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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Nov 01. 2021

장래희망은 회사원

재택근무에 대한 단상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더 이상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게 됐던 작년 어느 날부터 갑자기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재택근무는 디자이너나 프리랜서들한테만 해당되는 얘기인 줄 알았는데, 삼성이나 SK같은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먼저 시작하더니 우리 회사도 갑자기 재택근무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우리 회사는 - 다른 회사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 일부 영업직이 아닌 이상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는 것이 원칙이었고, 재택근무에 대한 상상은 누구도 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사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재택근무를 할 환경도 갖춰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두 달 전 시스템 부서에서 모바일이나 타 환경에서도 근무할 수 있는 공유 드라이브와 문서 시스템을 막 구축하였고 사실 그 새로운 시스템이 제대로 시험대에 오르기도 전에 재택근무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시스템은 편하고 불편하고를 떠나 어쨌든 직원들의 재택근무를 가능하게 만들어줬기 때문에 획기적이었다. 새로운 업무 환경으로의 변경이 얼마나 효용성이 있겠냐고 하던 회의적 시각도 재택근무가 시작되면서 다 사그라들게 되었으니, 누군가는 확실히 선구적 안목을 가졌거나 혹은 운이 억세게 좋았음이 틀림없다.


어쨌든 재택근무는 시작되었다. 학교와 유치원에 가지 못 하고 집에만 있던 아이들은 엄마가 집에 있는 풍경을 신기하게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은 평일에 눈 뜨면 엄마가 없었고 저녁엔 기껏해야 두어 시간밖에 엄마와 시간을 보내지 못 했으니, 갑자기 '재택근무'라는 이상한 용어를 써가며 하루종일 집에 있는 엄마가 낯설었으리라.


사실 우리 아이들은 한동안 장래희망이 '회사원'이었다. 아마 엄마네 회사를 방문한 이후부터였을 것이다. 그땐 직원 자녀 초대 행사였기 때문에 이벤트도 많았고 우리 아이들은 원없이 놀다 갔다. 그 후부터 회사원이 되겠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변호사도, 변리사도, 회계사도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면 다 회사원이긴 하지만 어쨌든 아이 때부터 회사원을 꿈꾸는 것은 좀 슬펐다.

 

"너희들 회사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

"몰라. 무슨 일을 하는데?"

"음... 하여간 회사원이야 나중에 어른 돼서 어쩌다 된다 쳐도. 지금은 딴 꿈 꾸면 안 돼?"

"회사원이 뭐 어때서? 엄마 회사 왔다갔다 하는 거 보면 괜찮아 보이는데?"


장래희망이 회사원이었던 큰 아이는 회사 생활이 내심 궁금했던지라 엄마가 집에서 일을 한다고 하니 자꾸 컴퓨터 앞을 기웃거렸다.

"엄마, 오늘 얼마 벌었어?"

"응?"

"지금 일하며 돈 버는 거라며? 얼마를 번 거야?"

내가 주식을 하는 것도 아닌데 지금까지 얼마를 벌었냐니. 그런 질문을 받으니 말문이 탁 막혔다.

"지금 바로 돈을 얼마 벌었다고 나오는 게 아니고, 엄마한테 주어진 일을 엄마가 잘 하면 회사에서 한 달치 일한 돈을 주는 거야. 그게 월급이야."

"아, 그렇구나."  


큰 아이는 그 이후에도 내가 일할 때면 옆에 와서 묻곤 했다.

"엄마, 그래서 이 일을 해서 어떻게 돈을 번다는 거야?"

"엄마, 과장님은 뭐고 차장님은 뭐야? 순서가 어떻게 돼?"


아이의 지적 호기심에 대해 친절하게 답해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재택근무도 근무의 한 종류였다. 일은 끊임이 없었고 근무시간 안에 일을 마치기 위해서 난 늘 바빴다. 또한 많은 일이 내 뜻대로 잘 풀리지 않아 예민했다.


출퇴근을 하던 시절엔 일하며 받은 스트레스를 퇴근길 지하철에서 예능이나 드라마를 보면서 풀곤 했다. 몸은 고될 지언정, 머리의 생각을 비워내면 그나마 웃으면서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재택근무를 하니 퇴근을 하자마자 기분을 풀지 못한 채 바로 육아를 시작해야 했다. 나는 찡그린 표정과 우울한 기분을 그대로 아이들에게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도 자연스레 엄마의 재택근무를 싫어하게 됐는지, 내가 주말에 컴퓨터 앞에라도 앉으면 물었다.

"엄마, 왜 재택 해?"


곁에서 본 회사원의 삶은 좀 별로였나 보다.

아이들의 장래희망은 이제 바뀌었다. '회사원'이라는 단어를 아예 싹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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