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Joo절Joo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O Sep 27. 2023

금니여 잘 있거라

월요일 점심, 곤드레밥을 먹는데 뭔가 딱딱한 게 씹힌다. 설마 돌인가? 옛날엔 쌀을 씻으며 쌀조리개로 돌을 걸러내줘야 했지만 이 시대에! 살살 꺼내 보니 어금니에 때워놨던 금 조각이다. 작년 봄에도 고기를 씹다가 제일 끝 어금니의 때운 부분이 떨어졌는데 이번엔 그 이 바로 옆니다. 이를 때운 지도 벌써 20여 년이 되었으니 슬슬 보수가 필요한 시점인가 보다.


작년에 치료할 때 보니 떨어진 금니 조각이 이에 딱 맞으면 그걸 부착하면 되는데 내가 한 번 씹는 바람에 금니 모양이 살짝 변형되었다고 한다. 그것을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고, 대신 치과에 주면 치료비에서 3만 원을 빼준다고. 물론 내가 갖고 있다가 팔아도 되어 일단 금니 사는 곳에 물어봤더니 금액이 높지 않았다. 그래서 치과에 금니 조각을 주고 치료비에서 3만 원 할인을 받았다.


이번에도 그대로 사용하거나 치료비에서 빼달라는 요량으로 금니를 잘 보관하였다. 작은 크기의 지퍼백이 다 떨어져서 작은 비닐봉지에 고이고이 넣어 내가 늘 들고 다니는 크로스백 안쪽에 넣어뒀다. 당일 예약은 다 찼다고 하여 다음날 일찍 예약을 잡았다.


다음날 치과에 갔다. 내가 첫 환자라 대기 없이 바로 치료실로 들어갔는데 치과실로 들어가면서 느낌이 뭔가 싸하다.


앗, 내 금니! 거기에 내 금니가...




상황은 이러하다. 월요일은 재활용 날이다. 우리 아파트는 일주일에 두 번 재활용품을 배출하는데 이번 주는 추석 연휴 때문에 월요일 한 번만 배출한다. 오전에 남편이 1차로 재활용품을 버렸고, 오후에 한두 번 더 내가 버리려고 화장대부터 화장실까지 정리하며 버려야 하는 종이와 플라스틱류가 있는지 촘촘히 검사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도 정리 겸 재활용품 수색은 계속되었다. 쌓아놨던 아이들의 헌 문제집도 내놓고 아이들이 택배 상자로 만든 작품(한때는 애지중지했으나 이젠 거들떠보지 않는)도 내놨다. 하나라도 빠지는 게 있을세라 싹싹 긁어모아 버려야지, 혈안이 되었다. 저녁에 약속이 있으니 마음이 더 급했다.  


정리하다가 아이를 데리러 가고 간식을 챙겨 주고 데려다주고 또 간식을 챙겨 주고 또 데리러 오고 (아이 두 명의 스케줄이 달라서 바쁨) 사이사이에 재활용품을 버렸다. 마지막으로 아이들 저녁 먹을거리를 준비하고 나도 서둘러 저녁 약속 자리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매일 매고 다니는 크로스백을 여니 웬 비닐봉지가 있다. 내 가방에 쓰레기가 있는 건 다반사다. 애들이 밖에서 간식을 먹고 난 쓰레기, 애들 손 닦아준 물티슈, 휴지 등등 넣을 곳이 마땅치 않으면 일단 가방에 넣어뒀다가 집에 와서 버린다. 그래서 비닐봉지도 그런 거겠거니 하고 비닐류 재활용장에 휘릭 던져 버렸다. 모처럼 있는 약속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내가 휘릭 던진 비닐봉지에 바로 내 금니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치과 치료실에 들어서면서야 그 엄청난 사건이 생각난 거고.  

"어떻게... 집에 가서 다시 찾아보시겠어요?"라고 친절하게 묻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아니요. (제 손으로) 확실히 버렸어요."라고 대답하면서 가슴이 미어졌다.


가뜩이나 돈 나갈 데가 많은 명절을 앞두고 이 무슨 짓인가! 이미 지나간 일에 연연하지 말아야겠지만, 내가 한 헛짓거리에 자꾸만 헛웃음이 나온다.


금니여 잘 있거라 (Farewell to a gold tooth)

부디 비닐 사이에서 살아남기를...  


제목은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Farewell to Arms)>를 차용하였습니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매거진의 이전글 떠나간 H 님께 드리는 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