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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Aug 01. 2022

3초만 생각해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아이들이 저녁에 수영 수업을 갔다. 큰 아이는 수영을 다니고 있었고, 작은 아이는 그날이 첫 수업이었다. 작은 아이는 아직 물을 무서워하고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이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 많이 긴장하는 편이지만 형과 함께라면 재미있게 잘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방학 특강을 등록하였다.


"수영하는 거 정말 기대되지? 재밌을 거야. 어렵거나 힘든 거 있으면 형한테 말해."라고 말하는 큰 아이가 제법 든든하다.


아이들을 수영 학원 차에 태워 먼저 보내고 나도 수업을 참관하러 갔다. 수모와 물안경을 쓴 작은 아이 모습이 왜 이렇게 귀여운지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잠수를 못하던 아이인데 물속에 머리를 넣기도 하고 킥판을 가지고 발차기도 하는 모습에 속으로 "오구오구! 짜란다!"를 외쳤다.


아이들이 집에 와서 나는 아이들을 폭풍 칭찬해 줬다. 큰 아이는 평영 발차기를 열심히 연습한 것과 동생을 잘 챙긴 것을 칭찬했고 작은 아이는 첫날임에도 물을 두려워하지 않고 열심히 연습한 것을 칭찬했다. 운동을 하고 온 아이들이 출출해해서 늦은 시간이지만 간단히 간식을 주기로 했다.


"뭐 먹을래?"

"전 블루베리에 우유요."

역시나 결정이 빠른 큰 아이.


"배고픈데 뭘 먹을지 모르겠어."

결정을 못하는 작은 아이.


"모닝빵에 잼 발라 줄까?"

"아니."

"식빵에 잼? 아니면 식빵 토스트 해서 연유 발라 줄까?"

"아니. 다른 거."

"시리얼?"

"아니. 아아아, 배고픈데 뭐 먹을지 모르겠어."

우유부단한 작은 아이가 한동안 결정을 잘한다 했더니 또다시 시작인가 보다.


"배 안 고프면 안 먹어도 돼."

"아니야. 나 배고프단 말이야."

"그럼 간단히 우유 한 잔 먹어."

"싫어."

"치즈? 치즈에 우유 한 잔 먹으면 딱 되겠네."

"싫어."

"그럼 미니 핫도그?"

"싫어."

"꿀호떡?"

"아니. 아아아,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어. 우리 집에 딴 건 없어?"

"없어. 그게 다야. 그냥 모닝빵이나 시리얼 먹어."

"싫어."  

"안 먹고 싶으면 안 먹어도 돼."

"진짜 배고파. 근데 뭐 먹어야 할지 모르겠어."

"자, 그럼 보기를 줄게 골라 봐. 1번 모닝빵, 2번 식빵, 3번 치즈, 4번 우유, 5번 미니 핫도그, 6번 꿀호떡. 뭐 할래?"

"뭐가 몇 번이랬지?"

"그게 지금 중요하냐? 먹지 마!!!"


이렇게 40분을 아이와 실랑이를 벌였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만 얘가 나를 일부러 괴롭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를 심하게 낼 것 같아서 방으로 도망(?) 왔는데도 쫓아와서 내 옆에 딱 붙어서 징징댄다.


"너 이렇게 징징대다가 벌써 10시 다 돼간다. 10시 넘어서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 인제 뭐 먹으면 안 돼."

"아아아, 어떡해?"

"그럼 네가 못 정하니까 엄마가 정해주는 거 그냥 먹어. 미니 핫도그 전자레인지에 돌려줄 테니 그거 먹어."


냉동실에 있던 미니 핫도그 세 개를 전자레인지에 넣었더니 아이가 쫓아와서 그건 안 먹겠단다. 일단 데우고 케첩을 뿌려준 후 아이에게 줬더니 너무 뜨거워서 못 먹겠다고 징징대더니 두 개를 먹었다.

"막상 먹어 보니 맛있지?"

"아니. 별로. 이거 하나는 남겨도 돼?"

"응. 남겨도 돼."


그러자 옆에서 눈치 보던 큰 아이가 "그럼 이거 저 먹어도 돼요?"라고 한다.

"그래, 건이가 먹어라. 규야, 네가 못 정하니까 엄마가 정해준 거야. 그럴 땐 그냥 따라."  

"음... 엄마, 화내지 마."

"어?"

"내가 지금부터 말을 할 건데 듣고 바로 화내지 말고 3초만 생각해."  


미리 예고까지 해주다니 이건 빅 폭탄이겠구나 싶었다. 이미 한 시간 가까이 아이와 실랑이를 벌인 후라 화가 난 상태였지만 일단 알겠다고 대답을 했다.

"엄마, 모닝빵에 잼 발라 줘."


뭣이라고라? 처음부터 내가 모닝빵에 잼 발라 주겠다고 제안을 했고, 그 후에도 계속 줄기차게 모닝빵을 권했는데 싫다고 하더니 너 지금 나랑 장난하냐? 정말 화가 너무 너무 너무 났지만, '3초'의 약속을 무시할 수 없어서 3초를 쉬었다.


1초

2초

3초


3초 덕분에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있었지만 분노를 가라앉힐 수는 없었다. 한숨을 쉬며 모닝빵에 잼을 발라 아이에게 대령한 후 말했다.

"그러게 처음부터 모닝빵 준다고 했잖아. 아깐 싫다더니 왜 갑자기 모닝빵 달래?"

"아니... 보기를 준 게 다 내가 좋아하는 거였어. 그래서 고를 수가 없었어. 나도 빨리 잘 결정하고 싶어. 근데 그게 잘 안 된단 말이야."

눈물이 글썽글썽해진 아이를 봐도 오늘은 안 불쌍하다. 간식이 뭐라고? 오늘 못 먹은 간식은 내일 먹어도 되고 다음에 먹어도 되는데, 그게 뭐라고 엄마를 이렇게 괴롭히니?


평소 같으면 아이를 안아주며 "다음부턴 결정을 빨리 하도록 노력해 보자."라고 했을 텐데 이번엔 정말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이와 멀찍이 떨어져서 구시렁대자 아이는 또 "아니... 그게 아니라..."라며 변명을 해댄다. 또 화가 올라온다.

"그만! 이제 그만 말대꾸해."



아이가 울먹거림을 삼키고 모닝빵을 먹어 치운 후에 (나는 씩씩거리는 화를 가라앉힌 후에) 아이를 안아주며 잘 일단락했지만, 첫 수영 수업을 기특하게 잘 해낸 아이에게 칭찬을 해주며 훈훈하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왜 이 모양이 됐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어떻게 대처를 했어야 하는지도. 아이를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줄 게 아니라 진작 화를 내고 상황을 정리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단 생각마저 든다.


그래도 3초 기다려 달란 말은 웃겼다. 자기가 생각해도 충분히 화낼 만한 발언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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