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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Aug 22. 2022

정말 안 맞아(3)

우리 가족 여행

경주 여행 마지막 날이다. 오늘은 느지막이 일어나서 수영하고 놀다가 더위가 가시는 저녁에 첨성대와 대릉원에 가기로 했다.


조식 뷔페를 먹고 남편은 방에서 급한 일을 처리하기로 하고 나는 아이들과 어제 갔던 '안녕 경주야' 키즈카페에 갔다.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길고 가파른 미끄럼도 탔다. 어른 되어 처음으로 타보는 키즈카페의 미끄럼, 솔직히 재미있었다.


오후 수영 시간이 시작되자마자 수영장에 들어갔다. 어제와 그제는 주말이라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었는데 오늘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날씨도 좋아서 놀기 좋았다.

엄마와 아이들


재미나게 실컷 놀고 씻으러 가려 하는데 작은 아이가 말한다.

"엄마, 오늘 이제 어디 가?"

"첨성대 보러 가야지. 너... 안 간다고 하면 안 된다."

"아니. 내가 뭐 안 간다는 건 아니고... 근데 좀 피곤하니 방에서 쉬다 갈까?"

옆에서 듣고 있던 큰 아이가 "아무래도 안 가려나 본데요?"라고 한다.


방에 올라오자 남편이 수영복을 넌다.

"오! 자기가 수영복 자발적으로 너는 거 처음이다!!!"

내가 감동하여 말했더니 남편은 처음이 아니란다. 나의 기억이 잘못됐다고. 내가 시키기 전에 자발적으로 하는  처음인 것 같은데. 반씩 사이좋게 수영복을 널고 나갈 짐을 챙긴 후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작은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택시를 기다리면서 작은 아이에게 "우리 규 많이 컸다. 피곤함을 참고 이렇게 나와 줬구나."라고 칭찬을 했더니 하는 말.

"엄마. 어제는 나랑 여행 같이 안 다니겠다더니 오늘은 많이 컸다고 칭찬을 하네?"

어제는 네가 안 나간다고 징징댔고 오늘은 나가기 싫은 걸 꾹 참았잖니.


동궁과 월지(구, 안압지)는 공사 중이었다. 연못 앞 한가운데 건물이 보수 공사 중이다 보니 영 시야가 좋지 못했지만, 그 덕에 입장료가 무료였고 사람도 적었으니 좋게 생각하기로 한다. 그리고 석양이 지는 가운데 사진도 찍고 산책도 하니 비로소 '이게 여행이지.'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뻥 뚫렸다.

석양 아래 땅 파는 소년들


첨성대에서는 점프 사진을 잔뜩 찍었다. 5년 전 첨성대 앞에서 큰 아이가 점프했던 사진을 재현하려고 시도한 건데, 어쩌다 보니 남편의 묘기 대행진이 되었다. 아이들도 아빠의 컨셉 사진에 동참하였고 좋은 아이디어도 냈다. 큰 아이가 아빠 점프할 때의 순간을 기가 막히게 포착하여 좋은 사진사 역할을 하였다. 벤치에 앉아 삼부자가 사진 찍는 모습을 바라보며 솔솔 부는 산들바람을 맞고 있자니 평화롭고 좋았다. 첨성대는 이제 우리 가족에게 웃기는 사진을 남긴 장소로 기억될 것 같다.

소년 장사, 아빠를 들고 장풍을 날리다
공중 부양 형제


슬슬 걸어서 대릉원을 바깥에서 보고 저녁을 사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호텔을 벗어난 첫 외식이어서 감회가 새로웠다.


여행 마지막 날이 되어 생각해보니 나만 남편과 아이들에게 맞춰주는 것이 아니라, 남편과 아이들도 내 눈치를 보고 나에게 맞춰주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특히 집돌이이자 귀차니스트 둘(남편과 작은 아이)의 노력이 돋보였다. 여행 첫날은 왜들 저러나 싶은 모습이었지만 이들에겐 목적지에 오기까지 몇 시간의 여정이 이미 스트레스였으리라. 또한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고.


아이들이 잠들고 남편이 한 마디 해준다.

"아들 셋 데리고 다니느라 고생이 많소!"


'우린 정말 안 맞아!'가 아니라 우리는 서로에게 잘 맞춰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정말 안 맞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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