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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Oct 14. 2021

안녕 딱정아

밀웜부터 성충까지

"으악!"

아이들 숲체험 수업이 끝날 시간, 아이들을 데리러 갔을 때 엄마들은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이 통통하고 길고 징그러운 밀웜을 한 마리씩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엄마들의 이런 기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한 마리씩 데려다가 키우세요."

엄마들은 "아뇨, 괜찮아요." 또는 "저희는 됐어요."라며 한사코 거절했으나, 아이들은 저마다 데리고 가게 해달라고 졸라댔다. 10명 중 8명이 밀웜을 데리고 갔는데, 우리 아들이 그 8명 중 1명이었다. 애벌레라니, 그것도 저렇게 징그러운 애벌레라니!


우리 집에 네 식구가 아닌 다른 생명체가 살게 된 것은 작년에 물고기가 죽은 이후 처음이다. 물고기 역시 큰 아이가 유치원에서 받아온 '제브라다니오'라는 종이었는데, 3년 동안 우리 집에서 살았다. 제브라다니오는 수명이 약 2년 정도 된다는데 그 물고기는 수명에 비해 장수한 편이었다. 어쨌든 그 물고기가 수명을 다하는 모습을 본 이후 더욱 생명체는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였건만, 의도치 않게 새 식구가 늘어 버렸다.


일단 곤충채집통을 사서 밀웜을 넣고 집에 있는 상추 한 장을 씻어서 넣어줬다. 아들은 들떠서 아빠에게 밀웜을 소개해 주겠다고 하였으나, 아빠는 한사코 마다하였다. 밀웜의 존재를 환영해 준 건 밀웜 주인의 동생 뿐이었다. 작은 아들도 밀웜을 무서워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반가워하며 밀웜을 유심히 관찰하였다.


나는 밀웜을 키우는 것을 결사 반대했던 입장이었으나, 막상 밀웜을 키우게 되니 밀웜이 죽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밀웜을 볼 때마다 등에서 식은 땀이 줄줄 흐름에도 불구하고 얘가 잘 살아 있는지 한 번씩 들여다 봐야만 했다. 어떤 환경에서 밀웜을 키워야 하는지를 찾아보기 위해서 검색창에 밀웜이란 단어를 치는 것조차 싫었고 그 키워드로 인한 수많은 밀웜 사진도 이겨내야 했지만 나는 인류애, 아니 생명애로 극복해 냈다. 밀웜을 위해 밀껍데기를 주문하여 깔아 주었고 며칠에 한 번씩 상추 또는 감자를 넣어 주었다. 아, 물론 식량 준비는 내가 해주었지만 안에 넣어주는 것은 아이 몫이었다.


밀웜은 낮에는 가만히 있다가 밤에 활발히 움직였다. 아이들은 밀웜에 '밀웜이'라는 이름도 붙여주고 수시로 밀웜이를 관찰했다. 밀웜이를 볼 때마다 식은 땀이 나던 나도, 처음엔 한사코 밀웜 보기를 거부하던 남편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밀웜이를 종종 관찰하곤 했다. 밀웜이는 허물을 벗더니 좀 더 커졌다. 그 이후에 한 번 더 허물을 벗었다.


밀웜이를 우리 집에 데려온 지 약 두 달 쯤 후, 아이들이 할머니네 갔던 날이다. 밀웜이가 허물을 벗는가 싶었는데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었다. 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 준 상추가 잘못 되었나, 마른 감자를 먹고 아픈 건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다음 날 아이들이 할머니네 집에서 돌아온 후 동그랗게 몸을 만 밀웜이와 반쯤 벗겨진 허물을 보고 밀웜이가 번데기가 된 것 같다고 말해 주었다. 사실 아이도, 어른도 확신이 없었다. 곤충 번데기를 가까이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어쨌든 우리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약 2주를 기다렸는데도 반응이 없었다. 나는 얘가 성충이 되지 못 하고 죽었다고 확신하여 조금 슬퍼졌다. 아이들에게 애벌레가 성충이 되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인데, 얘가 아무래도 그 과정을 견디지 못 하고 그대로 죽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비록 밀웜이가 죽었다고 하더라도 좀 더 기다려 보자고 하였다.


그렇게 1주일을 더 기다린 어느 날, 작은 아들이 외쳤다.

"번데기가 움직여!"

나는 그 때까지만 해도 밀웜이가 죽은 거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에

"그럴 리가. 잘못 본 거 아니야?"라고 하며 다가갔다.


동그랗게 만 채로 굳은 번데기에서 뭔가 길쭉한 다리 하나가 나와 있었다. 움직이나 싶으면 또 가만히 있고, '내가 잘못 봤나?' 싶으면 또 다른 쪽에서 길쭉한 다리 하나가 나오고. 번데기의 등은 이제 흰색으로 판판하게 펴지고 그 밑으로 긴 다리가 다 나왔다.

어른이 되는 과정이 밀웜이에게 상당히 힘든지, 밀웜이는 한 동작을 했다가 한참 쉬었다가 또 다음 동작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뒷다리 끝으로 허물을 밀어내어 벗었다. 밀웜이는 그렇게 완전한 성충의 모습이 되었지만 약간 절뚝거리는 모습도 보이고 균형을 잡지 못 해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다음 날 아침, 흰색 성충은 살구색이 되었고 그 후에 갈색이 되었고 약 이틀 후에는 검정색이 되었다. 기우뚱거리는 움직임도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아이들은 밀웜 성충에게 '딱정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사실 내가 상상했던 성충은 동그란 무당벌레 느낌의 곤충이었는데, 딱정이는 생각보다 크고 까맣고 징그러웠다. 만약 내가 성충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지 않고 이 곤충을 맞닥뜨렸다면 꺅 소리를 지르며 도망갔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동안 키운 정이 무섭다고 딱정이가 움직이는 모습이 기특하고 신통하였다.


처음 밀웜을 키울 때 성충이 되면 놓아주자고 아이들과 약속했었다. 아이들은 밀웜이 성충이 되었어도 그간의 정 때문에 헤어지고 싶어하지 않았다. 나도 딱정이를 야박하게 바로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는 3주 정도 딱정이를 더 키웠다.


날씨 좋은 가을 날, 우리는 딱정이를 놓아주기로 했다. 더 추워지기 전에 좋은 짝을 만나 짝짓기도 하고 풀이든 나무든 흙이든 더 넓은 곳에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우리는 동네 뒷산에 딱정이를 놓아 주었다. 딱정이에게 큰 목소리로 인사도 했다.  


안녕, 딱정아!


3개월 간 우리 식구였던 딱정이가 부디 자연에서 다시 잘 적응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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