덥거나 어제처럼 폭우가 쏟아질까 봐 걱정했는데, 오늘은 날씨가 흐려 시원하고 비는 내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노란 어깨띠와 노란 깃발을 가지러 학교로 향했다. 시간에 여유가 있는 듯하여 천천히 걸었다. 작년에도 가봤으니 안전 지킴이실을 찾는 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웬걸. 학교 구조가 바뀌었는지, 위치가 바뀌었는지 찾기가 힘들었다. 나는 2부 당번이라 1부로 서 계신 학부모와 교대를 해드려야 하건만 이대로라면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 것 같았다. 학교를 빙빙 돌다가 교무실 앞에 계신 선생님께 여쭤봐서 겨우 찾아갔다. 이래서 안내문을 자세히 읽어봐야 하는데 나 자신을 과신한 게 문제였다. 출석부(?)에 싸인을 하고 어깨띠를 갖고 나오니 이미 교대하기로 한 시간이 다 되었다. 오매불망 나를 기다리고 계실 어머니와 교대하기 위해 전력질주하였다.


1부로 봉사하고 계신 어머니가 두리번거리신다. 나를 기다리신 건지, 아이들과 차를 보시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나를 기다리신 것만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숨을 헐떡이며 깃발을 이어 받았다. 그 어머니에게 바로 귀가하시라고 하고 그분이 둘렀던 어깨띠는 내가 같이 반납하기로 하였다.


내가 담당한 구역은 학교에서 제법 떨어진, 우리 아파트 앞 삼거리 횡단보도이다. 교문에서만큼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지 않아서 아이들이 없을 땐 좀 심심하다. 빨리 꼬마 손님들이 오기를 바랐다.  


드디어 학생들이 보인다. 1, 2학년은 아까 1부 봉사 시간에 다 건너갔고 2부 봉사 시간에 나타나는 아이들은 3~6학년이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뉘 집 아들, 딸들인지 아이들이 참 예의도 바르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예쁘고 훈훈하다. 


오늘은 해가 없어 시원하고 구름은 꼈지만 비는 오지 않는다. 교통 안전 지킴이 봉사를 하는 데 최적의 날씨다. 아까 전력질주하느라 땀범벅이었는데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 주어 기분이 참 좋다.

...라고 생각하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어랏? 이러면 안 되는데. 오늘은 비 예보가 없었기 때문에 우산도 챙기지 않았다. 처음부터 비가 내렸다면 교통 안전 지킴이실에서 우비를 챙겼겠지만 중간에 비가 내리니 어찌 할 방도가 없다. 많이 쏟아지지 않기만을 바라며 서 있었다. 혹시 비가 많이 쏟아진다면 첫째 아이가 하교하면서 내게 우산을 씌워주리라, 기대하고 있었다. '너무 순조로우면 재미없을까 봐, 내게 글감을 주려고 비가 오는구나.'라고 내멋대로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왜 안 오나?


"엄마!!!"

드디어 기다리던 우리 아이 등장! 엄마가 깃발을 들고 서 있으니 아이는 신이 났다. 비가 오니 집에 가 있으라는데 계속 옆에 있겠단다.

"우산이라도 꺼내서 써."

"(고개를 내저으며) 어어어~~. 엄마, 쟤는 우리 반 출석 번호 몇 번 누구예요. 쟤는 우리 반 키 번호 몇 번 누구예요."

지나가는 친구들을 종알거리며 소개해 준다. 그 우산 안 쓸 거면 엄마라도 씌워주지. 그래도 다행히 비가 조금 흩날리는 정도였고 마구 쏟아지지는 않았다.


모르는 아이를 볼 때는 "건이랑 같은 반 친구구나." 정도의 반응을 보이던 내가, 얼굴을 아는 아이가 나오면 내 친구를 만난 것처럼 "누구야, 안녕!" 하며 인사를 했다. 동네에서 많이 보던 아이들을 교통 지도할 때 만나면 특별히 더 반가운 건 왜일까?


드디어 봉사 시간이 끝이 나고 깃발과 어깨띠를 학교에 반납할 시간이다.

"엄마는 깃발 놓고 갈 테니 집에 가서 간식 먹고 있어. 자, 마지막 손님! 건너 가세요!" 라며 아이를 건너게 해주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아기들이 귀찮았는데 아기를 낳고 보니 다른 아기들이 너무 귀여웠다. 울어도 귀엽고 웃으면 더 귀엽고. 조그만 아기들이야 귀여워도 대여섯 살 되는 애들이 뭐가 귀엽겠냐 싶었는데, 내 아이가 유치원생이 되니 지나가는 유치원생들이 그렇게 귀여워 보였다. 귀여운 거 예닐곱 살이면 끝이지, 생각했는데 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초 1 내 아이는 여전히 귀엽고 다른 초등 저학년 아이들도 그렇게 예뻐 보인다. 이제 내 아이가 4학년이 되니 초등 고학년 애들이 제법 친근하게 느껴진다. 아직 중고등학생에 대한 애정은 솟아나지 않는데 내 아이가 중고등학생이 되면 또 다르려나? 아이를 낳고 키우는 건, 어쩌면 다른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함께 늘어난다는 걸 의미하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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