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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Sep 22. 2022

엄마가 주인공인 글을 엄마께 보여드렸다

가족 중에 내 글을 읽는 사람은 남편뿐이다. 다른 가족들이 읽는다고 상상하면 신경이 쓰여 한 자도 쓸 수가 없다.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위해 부모님과 아이들에게는 내 글을 보여주지 않는다.


얼마 전에 <엄마와 화장품>이란 글을 쓰면서 그래도 명색이 엄마가 주인공인 글인데 엄마에게 보여드릴까 잠시 고민을 했었다. 그러나 왠지 엄마께 보여드리면 딸이 돈이 없는 줄 알고 용돈을 주실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말았다.


그런데 어제 그 글이 Daum에 노출되었다.

 Daum에 뜬 기념으로 엄마에게 해당 글을 카톡으로 보내 드렸다. 엄마는 글을 읽어보시고 "돈의 가치와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는 계기가 되어 좋구나"라고 답을 하셨다. (아니, 딸이 여태 돈의 가치를 잘 모르는 철부지였다고 생각하고 계신 겁니꽈?)


내친김에 "이런 글도 있습니다"라며 <엄마와 지하철>을 보내 드렸다. 엄마 반응이 좋지 않을 것 같아 약간 신경이 쓰였는데, 엄마가 "글을 맛깔나게 잘 쓰네"라고 답을 해주셔서 훈훈하게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앞으로는 엄마가 주인공인 글을 엄마께 보여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노트북과 책을 싸 갖고 카페에 갔다. 브런치북을 한 번 꾸려보겠다는 야심을 갖고 말이다. 아이스 라테와 메이플 피칸 파이를 먹으며 폭풍 카톡을 하고 있는데 엄마가 전화하셨다.

"화장품 남는 게 있어서 갖다 줄까 하는데."

"아니, 엄마, 그 글 명절 전에 쓴 거야. 나 화장품 새로 샀어. 이럴까 봐 내가 글을 안 보여준 건데!"

"아니야! 그거 보고 그러는 거 아닌데? 원래 주려고 했어. 지금 갖다 줄게. 아니면 엄마네로 올래? 점심 사줄게."

"나 지금 뭐 하고 있는데."

"엄마가 차로 데리러 갈게. 차 타고 금방 오면 되잖아."


안 간다고 하다가 코로나로 격리 풀린 지 얼마 안 되는 엄마, 아빠를 보러 결국 친정에 갔다.

"엄마가 점심 사 올게. 뭐 먹을래?"

"음, 지금 배불러서 생각 안 나는데."

"지금 정해놔야 점심때 붐비기 전에 사 오지."

"나는 알약! 알약 먹으며 살고 싶어."

너는 골고루 잘 먹으면서 살아야 건강하지, 그딴 소리나 하냐고 잔소리를 하실 줄 알았던 엄마가 "하긴, 뭐 먹을지 생각하는 것도 귀찮다"라고 호응을 해 주신다. 나는 신이 나서 "먹는 것도 귀찮아. 뭐 먹을지 생각하는 것도 귀찮아. 해 먹는 건 정말 더 귀찮아!"라고 말했다. (인간이 왜 태어나서 이렇게 먹고 살아야 하냐는 말은 부모님 앞이니 참았다.)


어쨌든 엄마에게 아이 크림, 영양 크림, 마스크 팩을 받고, 초밥까지 얻어먹었다.

아낌없이 주시는 우리 엄마. 받고만 왔는데 왜 이리 피곤하지? 이번 글은 엄마한테 안 보여 드릴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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