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부고는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지인 당사자의 상이라면 더더욱이요.
5월부터 7월까지 약 두 달간 도서관에서 독서동아리 리더 양성과정 수업을 들었습니다. 거기서 H 님 당신을 알게 되었죠. 근처 자리에 앉은 터라 매주 서로 눈인사 정도를 나눴을 뿐이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대화의 물꼬를 튼 것은 마지막 수업 바로 전 수업이었습니다. 그날은 독서 동아리를 신청하는 마감일이었지요. 도서관에서 독서 동아리 신청 시 도서와 소정의 활동비를 지원해준다고 하였음에도 선뜻 신청하지 못한 것은 누구와 독서 모임을 만들어야 할지 몰라서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H 님이 손을 건네주셨지요. 독서 동아리를 함께할 생각이 있는지 먼저 물어봐주셔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H 님의 근처에 앉아 있던 세 명이 함께하기로 하여 우리는 최소 인원 네 명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첫 독서모임은 수업 시간에 다룬 적 있는 김연수 작가의 <진주의 결말> 토론이었습니다. <진주의 결말>은 수업 시간에 질문지를 만들면서 어렵다고 생각했던 작품입니다. 수업 시간에는 제한된 시간 때문에 본격적인 토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독서모임에서 토론하기로 했을 때 저의 심정은 걱정 반 기대 반이었습니다. 아니, 걱정이 훨씬 컸던 것 같습니다. 제가 사회자를 하기로 했기 때문에 토론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막막했거든요. 혹여나 이야기가 제대로 안 나오거나 겉도는 수다만 떨다가 끝날까 봐 노심초사했습니다.
우리의 첫 모임 날, 제 걱정은 기우였단 걸 깨달았습니다.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으니까요.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은 과연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지, 또한 어떤 것을 선택하며 자신의 인생을 만들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빈틈없는 삶보다는 아주 작은 틈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바람이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의 물꼬는 H 님이 터주셨습니다. H 님이 터주는 물꼬를 붙잡고 우리는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죠. 참 좋은 모임이었습니다.
우리의 첫 독서모임
첫 모임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H 님이 떠나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H 님의 부군을 통해서였습니다. 참으로 얄궂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음 독서 모임에서 토론하기로 한 책을 도서관에서 막 빌려 온 날이었습니다. 또한 독서모임 멤버들에게 다음 모임 날짜를 리마인드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지요. 그런데 심장마비로 갑자기 떠나셨다니요! H 님의 부군께서는 H 님 당신이 첫 모임을 하고 와서 좋은 모임이라며 기뻐하셨다는 말을 전해주셨습니다. 앞으로 우리 모임이 너무 기대된다고 하셨다는 말도요.
그러니까요! 저도 들떴습니다. 저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신선한 자극을 주고받을 생각에 말이죠. 앞으로 두 번, 세 번, 네 번에 걸쳐 계속 만들어 갈 우리의 이야기가 기대됐습니다. H 님과 책을 통해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이 단 한 번 뿐이었다는 게, 그리고 앞으로는 그 기회가 없다는 게 정말 아쉽습니다. 게다가 우리 독서모임에 대해 보여주신 당신의 열의와 의욕을 잘 알기에 안타까움이 더 큽니다.
H 님, 짧은 시간이었지만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는 남은 세 명이 부족하나마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게요. 부디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2023년 7월 20일 목요일
JOO 드림
* 손편지 쓰기 공모전에 내려고 7월에 작성한 글입니다. 공모전에서 수상하지 못하여 안심(?)하고 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