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일까?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작은아이에게 방을 만들어주기 위해 나의 오래된 책상과 책장을 버렸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했다. 책장에서 책을 다 꺼내고 책상 위아래에 놓인 잡동사니를 한켠에 치웠다. 다시는 보지 않을 것이 확실한 책을 버리고, 다시는 쓰지 않을 물건들도 버렸다. 사진과 기한이 지난 자격증, 성적표도 찢어 버렸다.
이참에 근 10년을 쓰던 매트와 유모차도 버리고, 결혼하면서 남편이 샀던 홈시어터도 버리기로 했다. 한 개의 스피커와 네 개의 기다란 스피커가 세트인데, 기다란 스피커가 걸리적거려서 아이들이 태어나고선 써본 적이 없다.
잡동사니들이 왜 이리 많은 건지. 아아, 나는 미니멀리스트로 살고 싶은데.
"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고 싶은데. 물건 없이 깔끔하게 살고 싶다고."
내가 말하자, 남편이 코웃음을 친다.
참고로 나의 남편은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 아니다. 나에게 매년 미모를 갱신하고 있다고 말해주거나 (사실무근), 지적이고 현명한 여성인 나와 결혼하길 잘했다는 말을 종종 한다. (약간의 사실을 기반으로 함) 그러나 내가 '미니멀리즘'이란 말만 꺼내면 그 말엔 절대 동의할 수 없는지 코웃음을 치곤 한다.
집이 엉망이면 발을 동동거리며 먼저 움직이는 쪽은 나다. 문제는 내가 치우면 별로 깨끗하지 않다. 나는 깨작깨작 정리하다 금세 무기력증에 빠진다. 반면에 남편은 최대한 집이 어질러지길 기다린 후 움직인다. (본인도 많이 어지럽히는 데 일조한다.) 고수는 나중에 등장하는지 내가 지쳐갈 무렵 일에 착수하여 후다닥 집을 깔끔하게 정리한다.
그러니까 나는 '깔끔한 사람'은 확실히 아니다. 그러나 '미니멀리스트'임은 분명하다. 나는 쇼핑이 싫다. 나에게 쇼핑은 즐거움이 아니라, 다 떨어진 필요한 걸 채워야 하는 의무이다. 쌀 떨어져서, 휴지 떨어져서 사는 것마냥 옷도, 화장품도 내게는 다 그런 느낌이다. 쇼핑한 물건이 택배로 오길 기다렸다가 택배 기사를 버선발로 맞이했다는 사람들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난 쇼핑만 싫어하는 게 아니라 물건을 수집하는 게 싫은 것 같다. 여행을 가서 남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은 호텔 어메니티 샴푸, 린스 등을 챙기는 일이었다. 나는 그게 이상하게 싫었다.
"그 샴푸랑 린스 챙겨가도 집에선 잘 안 쓰잖아."
"헬스장에 가져가서 쓰면 얼마나 유용한데."
"자기 헬스장 등록하고 운동 안 가잖아."
"어허! 하여간 챙기면 다 쓸모가 있어!"
공짜로 제공되는 물건을 챙겨오는 건데도 나는 집에 어떤 물건을 들이는 게 싫었다.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미니멀리즘'이란 단어가 나오기 전이었다.)
요즘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과감히 비워야 한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난 비우질 못하니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없는 듯하다.
나는 모으기도 싫지만, 버리기도 싫다. 플라스틱 장난감, 오래된 옷, 책과 노트 등 재활용으로 버린다고 내다 놓지만 그게 확실히 제대로 재활용이 되는지 미지수다. 안 버릴 순 없어 내놓는데 마음이 참으로 불편하다. 특히나 대형 폐기물을 버려야 할 땐 저 큰 물건을 어디로 가져가서 어떻게 처리하는지 걱정이다. 남들이 내다 놓은 소파, 침대, 장롱 등에 한숨지을 때가 많다. 버려진 가전기기를 보는 것도 싫다. 요새 가전은 고쳐 쓰느니 새로 사는 게 낫다고 하는데 고쳐서 오래 쓰게 만들어야지, 자꾸 새것을 사도록 유도하는 것이 싫다.
TV에서 연예인들 옷장이 나올 때 옷으로 가득 찬 옷장을 보면 과식을 한 것처럼 속이 답답하다. 가끔 옷장을 비워서 좋은 옷을 좋은 곳에 기부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 옷이 제대로 쓰임이 있을지 걱정이다. 그런 특이한 옷들을 누가 입겠냔 말이다. (누군가 잘 입고 계신다면 사과드립니다.)
잠시 눈을 돌려보니 집이 엉망이다. 치워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개켜야 할 빨래가 쌓여 있고, 거실엔 장난감이 널브러져 있다. 그렇지만 움직이기가 싫다. 아아, 그냥 이렇게 앉아 있으면 안 되겠니?
사실 고백하자면 나는 미니멀리스트도, 환경주의자도 아니다. 단지 움직임을 최소화하며 살고 싶을 뿐이다. 내가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은 아마도 ‘행동의 최소화(minimize)’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