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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Dec 07. 2022

그날의 햇살

그날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었던 건 순전히 시간이 떴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사서 버스를 탔다. 머릿속으로 시간 계산을 해보니 이래저래 시간이 애매했다. 아이 학교 앞에서 내리면 아이 하교까지 15분 정도가 남고, 버스를 더 타고 집앞까지 가서 내리면 짐을 집에 두자마자 뛰어 나와도 늦을 터였다. 영하의 날씨에 밖에서 15분을 있어야 하는 게 고민되었지만, 발을 동동대며 초조하게 뛰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학교 앞 정류장에서 내렸다.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았다. 책을 꺼내 읽을까 하다가 일단은 그냥 있기로 했다. 햇살이 따스했다.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햇살의 온기는 왼쪽 머리부터 왼쪽 어깨, 그리고 몸 전체로 전해졌다. 노곤하고 나른해졌다.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좋았다. 해란 참 고마운 존재구나. 이래서 광합성이 필요하구나.


주변에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오고 갔다. 다행히 나신경을 거스르는 사람들이 없었다. 모두 조용히 길을 지나가거나 버스를 기다다. 그 덕분에 고요히, 온전히 햇살을 즐길 수 있었다.  


어떤 강렬한 느낌은 오래도록 기억된다. 어릴 적에 꿈에서 본 '미도(美)'의 파랗디 파란 바다가 선명하게 기억난다. 꿈에서 깨자마자 생각했다. 미도라는 섬은 어딘가 꼭 있을 거라고, 언젠가는 가슴 벅찰 만큼 아름답던 미도의 바다를 실제로 볼 날이 있을 것 같다고. 직까지 꿈에서 만난 그곳에 가보진 못했지만 기억만은 생생하다.



시간을 쪼개며 머리와 몸을 움직였던 바쁜 하루 중간에, 멈춤 버튼을 누르고 쬐었던 햇살도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온기를 충전하고 머리를 비운, 잠깐의 쉼. 햇살이 필요한 이들에게 햇살을 선물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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