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ren Ann, Not Going Anywhere
요가가 끝나고 지친 몸을 끌고 들어왔다. 샤워하고 책을 읽을까, 유튜브를 볼까, 점심은 뭘 먹을까 같은 생각을 하며 부엌에 갔더니 한껏 쌓여 있는 설거지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요가 시간에 늦을까 봐 아침 먹은 그릇을 싱크대에 담가만 놓고 간 것이다. 내가 하지 않았으니 설거지거리가 거기에 그대로 있는 게 지극히 당연하건만, 보는 순간 짜증이 확 올라온다.
'니들 왜 아직 거기 있니?'
문득 'Not Going Anywhere'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잔잔한 기타 선율과 차분한 목소리가 좋아서 듣기 시작한 노래인데, 가사가 좋아서 더 흠뻑 빠졌었다. 모두가 다 변하는데 나만 그대로인 것 같아 두려웠던 시절에 많이 들었던 노래다. 그러면서도 고집스럽게 생각했다.
'세상이 변하고 주변인이 변할지언정 나는 한결같이 내 모습을 지킬 거야. 아니, 근데 나마저 변하면 어쩌지?'
그 시절을 뒤돌아보니 나는 도대체 뭐가 두려웠던 건지 모르겠다. 변하든 변하지 않든 간에 세상을, 시절을, 장소를, 주변인을, 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되는 것을.
Tide will rise and fall along the bay
(파도가 해안을 따라 밀려왔다 밀려가도)
and I'm not going anywhere
(나는 어디에도 가지 않아요)
People come and go and walk away
(사람들이 왔다 갔다 사라져도)
but I'm not going anywhere
(나는 어디에도 가지 않아요)
[Keren Ann, Nog Going Anywhere]
오랜만에 명곡을 들으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변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는 않되, 나의 주변인에게는 한결같이 든든하게 서 있는 존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과거 여행 잘했고 노래 잘 들었다. 그래서? 설거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 말이야.
설거지거리 왈: I'm not going anywhere! (난 아무 데도 안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