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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Sep 27. 2022

글을 쓸 상황이 아니라는 이들에게

나는 새해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지키지 않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서다. 언제부터 새해 계획을 안 세웠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계획을 세웠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계획을 전혀 지키지 않았다. 지킬 계획만 세우면 되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지킬 계획을 세울 거라면 새해가 아니라 평상시에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새해 계획을 안 세운다.


일일 계획, 주간 계획, 월간 계획도 세우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List up 하고 주어진 시간 안에 최대한 하려고 한다. 이런 방식이 회사에서는 잘 맞지 않는다. 회사에서는 뭘 보여줘야 한다. 일일 계획, 주간 계획, 월간 계획을 짜라란 세우고 또 일일 보고, 주간 보고, 월간 보고를 한다. 나 같으면 그럴 시간에 일을 더 하겠다.


여기선 그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고, 최근에 글쓰기 모임 활동을 시작했다. 모임을 하지 않았더라도 나는 글을 썼을 것 같지만, 글이란 게 그렇다. 혼자서는 외롭다. 잘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슬럼프도 자주 온다. 그래서 글 쓰는 사람들과 함께 하면 나을 것 같아서 하기로 했다. 수다를 통해 글감도 얻고 글에 대한 고민얘기해서 좋다.   


이 모임에서는 1주일에 글 2개를 숙제로 한다. 강제성은 없고 자율적인 숙제다. 지킬 계획만 세우고 싶다고 말한 부분에서 내 성격이 드러났겠지만, 나는 사실 규칙을 잘 따르는 편이다. 계획을 안 세우는 것은 못 지키는 게 싫어서이고. 그래서 일단 어떤 모임에 들어가면 규칙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 말은 즉 나는 글럼프(글+슬럼프), 글태기(글+권태기)를 겪더라도 1주일에 글 2개를 꼭 지키려고 아마도 노력할 것이란 말이다.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기로 한 사람들은 저마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억지로라도 글을 쓰고 싶어서, 또는 글로써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어서 등 여러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이 모임의 취지가 ‘글을 쓰자’는 것이니 그 취지에 맞게 글을 써보려는 노력을 하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처음엔 의욕에 차서 좀 해보려다가 나중에 못하게 되는 건 이해가 되더라도 (작심삼일은 인지상정) 처음부터 쓰지 못하는 이들을 보니 안타깝다. 어떠한 동기로든 글을 쓰고 싶어서 글쓰기 모임에 참여했을 터인데 이 기회마저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기에 완벽한 상태란 게 있을까? 글을 쓸 최상의 컨디션, 완전무결한 상황이란 없다. 글 쓸 상황이 되지 않는다면 쓰지 못하겠다는 끄적임이라도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 써지면 안 써진다고, 쓰기 싫으면 쓰기 싫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어쩌면 자신의 완벽하지 못한 글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못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잘 쓰고 싶은데 잘 쓰지 못할 게 뻔해서, 그런 자신의 모습과 결과물을 직면하는 게 너무 괴로워서일 수 있다. 그런 괴로움 또한 이해가 가기에 더욱 안타깝다.



작가가 꿈이었던 중학생 시절, 나는 한 자도 쓸 수 없었다. 쓰는 족족 다 쓰레기 같았기 때문이다. 글만 쓰레기가 아니라 나란 인간 자체가 쓰레기처럼 느껴져서 괴로웠다. 몇 년을 자기비하하다가 ‘나는 글에 소질 없어’라며 꿈을 폐기했다. 되든 안 되든 시도하고 연습했어야 했지만, 연습을 하기에 나는 그리 단단하지 못했다. 나는 ‘완벽주의 성향이 있지만 완벽하지 않은 허술한 인간’이란 것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또한 인간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으며, 나 정도면 그래도 괜찮은 인간이라고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10여 년을 노력했다.) 내가 단단해지니 지금은 별로인 글을 쓰는 것에 두려움이 다. 내 스타일을 찾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연습해 보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글을 못 쓴다고 나란 사람을 하찮게 보지 않는다. (물론 한 번씩 현타가 세게 찾아온다. ‘남들은 잘 써. 내 글은 별로야. 내 글이 이 모양이니 구독자 수와 조회수도 고만고만하지. 어차피 고만고만하게 쓰다 묻힐 글이야.’ 등등)   


글을 쓰지 못하는 이들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가장 괴로운 건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저마다 사정이 있을 것이다. 옛날의 나처럼 심한 괴로움을, 더 나아가 심한 자기비하까지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쓰기로 약속하고 쓰지 못하는 것에 불편함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글을 쓸 완벽한 상황은 오지 않는다. 결국 가로막힌 벽에서 자신이 스스로 헤쳐 나와야 할 수밖에 없다. 그 여정에 누구도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이 진심으로 안타깝다.


누군가는 내게 "내가 얼마나 바쁜지 알지도 못하면서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네!"라고 할지도 모른다. 혹은 "당신이 뭐 글쓰기 전문가도 아니고 본인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면서 주제넘게 이런 소리를 합니까?"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써놓고 발행하지 않을까도 생각했다. 그래도 하고 싶은 건 해야만 하는 이 몹쓸 심보. 그나마 내가 영향력 있는 인사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기에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유명인사가 아니니 내가 먹을 욕도 적을 것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이랑, <오늘도 춤을 추며 입장합니다, 쓰기 지옥>의 일부를 인용하며 마친다. 내 글, 구려도 이뻐해 주자.

언제부턴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내 글 최고의 독자를 나로 정하기로 마음먹었다. 전에 똑같은 작품을 한 친구에게는 “이거 어때…별로지…?” 하면서 보여주고, 다른 친구에게는 “이거 좀 볼래? 진짜 잘 나온 것 같아” 하고 보여줬을 때, 전자의 경우 반응은 “어, 좀 별로긴 하다”였고 후자의 반응은 “와, 진짜 너무 좋다”라는 것을 알게 된 뒤, 내가 내 작품을 대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그냥 나는 내 편이 되기로 결심했다. 어릴 적부터 구원 콤플렉스가 너무 심했던 나로서는 아주 큰 결정이었다. 그동안은 누구 한 사람이라도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영원히 사랑해 주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그런 사람을 만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연인이나 친구를 사귀어도 그 마음은 충족되지 않았고, 언젠가 이별이 찾아온다는 게 너무 가슴 아팠다. 음악가로 데뷔를 하고 작가가 되고 팬이 생겨도 나는 이별의 순간을 먼저 떠올렸고 안타까운 마음만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구원받고자 하는 욕망을 내려놓기로 했다.

가족, 친구, 연인, 팬들 모두 나를 영원히 지켜봐 줄 수 없는 사람들이지만 나는 내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볼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나를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 이랑, <오늘도 춤을 추며 입장합니다, 쓰기 지옥> p. 113~114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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