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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Dec 06. 2022

내글별로병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바로 글럼프(글+슬럼프) 또는 글태기(글+권태기)다. 하도 자주 와서 이제 어지간해선 말하지도 못하겠다. 쓰긴 써야겠는데 '뭐 쓰지? 왜 생각 안 나지? 왜 안 써지지?'라며 혼자 안달복달만 한다. 브런치에 글럼프라고 고백한 것만 벌써 너댓 번은 된 것 같아서 이번은 좀 다소곳이 있고 싶은데, 또 이렇게 징징대고 있다. 나는, 묵묵하게 있다가 훗날에 "나 사실 그때 좀 힘든 시기였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멋있다. 그러나 그런 쿨함은 나와는 거리가 먼 것을...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주절대는 것이 내가 어떤 시기를 지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리 멋지진 않지만 기왕 주절대기로 한 것 더 주절거려보자.    



약 1년간 맨땅에 헤딩 식으로 글을 써왔다. 글을 배워본 적도 없이 그저 썼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막다른 모퉁이에 다다랐단 생각이 들었다. 길을 뚫어 내든지 새로운 길을 찾아가야 할 것 같은 느낌. 내가 지금 맞게 쓰는지 모르겠고, 앞으로도 이렇게 쓰면 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렇다고 대놓고 지적을 받으러 가는 자리를 찾아 가기엔 꺼려졌다. 내가 건전한 비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을 것 같았다. 나약한 멘털을 부여잡고 창작 활동을 하기에 브런치는 좋은 공간이다. 브런치에는 좋은 이웃들이 많아서 다들 따뜻한 의견을 주신다. 그 '우쭈쭈' 덕분에 200개가 넘는 글을 썼다.



라라크루(Light Writing Crew) 2기의 3개월 활동 기간이 종료되어 합평회를 앞두고 있다. 3개월 동안 발행했던 글 중에 합평회에서 발표할 원고 하나를 선별해야 하는데, 하나같이 맘에 들지 않는다. 쓸 땐 괜찮다고 생각했던 글이 왜 이제 보니 다 별로라 느껴진다. 이를 어쩐담! 제목을 수 차례 살펴보다가 꾸역꾸역 하나를 골라서 올렸는데, 올리고 나서도 다른 글로 바꿀까 말까 고민 중이다. '내 글 별로인 것 같아 병 (=이하, 내글별로병)'에 시달리고 있다. 누구도 해결해줄 수 없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내글별로병'에 시달리게 된 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11월에 들었던 어떤 수업이었다. 서울시민대학 동남권캠퍼스에 '함께 쓰는 육아 에세이'라는 수업이 개설되어 신청하였다. 육아 에세이의 간단한 이론을 듣고 실제 원고를 써서 함께 문집을 만드는 수업이었다. (<최선의 육아> 저자 강나영 강사님께서 수강생들의 원고를 편집하여 문집으로 내주실 예정)


내가 브런치에 들어와서 주로 썼던 분야가 육아 에세이였는데, 나는 그동안 어떻게 글의 흐름을 정리해야 할지, 결론을 어떻게 맺어야 할지가 늘 고민이었다. 그 수업을 통해 내가 그동안 해왔던 고민의 돌파구가 보이는 느낌이었다. 녹취록 수준의 디테일했던 아이들과의 대화를 좀 압축하고 내 생각을 좀 더 담고 여운을 주는 결론을 쓰면 되겠다, 는 깨달음도 잠시. '내가 여태 썼던 글 다 별로네? 뭘 몰라서 마구잡이로 썼네? 이걸 글이라고 올려놨네?'라는 부정적 생각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강사님은 나에게 앞으로도 계속 쓰라며 따스하게 격려해 주셨건만.   


두 번째 이유는 최근에 읽은 에세이들이었다. 내가 에세이를 쓴답시고 끄적이면서 정작 에세이를 많이 읽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요즘 에세이를 연달아 몇 권 읽었다. 그랬더니 자신감이 바닥이 되었다.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 한다. 에세이를 쓰려면 좋은 에세이들을 읽어야 한다. 아니, 사실 솔직한 심정을 고백하자면 모르는 게 약이다. 몰랐을 때가 좋았다. 글을 올리면서 부끄럽지 않았는데, 이젠 뭔가 부끄럽다. 나는 왜 잘 영글고 다듬어서 쓰지 못하는가!  


갑자기 몇 달 전 나를 격려해주던 분이 생각난다. 그건 바로 나탈리 골드버그 선생님이다. (실제 격려받은 건 아니고 책을 통해 격려받았다.) 그분이 지금의 나를 보면 안타까워하실 수도 있단 착각이 불현듯 든다. 선생님이 책에서 그러셨다. 좋은 글을 써놓고도 자기 글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는 사람을 보면 안타깝다고.



글쓰기 수업을 할 때 자주 경험하는 아주 이상한 현상이 있다. 아주 뛰어난 글을 써 놓고도 정작 글을 쓴 사람은 그 글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는 현상이다. 나와 다른 학생들이 아무리 칭찬해도 소용없다. 그 글을 쓴 사람이 좋은 글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는 사람들이 왜 저럴까 하고 멍청하게 쳐다보기만 한다. (중략) 자신이 좋은 글을 썼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나는 학대를 받거나 짓밟힌 사람을 볼 때보다도 더 심한 안타까움을 느낀다.

아니, 근데 골드버그 선생님, 글이 좋아야 좋다고 하지요. 별로인데 어찌 좋다고 합니까?



(며칠 후)


며칠이 지나도록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얘를(=이 글을) 이제 그만 보내줘야 할 텐데, 시간이 더 흐른다고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다. 어차피 오래 잡고 있는다고 글의 퀄리티가 올라갈 리도 만무하다.



결국, '내글별로병'은 내가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 속이 쓰리지만 내 글이 별로면 별로라 받아들이고, 여기저기 깎고 다듬을 수밖에. 깎은 델 또 깎고 깎지 말아야 할 곳을 깎을지도 모르나, 그러다 보면 미세하게, 개미 눈물만큼이라도 좀 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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