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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Aug 22. 2022

정말 안 맞아(2)

우리 가족 여행 이야기

아이들은 여행을 오면 철저히 호캉스를 즐기려 한다. 수영하고 방에서 쉬어야 잘 놀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주까지 와서 호텔에만 있을 수는 없다. 나는 호텔에 오래 있으면서 역사 관련 장소를 살짝 끼워 넣을 수 있는 일정으로 계획하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공지하였다.

"내일은 아침 먹고 체크아웃하고 불국사에 갈 거야. 원래 불국사 갈 때 석굴암까지 가는데 석굴암은 좀 많이 걸어야 할 것 같아서 불국사만 가겠어. 불국사 다녀와서 '안녕 경주야(키즈카페)' 갔다가 방 옮기면 되겠다."


7시 10분 전에 호텔 조식을 먹으러 가면 아이 한 명을 무료로 해준다고 하여 우리는 7시 전에 조식을 먹기로 하였다. 6시 50분에 알람이 울렸지만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밤새 다리가 아프다고 우는 작은 아이의 다리를 주무르느라 나와 남편은 제대로 못 잤고 당사자인 작은 아이도 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에너자이저 큰 아이만 벌떡 일어나 옷을 입고 나와 남편은 눈도 못 뜬 채로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작은 아이는 아무리 불러도 못 일어나는데 계속 깨워서 끌고 나갔다. 그래도 다행히 잠이 깨서 아침을 적당히 먹고 짐을 쌌다. 코로나로 급하게 일정을 바꾸면서 연박이 가능한 방이 없어서 1박을 하고 방을 옮겨야 했다.


작은 아이는 아침을 먹으면서 "불국사 가기 싫어. 나는 역사에 관심 없단 말이야."라고 하더니 방에 올라와서는 침대에 누워 뒹굴대며 본격적으로 징징대기 시작한다.

"불국사 싫어. 불국사 안 갈래."

"그럼 너는 아빠랑 방에 있을래? 엄마랑 형이 둘이 갔다 와?"


그러자 남편이 단호하게 저지한다.

"그건 안 되지. 가족 여행 왔으면 싫어도 같이 가는 거야."


그래, 내 말이 그 말이다! 집돌이 남편이 웬일로 나가자는 데 의견을 보탠다니? 단호한 아빠의 말에 작은 아이도 포기하고 방을 나섰다. 비록 입은 댓발 나왔지만 말이다. 따라나서긴 했지만 저 못마땅한 얼굴이 내심 맘에 들지 않아 나는 남편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어우, 얘는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집돌이인 자기가 얘기 좀 해봐."

"음, 나가기가 싫으니까. 근데 어쩔 수 없이 나가야 될 때도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지 뭐. 그것이 집돌이의 숙명!"


예능을 보니까 MBTI의 내향형(I)과 외향형(E) 성향에 따라 여행에서도 돌아다니느냐, 숙소에만 있느냐가 나눠지더라. E인 사람들은 "숙소에만 있을 거면 집에 있지 여행 왜 왔어?"라고 하고 유재석을 비롯한 I인 사람들은 "여행이라고 굳이 그렇게 밖을 돌아다녀야 하냐고?"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E 성향이 맞는지 여행에서만큼은 좀 돌아다녀야 한다는 주의인데, 내 성향을 포기하고 호텔에만 있다가 딱 한 군데 잠깐 나갔다 오자는데 그게 그렇게 협조가 안 되나?


호텔 리셉션에다 카드키를 반납하였다. 직원 분께서 옮기는 방을 최대한 빨리 준비하여 체크인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얘기해 주셨다.

"네, 저희는 불국사에 다녀올게요."


우리는 택시를 타고 불국사에 갔다.

불국사에 가서 불국사 싫다는 초1 작은 아이와 너무 덥다는 초4 큰 아이와 억지로 사진을 찍고 다보탑과 석가탑, 대웅전을 후다닥 보고 바로 나왔다. 아이들은 덥다고 난리이다. 해가 쨍쨍하니 모자를 쓰라고 했더니 머리가 간지럽고 답답해서 싫다고. 나는 모자 쓰니까 하나도 안 덥던데.

아들들은 사진 거부 중


얘들아, 이게 바로 석가탑이다

택시로 왕복 거리를 이동하고 불국사에 머문 시간이 30분도 채 되지 않아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한 시간 만에 돌아왔다. '안녕 경주야(키즈카페)'의  할인 쿠폰을 받기 위해 (힐튼 호텔 투숙객은 50% 할인) 호텔 리셉션 데스크로 갔더니 마침 아까 체크아웃 처리를 해주신 직원 분이시다.

"저희 7○○호 체크아웃한 손님인데요, 안녕 경주야 할인 쿠폰 받을 수 있을까요?"

"7...7○○호요? 불국사 다녀오신다 안 했습니까?"

아저씨 직원이 어리둥절해한다.

"네, 다녀왔어요."

"벌써 다녀오셨습니까?"

"네, 벌써 다녀왔어요. 석굴암을 안 가고 불국사만 갔다 왔더니..."

좀 많이 부끄러웠다. (남편은 저 멀리 있어서 나만 부끄러움) 그래도 협조 안 되는 아이들 끌고 갔다 왔다는 게 중요하지.


남편은 방에서 일하라고 놔두고 아이들을 데리고 '안녕 경주야'에 왔다. 힐튼 호텔 내에 있는 키즈 카페인데 각 놀이 포인트에 경주의 문화재 이름을 갖다 붙인 곳이다. 아이들은 키즈카페에 와서야 신이 났다. 어린 녀석들... 

'안압지' (매우 가파른 미끄럼틀)

키즈카페에서 나와 점심 먹자고 남편에게 전화하니 남편은 낮잠을 자고 있다. 식당에 미리 가서 자리 잡으라고 하고 싶었는데 내가 가서 자리 잡고 남편을 기다려야겠구만. 새로울 것도 없지만 그래도 짜증이 새록새록 올라오려고 한다. 결국 식당이 꽉 차서 한 시간 후로 예약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남편은 아직 누워 있고, 작은 아이는 손을 씻자마자 침대에 발라당 누워 말한다.

"아후, 이제 좀 쉬자. 어제부터 돌아다니느라 진짜 힘들어."


나참, 어제는 호텔에서 수영하고 룸서비스로 저녁 먹고 호텔 게임존에서 플레이 스테이션 게임하고 잤거든? 어딜 돌아다녔다는 거야?


누워서 뒹굴대는 부자의 모습이 많이 닮았다. 비록 집에선 침대와 붙어 있지만 여행 오면 힘이 나는 나와 사뭇 다르다. 인간은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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