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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Aug 22. 2022

정말 안 맞아(1)

우리 가족 여행 이야기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여행을 왔다. 오랜만에 가족 여행을 오니 좋다. 그런데 남편이나 자식과 맞는다는 생각이 훅 올라온다. 그래, 여행은 매번 이랬지. 심호흡을 하며 정신 수양하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체크인을 오래 기다려야 하니 수영을 먼저 하라는 호텔 직원의 권유에 따라 수영복과 구명조끼, 튜브를 꺼냈다. 우리 가족은 워터파크에 가본 적이 아직 없다. 호텔 방에서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에 바로 가서 놀고 방에 와서 씻고는 했다. '남편이 애 둘 데리고 괜찮을까?' 싶었지만 우리 아이들은 당일치기 호텔 수영장 여행에서 보호자 없이 씻고 나와본 경험이 있으므로 아이들을 믿기로 했다.


(참고용 이전 글: https://brunch.co.kr/@im1creep/168)


비가 꽤 와서 좀 추웠지만 물은 따뜻하여 그럭저럭 잘 놀았다. 두 시간을 놀고 씻고 나온 후 체크인을 하러 갔다. 젖어서 무거워진 물놀이 짐을 들고 캐리어를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남편은 역시나 바로 누워서 핸드폰을 본다. 아이들은 자기가 싸온 짐을 하나씩 풀어놓는다. "이건 여기다 두고 이건 저기다 둬야지."


나는 다이소에서 산 빨랫줄을 걸고 수영복을 넌다. 빨랫줄에 다 널지 못한 수영복은 옷걸이에 걸어 옷장에 걸었다. 여행에서 수영복을 너는 건 어찌 된 일인지 늘 내 담당이다. 남편은 수영 후에 수영복을 널어야 한단 걸 생각하지 못한다. '그래, 저 사람은 꼬깃꼬깃 해놨다가 내일 젖은 수영복을 다시 입어야 한대도 불평 없이 입을 사람이야.'라며 마음을 다스린다.


저녁에 남편에게 "수영하고 나서 수영복 널 생각은 안 드는 거야?" 했더니

"애들 거 널면서 내 거 같이 해주는 게 뭐?"라고 답한다.

"헐! 뭐냐? 수영복 너는 건 무조건 내 담당이란 소리야?"

"아니. 그건 아니지만... 난 그냥 수영복 널어놨길래 널었구나 했지."

으휴! 참 둔하다고 해야 할지 자기 혼자 세상 편하다고 해야 할지.


문득 남편이 묻는다.

"근데 락커가 혹시 같은 번호 두 개 있는 게 신발장이랑 옷장이야?"

"어! 입구에 작은 게 신발장이고 안쪽에 긴 사물함이 옷장이지."

"그래. 그럴 거 같다는 생각이 이제야 드네. 난 락커 되게 좁네, 하면서 우리 세 명 짐을 다 욱여넣었는데."

"어디다? 신발장에? 세 명 신발이랑 옷이랑 다 넣었다고?"

"어. 다 들어는 가더라. 그렇게 넣고 안에 가니까 똑같은 번호 락커가 또 있길래 그건 뭐 딴 사람들이 쓰나 보다 했지. 어쩐지 신발장 락커에 머무는 시간이 다들 짧다 했더니."


안 가봤으니 그럴 수도 있지만 뭔가 이상했을 거 같은데. 좁은 신발장에 갖은 짐을 욱여넣은 아빠와 아무 생각 없이 그걸 지켜보며 기다린 아들들의 모습이 상상되어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그 입구 쪽에서 옷 벗어서 넣는 걸 보고 사람들이 말 안 해줬나?


내가 박장대소를 하자 남편이 뿌듯해한다.

"내가 글감 하나 줬다?"

"남의 흉 갖고 글 안 써."

"헐! 양심 있냐?"

그래, 나 양심 없다. 허락해 준 걸로 알고 남편 흉을 마음껏 보리라.

나는 전에 락커 키를 넣고 잠가 버려서 고생했는데 이런 걸 부창부수라고 하는가?



오늘 체크아웃하기 전에는 빨랫줄 안 챙겼다며 가방에 넣어준 남편, 방을 옮기고서 빨랫줄 어디에 넣었냐니 모른단다.

"자기가 넣어놓고 왜 몰라?"

"모르니까 모른다고 하지."

어후~ 저 당당한 태도에 열이 받는다. 그렇게 말하고서 찾아냈다고 자뻑하는 남편의 모습이 더 황당하다. 아무리 봐도 남편과 나는 잘 안 맞는 거 같다. 


남편은 자기가 뭐만 하면 내가 뭐라고 한다고 억울해한다. 누가 더 억울한 건지 아리송하다. 그저 인간은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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