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배우 윤여정 님의 동생이자 LG 그룹 최초의 여성 임원인 윤여순 님은 일이 좋았다고 한다. 일에 많은 시간을 쏟느라 아이를 보는 시간이 적었지만, 아이를 대하는 시간만큼은 최선을 다해 아이와 대화하고 아이에 관심을 가졌다. 아이는 처음에는 엄마와 오래 함께하지 못하는 것에 서운해했으나, 일하는 엄마를 이해하고 멋있게 생각했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워킹맘의 이미지란 이런 거다. 엄마가 된 여성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므로 아이와 독하게 이별(?)해야 한다. 또는 반대로 아이 때문에 경력 단절이 되거나,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다하지 못하여 ‘그렇고 그런’ 직원이 된다. 나 역시 출산 후 일을 제대로 못 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었다. 큰아이 출산 때는 진급이 누락될까 봐 육아휴직을 쓰지 않고 출산 휴가 90일 만에 복직했다.
그런데 나중에야 워킹맘이라고 해서 꼭 자기 일을 사랑한다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그랬다. 아이를 낳기 전에도 일을 사랑한 건 아니었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더욱 확연해졌다. 진급이나 고과에서 좋지 못한 평가를 받을까 봐 아등바등하며 살았으면서 정작 나는 내 일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회사에서 나는 자아실현을 할 수 없었다.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절대적으로 많았지만, 그 시간은 보람이나 성취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쪼개 가며 15년이나 한 직장에서 일했는데 자아실현이 되지 않았다니, 나 여태 뭐 한 거지? 그럼 나에게 남은 건 뭐지? (스쳐 지나간 월급과 꾸역꾸역 얻은 직급은 차치하고.)
아, 내 소개가 늦었다. 나는 만 40세, 16년 차 직장인, 14년 차 주부, 11년 차 엄마이다. 가정에서는 아내이자 엄마이고, 직장에서는 차장으로 불린다. (차장까지 가기 힘들었다.) 워킹맘으로 살아오면서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적어도 ‘차장’이란 타이틀을 남기고자 한 건 아니었는데. (부장은 더욱 아니다.)
인생의 아마도(?) 반쯤을 살아온 이 시점에 나는 누구이고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싶다. 이것이 인생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대 맞벌이 엄마 아빠들도 함께 떠나면 좋은 여정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