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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Oct 13. 2021

우리 집은 부자예요, 가난해요?

초등학교 3학년인 큰 아이가 요즘 경제 관념이 생겼는지 부쩍 묻곤 한다. 

"엄마, 우리 집은 부자예요, 가난해요?" 

"글쎄, 우리 집은 그냥 중간인 것 같은데." 

이 대답을 들은 아이는 석연찮은 표정을 짓는다. 얼마나 부자여야 부자인 건지, 얼마나 가난해야 가난한 건지를 모르니 우리 집이 중간이라고 해도 시원하게 이해되지는 않나 보다.


아이 덕분에 나도 다시금 돈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악착같이 돈돈 거리고 싶진 않지만 삶의 질을 생각하면 당연히 돈은 중요하다. 돈을 벌 땐 열심히 벌고, 아낄 수 있을 땐 아끼되, 쓸 땐 즐겁게 쓰고 싶다는 내 나름의 모토를 가지고 있다.



회사에 입사한 후 늦은 여름 휴가에 프랑스 파리에 간 적이 있다. 친구 두 명이 먼저 파리에 가겠다고 결정했고, 나는 뒤늦게 합류하기로 하였다. 우리가 머문 숙소는 한인 민박이었는데 아침과 저녁이 한식으로 제공되는 곳이었다. 조식 제공 여부는 풍성한 여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나는 평소에 간단히라도 아침을 늘 챙겨먹는 데다가 여행에선 반드시 아침을 챙겨 먹는다. 아침을 든든히 먹어놓으면 많이 걸어야 하는 여행길이 덜 고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석식은 또 다른 얘기였다. 현지 음식을 먹는 것이 여행에서의 큰 즐거움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애시당초 민박집에서 석식을 먹을 생각이 없었다.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면 싸울 일이 종종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특별한 부딪힘이 없이 잘 다녔던 것 같다. 관광지 선택에 대한 마찰도 없었거니와, 혹시 가보고 싶은 장소가 다를 것 같으면 각자 다니다가 만나자고도 이야기했다. 사회에 나와서 만난 친구들이었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할 줄 아는 쿨한 친구들이었다. 아침은 민박집에서 먹고 점심은 돈을 아끼겠답시고 바게뜨빵을 사서 공원이나 야외에서 먹곤 했다. 하도 바게뜨빵을 많이 먹어서 우리는 턱이 아플 지경이었다. 그러나 나는 저녁만은 잘 먹고 싶었다. 그 때는 와인을 마시지도 못 할 때였는데, 그래도 분위기 내며 와인과 좋은 저녁을 먹고 싶었다. 



대학생 때 배낭여행으로 파리에 간 적이 있었다. 방학 때 유럽 배낭여행 가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해도 모두가 다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한 달간 유럽 배낭여행을 갈 수 있게 해준 부모님께 감사할 일이었다. 큰 돈을 들여 일단 유럽에 가긴 갔으나 여비는 당연히 충분하지 못 했다. 적은 돈으로 한 달을 버티려면 최대한 아끼고 아껴야만 했다. 동생과 나는 호텔팩에 포함된 호텔 조식을 많이 먹고 점심과 저녁 비용은 최대한 아끼며 다녔다. 


유럽 여행에서 마지막으로 간 도시가 파리였는데, 파리의 거리거리마다 사람들이 노천에서 커피를 마시고 좋은 식사를 하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밖에 세워져 있는 메뉴판을 슬쩍 보면 놀라 기절할 만한 가격이라 '저 사람들은 대체 돈을 얼마 벌길래 이렇게 비싼 걸 먹고 마실까.'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도 언젠가 여기서 먹을 수 있는 날이 오긴 올까?'라는 생각도.



어쨌든 나도 돈을 벌기 시작하여 다시 파리에 왔다. 비록 아직 사원이라 매 끼 비싼 음식을 사 먹을 정도로 벌지는 못 하지만 그래도 여행 중 한두 끼 정도는 사치를 부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을 먹자고 제안하였다. 두 친구는 민박집에서 저녁을 주니 민박집에 가서 먹자고 하였다. 나는 혼자서라도 외식을 하겠으니 친구들에게 둘이 먼저 민박집에 가라고 하였다. 나는 한국에서도 혼자 밥 먹는 데 익숙했고, 진심으로 혼자 식당에 가서 먹어도 괜찮았다. 아, 물론 코스 요리인 프렌치 레스토랑은 혼자 가본 적이 없었지만 그런 시도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두 친구 중 한 친구는 강경하게 민박집에서 저녁을 먹고 싶어했고 나머지 한 친구는 살짝 흔들리는 것 같았다. 사실 우리가 여행 와서 쇼핑을 한 것도 아니고 먹는 데 돈을 많이 쓴 것도 아닌데 돈 남겨가면 뭐 할 거냐, 다른 곳도 아닌 파리까지 여행 와서 프렌치 레스토랑 한 번 안 가보면 너무 아쉽지 않겠냐며 친구들을 설득하여 결국 우리는 샹젤리제의 어느 레스토랑에 가서 코스 요리와 와인 한 잔씩을 먹었다. 



나중에, 한참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한인 민박에서 저녁을 먹자고 강경하게 주장했던 친구는 경제 사정이 많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안 계시고 어머니는 어렵게 적은 돈을 버시고 오빠는 돈을 벌지 않는다고. 모르긴 몰라도 이 친구가 그 가정에서 경제적 가장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파리에 여행을 왔던 것도 이 친구에게는 큰 결심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환전해 온 돈을 남겨 가고 싶다고 했는지도. 그렇지만 한편으론 그 돈 남겨갔어도 어차피 어머니와 오빠가 썼을 텐데, 그럴 바에야 여행에서 시원하게 쓰고 즐거운 시간 보냈으면 그게 더 나은 거 아닌가, 란 생각도 든다. 

친구가 세상을 떠나고 보니 그런 생각이 더 든다. 돈이 다 무슨 소용이람.



인간이 죽어서까지 돈을 싸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적당히 즐기며 쓰고 싶은데, 애들한테 들어가는 돈은 왜 이리 많이 들어가며, 앞으로 애들 크면 더 많이 들어간다 하고,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어 노년에 돈이 없어도 안 되니 잘 모아야겠고. 

우리 집이 중간이라고 말하려면 엄마가 회사 열심히 다녀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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