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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Oct 05. 2022

홍익인간일랑 넣어두고 내 앞가림이나 잘하자

중학교 때 가정 시간이었다. ('라떼'는 남자는 기술, 여자는 가정을 배웠는데 요즘 중학교에선 기술가정 즉, '기가'를 배운다고 한다.) 1/2 크기의 작은 옷 만들기를 하는데 선생님이 설명을 쭉 한 다음에 본격적으로 실습을 하였다. 같은 반 친구들은 선생님의 설명을 제대로 안 들은 건지 이해를 못 한 건지 버벅버벅 헤매는 모습들이었다. '실전보다 이론'에 강한 나는 옆에 있는 애들한테 알려주기 시작하다가 나중엔 반 전체를 돌아다니며 모르겠다는 애들에게 옷 만드는 순서를 알려줬다. (애들이 하도 모른다고 하니 선생님이 혼자 돌아다니며 알려주기 버거워 나에게도 모르는 친구들에게 알려주라고 했다.)


그렇게 열심히 알려줘서 내가 얻은 실습 점수는? 높지 않았다. 아무리 이론에 강하더라도 결과물이 좋아야 하는데, 내가 만든 옷은 영 아니었다. 앞과 뒤의 크기가 달라서 이상한 티가 확 났고 바느질도 삐뚤빼뚤 볼품없었다. 거의 바닥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어야 하는데 친구들을 가르친 노력이 가상해서 점수를 좀 더 주셨던 것 같다.



며칠 전에 가족과 함께 버스를 탔을 때 일이다. 우리 가족은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데, 어떤 학생이 승차하면서 카드를 댔더니 "잔액이 부족합니다"라는 음성이 나왔다. 그다음에는 우리 아이들이 나에게 말을 시켜서 그 학생을 제대로 못 봤다. 그런데 그 학생이 자리로 가지 않고 운전석 옆에서 고개를 숙이며 핸드폰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혹시 버스비가 없어서 저러나 싶어서 물어보러 갈까 하다가 맨 뒷자리에 앉기도 했고 가족들도 있어서 자제했다. 나는 괜히 신경이 쓰여 계속 그 학생을 주시했다. 학생은 몇 정거장 후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리에 앉았다. 어휴, 다행이다. 괜히 물어봤으면 이상한 사람 될 뻔했네. 박애주의자도 아니면서! 오지랖은 좀 넣어두자. (무관심할 땐 또 굉장히 무관심함)



요즘 글쓰기 관련 책 몇 권을 읽었다고 한껏 고무되어 글쓰기에 대해 떠들어댔다. 맘씨 좋은 이웃 작가님들의 호의적인 댓글에 내가 뭐라도 된 양 더 정신을 못 차렸던 것 같다. 그러다가 이번에 브런치북을 만들면서 현타가 세게 왔다. 개별 글을 하나 쓰는 것과는 또 다른 세계에서 중심을 잡기가 힘들었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잘하고 싶은 마음과 부족한 능력 사이의 간극. 한참을 나댔던 게 부끄럽게 이제야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정신 차려. 너 아니어도 다 잘할 사람들이야. 출간 작가에 글 잘 쓰는 사람들한테 주제넘게 뭐 하는 짓이야? 글 안 쓰는 이들에게 글 쓰라고 독려하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려는 홍익인간(a.k.a 오지랖)일랑 넣어두고 내 앞가림이나 잘하자.

내 앞가림을 위해 갑분홍보!


이번에 처음으로 브런치북을 만들었어요. 새로 쓴 글도 있고 기존에 써둔 글을 손본 것도 있네요.

글을 묶는 과정에선 괴로웠지만, 다 묶고 나니 결과물이 은근히 재미있는 듯요? (낚시 멘트...)

많관부! (많은 관심 부탁해요!)

많기부! (많은 기대 부탁해요!)


한 줄 요약: 홍익인간일랑 넣어두고 내 앞가림이나 잘하자.


대문 이미지 출처: 이희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길벗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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