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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Sep 20. 2022

경아의 하루

도서관으로부터 예약 도서 <<하쿠다 사진관>>이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예약 도서 대출을 위해 길을 나선다. 도서관 학습기기실에 앉아서 책을 읽고 글을 쓸 계획으로 노트북을 챙겼다. 반납할 책 <<5년 만에 신혼여행>>과 오늘 읽을 책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도 챙겼다. 예약 도서 <<하쿠다 사진관>>을 빌려서 읽는다면 굳이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까지 싸갈 필요가 없지만 오늘은<<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가 땡긴다. 짐의 무게를 줄일 것인가, 내 마음을 따를 것인가? 나는 내 마음을 따르기로 한다. 고작 책 한 권을 뺀다고 확 가벼워질 것도 아니고, 사람이 늘 그렇게 효율적으로 살 수는 없으니.


토스 만보기로 돈을 벌기 위해 집 근처 공원에 올라간다. 토스 만보기는 하루에 천 보를 걸을 경우 10원, 5천 보를 걸을 경우 10원, 만 보를 걸을 경우 20원을 준다. 그리고 근처 지정 장소를 가면 20원씩 최대 100원을 준다. 매일 만 보 이상을 걷고 지정 장소까지 가면 최대 140원을 벌 수 있다. 우리 집 근처 지정 장소들은 공원인데, 죄다 산이다. 높지 않아도 일단 올라가는 데 결심이 필요하다. 오늘은 도서관 가는 길에 두 곳을 들르기로 한다. 한 장소에서 20원을 받은 후 다음 장소에 갔다.


지하철역 근처 공원 벤치에 잠시 앉았다. 공원을 둘러보니 이곳엔 할아버지 둘과 나뿐이다. 한 할아버지는 운동기구에 앉아 있고 한 할아버지는 벤치에 하릴없이 앉아 있다. 내가 자리 잡은 벤치에는 말라비틀어진 밥풀떼기가 있다. 누가 여기서 도시락이라도 먹은 걸까? 밥풀떼기를 구경하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걷다 보니 만보기 20원을 챙기지 않은 게 생각난다. 뒤로 되돌아가 만보기 앱에서 20원 받기를 눌렀다. 20원은 놓칠 수 없지!


도서관 학습기기실에 자리를 잡았다. 노트북을 세팅했는데, 와이파이가 안 잡히네? 도서관은 와이파이가 제공되지 않나?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지만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다. 와이파이를 잡아봤자 카톡이나 하겠지. 블루투스 키보드를 꺼내 핸드폰과 연결한다. 아니, 이럴 바엔 무겁게 노트북을 왜 가져왔어? 아니다. 그래도 글을 쓰려면 노트북이 편하다. 작고 귀여운 블루투스 키보드는 카톡이나 댓글에 적합하다. 노트북에 인터넷을 연결하기 위해 모바일 핫스팟을 연결하여 핸드폰의 데이터를 노트북에 끌어 온다. 내가 이런 것도 할 줄 알다니! (남편의 공이 크다.)


학습기기실 이용 에티켓에 “불필요한 마우스 사용 자제 및 과한 자판 소음을 자제해주세요.”라는 문구가 있다. 나는 지금 과한 자판 소음을 내고 있는가? “키보드용 키스킨 자판덮개 장착과 함께 무소음 마우스를 사용해 주세요.”라는 문구도 보인다. 그러고 보니 자판을 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누가 혹시나 뭐라고 할까 봐 소심하게 자판을 친다.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를 읽는다. (이 책은 지금 막 읽기 시작했으므로 다 읽은 후에 별도로 리뷰를 남기기로 한다.) 책을 읽다 보니 어이쿠, 갈 시간이다. 점심도 먹어야 하고 아이 영어 공책도 사 가야 하는데 시간이 될까 몰라. 학습기기실을 나가는 길에 보니 떡 하니 와이파이 연결법이 부착되어 있다. 아... 이런 게 인생이다. 다음번엔 잘할 수 있겠지.


원래는 쌀국수를 사 먹을까 했지만 시간이 부족하여 찐만두를 샀다. 만두집 옆 서점에서 영어 공책도 두 권 집어 들었다. 버스 앱으로 버스 알림을 해놨는데, 잘하면 버스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버스 정류장까지는 사거리에서 두 번 길을 건너야 한다. 처음에는 보행자 신호 켜지는 순서를 잘 몰라서 한 번 건넌 후 세 개의 보행자 신호가 차례로 켜질 때 초조하게 기다리곤 했다. 그 사이 버스는 지나가 버렸다. 그러나 이제는 보행자 신호가 켜지는 순서를 잘 알아서 최소한의 대기 시간으로 길을 건넌다. 길을 건너자마자 노트북과 책과 공책을 들고 뛰고 뛰어(!) 뒤에서 오는 버스를 탔다. 이런 게 성취감인가? 사소한 것에도 배움이 있다. 나에게는 우리 집 근처 지하철역 사거리 신호등을 건너는 노하우가 있다고.


휴직하면 평일의 여유를 즐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왜 이리 바쁘고 촉박하냐. 무거운 걸 들고 다니느라 어깨는 빠질 것 같고 종종거리고 다니느라 발은 아프지만, 그래도 신간 도서도 빌려오고 사소한 글도 쓰니 나쁘지 않은 하루다.

"오늘도 모두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행복한 JOO의 하루" (나의 노래방 애청곡 '경아의 하루' 가사 차용)




DOG의 '경아의 하루' 링크 걸려고 찾다 보니 DOG의 보컬이 '왁스'였다고라고라?

세상에나 만상에나, 20년을 모르고 불렀네. 어쩐지 노래를 잘하더라니...

(TMI. 저는 소리만 지르고 노래는 잘 못합니다.)

이 노래는 오랜만에 들어도 넘나 신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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