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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Nov 14. 2022

누굴 위한 휴직인가?

현재 사용 중인 육아휴직 종료 시기가 다가와서 무급 휴직 신청서를 작성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휴복직 신청서 전자결재 창을 띄워놨더니 큰아이가 다가와서 환하게 웃으며 묻는다.


"엄마! 드디어 복직해요?"

"아니. 다른 휴직 신청하려고."

"엄마, 왜 회사 안 가요? 엄마는 생산은 안 하고 소비만 하고 있어요."

"음? 엄마가 너희도 돌보고 집안일도 하고 있잖아. 그리고 엄마 만보기로 하루에 40원씩 벌어!"

"그건 생산이라 할 수 없어요. 우리 집 이러다 가난해진다고요."



초등학교 4학년 큰아이는 요즘 사회 시간에 생산과 소비에 대해 배우고 있다.

아이가 경제에 대해 제대로 배운 건 좋은데 좀 서운하다.

서운함은 넣어두고 아이에게 묻는다.


"가난해지면 뭐가 안 좋아?"

"일단 가난해지면 월세를 낼 수 없고, 식재료도 살 수 없으며, 점점 돈이 떨어지면 집까지 팔아야 한다고요."

"그래. 일리 있는 말이야. 하지만 아직은 괜찮아. 엄마가 쉬는 동안 쓸 돈은 있어."

"엄마, 통장에 돈 얼마 있어요? 저보다 돈 많아요?"

"너보단 많아!"

"저 ○만원 넘게 있어요. 엄만 얼마 있는데요?"

"그건 말할 수 없어!!! 하여간 너보단 많아. 근데 엄마가 집에 있는 게 안 좋아?" 

"그건 아닌데 우리 집이 가난해질까 봐 걱정이에요."

"엄마 생각엔... 너는 지금 어느 정도 커서 시간 맞춰 학교랑 학원을 다니지만 동생은 그게 아직 안 되니까 엄마가 한 2년 정도 동생 봐주면 동생도 너처럼 스스로 잘 다니지 않을까?"

"엄마, 1년 쉬면 동생이 2학년 말, 그러니까 거의 3학년이나 다름없으니 혼자 다닐 수 있어요. 2년 말고 1년만 쉬세요."


예상치 못한 아이의 말에 나는 조용히 휴직 신청서를 닫았다.

'에라이, 오늘 안 올려! 나 혼자 있을 때 낼 거야!'



예전에 아이들이 어렸을 적엔 내가 아이를 돌보지 못하고 회사에 가는 게 미안했다.

"애 보랴, 회사 다니랴 고생 많지?"라는 따스한 말을 들어도 "아니요. 아이는 퇴근해서만 보는데요. 저는 별로 하는 게 없어요."라며 위로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루 종일 '온전히' 아이를 보는 게 아니란 생각에 나 스스로 자격 미달이란 생각도 했다.


코로나로 큰아이가 학교에 거의 가지 못하던 재작년, 그리고 온라인 수업과 등교를 번갈아 하던 작년, 엄마로서의 미안함은 더욱 커졌다. 아이 수업도 봐줘야 하고 생활 습관, 학습 습관도 바로잡아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답답했다.



올해 잔여 육아 휴직을 쓰면서 아이들의 생활 습관과 학습 습관을 바로잡아주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는 않은 듯하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제 나름대로 생활을 잘 해내고 있어서 억지로 바꿔주기보다는 아이들을 믿어 주려고 한다. 아이들에 대한 부채감을 덜고 이제 남은 휴직 기간 동안은 내 몸과 마음을 정비하여 단단한 사람이 되는 데 주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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