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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Mar 09. 2023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킥보드 분실 사건

큰아이의 킥보드가 분실됐다. 3년 전 아이에게 생일 선물로 사준 두발킥보드다. 아이의 등굣길 및 학원 통원을 책임지는 든든한 교통수단이건만, 벌써 세 번째 분실이다.



첫 번째는 아이가 놀이터에 세우고 놀다가 깜빡하고 집에 걸어왔다. 저녁에 뒤늦게 세워둔 자리에 가봤으나 없었다. 아파트 카페에 '킥보드 찾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더니 댓글이 올라왔다. '어제 *동 앞 화단에 쓰러져 있는 거 봤어요.' '지금은 *동 앞에 있는 거 같아요.'

고맙게도 주민들의 관심 덕에 킥보드를 찾았다.


두 번째는 아이가 아파트 필로티 구석에 세워두고 학원 차를 타고 학원에 갔다. 아이 나름대로 킥보드를 구석에 주차한 건데 학원 갔다 온 사이에 킥보드가 없어졌다. 마찬가지로 아파트 카페에 글을 올렸다. 밤 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댓글이 올라왔다. 방금 고덕역 근처 학원 건물 앞에서 비슷한 킥보드를 본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일단 가봐야 맞는지 알 수 있어서 부랴부랴 남편을 보냈다. 남편에게 아이 킥보드가 맞다는 연락이 왔다. 아파트에서 10분이나 떨어진 곳에서 킥보드가 발견되니 어이가 없고 화도 났다. 학원에 늦은 누군가가 킥보드를 타고 갔다가 학원 앞에 버려둔 것 같았다. 오죽 급한 마음에 그랬을까 하고 넘기기로 했다.



오늘은 (늘 그랬듯이,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그러듯이) 아파트 상가 앞에 킥보드를 세워두고 학원에 갔다. 40분 만에 밖에 나오니 킥보드가 사라졌다. 안쪽에 세운 작은아이 킥보드는 있는데 바깥쪽에 세운 큰아이 킥보드만 없다. 이번엔 또 어떤 애가 타고 간 건지 화가 났다. 아파트 카페에 또 글을 썼다. 아파트 카페는 눈팅만 하는 공간인데, 킥보드 분실할 때만 글을 써서 민망하다. 그러나 이곳의 정보력을 믿어야 했다. 상가 앞에 서서 부랴부랴 카페에 글을 올리고 일단 집에 왔다. 작은아이 저녁을 챙겨주면서 카페 댓글이 달리나 핸드폰을 봤지만 소식이 없었다.    


두 번이나 오뚝이처럼 살아 돌아온 킥보드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나는 지난번처럼 지하철역 어딘가에 킥보드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어디에 있을지 모를 킥보드를 찾아 고덕역 학원가로 향했다. 고덕역에 학원이 몇십 개인데 다 돌 수 있을까? 그래도 한 건물에 여러 학원이 모여 있으니 건물로만 따지면 열 몇 개쯤이니 다 돌 수 있겠지. 눈에 불을 켜고 샅샅이 둘러봤으나 아이의 킥보드는 보이지 않았다.  


10만 원 돈을 주고 산 킥보드를 잃어버린 게 확실해지는 순간이다. 이런 순간에도 눈치 없이 배가 꼬르륵거린다. 오늘따라 돈까스가 먹고 싶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한번 가보고 싶었던 식당에 들어간다. 마제소바와 돈까스 세트를 시킨다. 이 와중에도 마제소바가 뭔지 궁금하다. 10만 원을 버리게 생겼는데 13,000원짜리 메뉴를 시키다니 염치가 없지만 일단은 맛있게 먹기로 한다.

마제소바 돈까스 세트


오뚝이 킥보드와 작별 인사도 못했는데,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다. 킥보드를 새로 사줘야 할지, 아니면 없이 다니라 할지 고민이 된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큰아이에게 비보를 전했다.

"안 돼! 내 다리나 다름없는 내 킥보드!!!"

아이는 절규했다.



아이에게 저녁을 챙겨주는데 드륵 진동이 울린다. 이것은 카페 댓글이 달린 신호다!

"아까 **놀이터에 킥보드 세워져 있는 거 봤어요."

가슴이 뛴다. 일단 아이 킥보드가 맞는지는 가서 확인해 봐야 알 일이지만, 왠지 맞을 것 같다는 강한 느낌이 온다. 아이에게 밥 먹고 있으라고, 엄마가 빨리 다녀오겠노라고 말했더니 밥 먹고 같이 가고 싶다고 한다. 자신의 킥보드를 직접 확인하고 싶다고.


놀이터에 가봤더니

할.렐.루.야!

아이 킥보드가 그네 옆에 예쁘게 세워져 있었다.

'어떤 넘의 시키가 남의 킥보드를 맘대로 타고 여기다 갖다 놨어?'라는 마음의 소리를 꾹 누른 채 아이에게 "찾아서 다행이다."라고 말했더니 아이가 "으으! 복수하고 싶어!!"라고 말한다.

"복수할 대상이 누군지도 모르고, 복수하는 것보단 찾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우리 마음의 평화를 위해 좋은 거야."라고, 나는 제법 어른스럽게 말했다.

아이도 "칠전팔기 킥보드네요."라며 즐겁게 집으로 향했다.


오뚝이 킥보드

오늘 뭔가가 묘하게 잘 안 풀리는 하루라는 생각이 들어 짜증났는데, 막판에 그래도 잘 마무리되어 기분이 좋아졌다.

귀소 본능이 있는 우리 킥보드, 칭찬해!

킥보드가 어디에 세워져 있든 간에 제보해 주는 우리 아파트 주민들에게도 칭찬과 감사를 보내고 (이 글을 보진 않겠지만) 오늘 17,000보 넘게 걸은 나도 칭찬한다.

아이고, 다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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