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에 걸렸다고?

나는 누구일까?

by JOO

회사에서 후배 팀원이 "선배님, 우린 병에 걸렸잖아요. 말하고 싶은 거 못 참는 병."이라고 말한다. 하고 싶은 말은 하고야 마는, 나랑 비슷한 후배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웬만하면 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상대방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눈치도 없이 멋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말은 하려고 한다.


사실 어릴 적엔 상당히 소심하여 하고 싶은 말을 .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서는 뒤늦게 ' 그 말을 했었어야 했는데'라며 끙끙 앓고는 했다. 말하지 못해 병이 생기느니 하고 싶은 말을 하기로 결심했다.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서는 용기뿐 아니라 연습이 필요했다. 편지에 써서 하고픈 말을 전달하기도 했고, 중얼중얼 미리 연습한 다음 말하기도 했다.


결국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웬만큼 하며 살게 됐다. 말을 못해 잠 못 드는 일도 사라졌다. 하지만 그동안 직장에서 만난 상사들은 당황스러워했던 것 같다. 나를 진심으로 아꼈던 한 팀장님이 말했다.

"상무님이 OO 씨 하는 말에 불편했다고 하던데. OO 씨도 하고 싶은 말 좀 참아 봐."

"팀장님. 팀장님도 하고 싶은 말 다 하시면서 새삼 왜 그러세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해서 때도 많아요. 그래서 하는 말이야."

내가 상무님한테 그렇게 심한 말을 한 것은 아니었는데.

“이 안건 중요하니까 상무님 평소에도 관심 좀 가지세요.”라는 말이 그렇게 상처였나? 상무님 내 말 들을 때는 허허, 하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더니만.



얼마 전에는 아파트 커뮤니티에서 하는 요가 수업을 등록하였다. 1주일에 두 번 하는 수업으로, 한 달 동안 결석 없이 10번의 수업을 다 참석하였다. 그런데 수업 시간 내내 핸드폰을 보는 수강생이 있었다. 이 사람은 요가를 하다 말고 핸드폰을 본다.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이세요." 하면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핸드폰을 보고 "왼쪽으로 몸을 기울이세요." 하면 왼쪽으로 기울이다 말고 핸드폰을 본다. 때로는 동작이 바뀌었는데도 핸드폰을 보느라 바뀐 동작을 하지 않고 이전 동작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뭐 급한 일이 있나 보다 생각했지만, 그 사람이 보는 화면은 SNS나 포털 사이트였다. 요가 강사님이 그 수강생을 저지해 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으나, 강사님도 아파트 커뮤니티에서 고용된 입장에서 아파트 입주민과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순전히 내 추측이다.) 나라도 그 사람에게 말할까 말까 한 달 동안 고민하다가 마지막 수업 날이 되었다. 어차피 한 달의 마지막 수업 날이고 저 사람이 다음 달 수업에 등록할지 여부도 모르니 싫은 소리 말고 참아야지,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이 수업 끝나고 강사님에게 다가가서 말한다.

“다음 달에 자리 있나요?”


여태 참았던 나는 결국 나가면서 그 사람에게 수업 시간에 핸드폰을 안 보면 안 되냐고 넌지시 말했다.

“저요? 제가요?”

그 사람은 벌레 씹은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가버렸다. 그 사람도 무안해서 그랬으리라, 마인드 컨트롤을 했지만 나를 벌레 보는 듯 보던 그 표정은 생생하다. 하고 싶은 말을 꼭 하고야 마는 나, 병 맞네. 그래도 누군가는 꼭 일이란 생각엔 변함이 없다.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어!


병에 대해 쓰다 보니 내게 다른 병도 있다. 바로 ‘포장 못 하는 병’. 요새는 자기가 한 일보다 더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내세우는 사람들 천지인데, 나는 내가 해놓은 일들도 별것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는 몹쓸 버릇이 있다. 내가 생각했을 때 썩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를 포장하기도 부끄럽고, 내가 생각했을 때 꽤 만족스러운 결과라 하더라도 꼴사납다. 불리한 병 아닌 병을 안고 살아가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게 현재의 내 모습인데. 이 병마저 예쁘다고 어루만져주자.


주말이 끝나 간다. 이제 월요병이 찾아올 차례.

얼마 전에 이직한 ‘말하고 싶은 거 못 참는 병’에 걸린 후배에게 연락이나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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