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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Oct 06. 2023

연휴엔 놀이공원(1)

롯데월드와 롯데호텔

긴 추석 연휴에 양가 부모님 댁을 방문한 후에 롯데월드에 다녀왔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롯데월드가 있지만 놀이공원에 가려면 큰 결심이 필요하여 막상 자주 갈 수 없다. 시간도 길게 내야 하고 사람에 치일 준비, 오래 줄 설 각오 등도 필수다.


연휴라 사람이 많을까 봐 대기 없이 탈 수 있는 패스트 트랙 티켓을 예매하려 했다. 방문 2일 전 00시부터 예매가 가능하여 알람을 맞추고 밤 11시 55분에 앱에 들어가 00시에 바로 예매 버튼을 눌렀으나 실패! 소문대로 치열했다. 돈을 추가로 들이려 해도 살 수가 없구나. 결국 놀이공원에서 줄이 길 대로 기다릴 수밖에 없다.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어 롯데월드 개장 시간 전에 도착했다. 첫 놀이기구로는 배를 타고 스릴을 즐기는 '후룸 라이드'를 선택했다. 기다리면서 큰아이가 묻는다.

"엄마, 후룸 라이드는 Flume Ride인데 왜 플룸 라이드가 아니고 후룸 라이드야?"

"아 그건 말이지. 우리 말에 F 발음이 없잖아. 예전엔 일본 영향으로 '후'라고 썼거든. 계란 후라이도 그렇고, 이따가 탈 후렌치 레볼루션도 그렇고. 근데 이후에 외래어 맞춤법 규정에서 F를 '프'로 쓰기로 한 거야."


... 물어봐놓고 제대로 안 듣는 것 같은 건 나의 기분 탓인가.

어쨌든 우리 차례가 되어 큰아이가 맨 앞에, 뒷자리에 작은아이와 내가 탔다.


참고로 남편은 놀이공원에 함께 갔지만 놀이기구를 타지 않았다. 자신에게 '타지 않을 자유'를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는 남편. 그래서 놀이공원에 가면 그는 가방 담당과 사진사 역할을 하고, 나와 아이들이 놀이기구를 타는 동안에는 핸드폰을 열심히 들여다본다. (지루하지도 않나!)  


배의 양 옆 손잡이를 꼭 잡고 레일을 따라 이동하다가 드드드득 위로 올라갔다.

기대된다고 소리 지르는 큰아이와 무서울 거 같다고 긴장한 작은아이의 상반된 반응. 나는 무서워하는 작은아이를 쓰다듬어주었다.

"이제 내려간다!!!"


다 타고 나니 큰아이의 옷이 꽤 많이 젖었다. 큰아이가 맨앞에서 물을 뒤집어써준 덕분에 나와 작은아이는 머리만 살짝 젖고 옷은 하나도 안 젖었다.

"나 많이 무서웠어."

작은아이 눈에 눈물이 찔끔 나 있었다.  

"에구, 저런. 많이 무서웠어? 우리 근데 더 무서운 롤러코스터 가러 갈 건데 괜찮겠어?"

"처음이라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돼서 그랬어. 후렌치 레볼루션 탈 수 있어. 꼭 탈 거야."


전의를 불태우는 작은아이의 모습에 고무된 우리는 서둘러 2층으로 가는 길을 찾았다. 그런데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사람들로 꽉 막혔다. 줄이 너무 길어 우리는 일보후퇴의 차원에서 지하로 향했다.


지하에는 4D 놀이기구들이 있다. 기구를 타고 화면을 보며 계곡을 체험하는 와일드 밸리, 정글을 탐험하는 와일드 정글, 비행을 하는 와일드 윙이다. 와일드 밸리를 먼저 탔는데, 물방울이 또 튀어서 큰아이는 "물은 이제 그만!"이라고 외쳤다. 후룸 라이드에서 젖은 옷이 채 마르기도 전이었으므로. 와일드 정글은 건너뛰고 와일드 윙을 탔다. 무난하니 재미있었다. 가까운 화면을 연달아 두 개 봐서 그런지 속이 살짝 울렁거리는 느낌이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야외인 매직 아일랜드로 나갔다. 놀이기구마다 줄이 너무 길어서 줄 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어른은 러스와 소시지를 먹었다. 한 녀석은 아이스크림을 줄줄 흘리고 한 녀석은 아이스크림을 바닥에 떨어뜨려서 휴지로 옷 닦아주랴, 바닥 닦으랴 정신이 없었다. 한편으론 이럴 때가 아니데 싶어 초조하기도 했다. 놀이공원 좋아하던 젊은 시절의 나는 놀이기구 하나라도 더 타려고 퍼레이드도 안 보고 간식도 안 사먹었건만.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에 보니 자이로 드롭 대기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한 번에 여러 명이 타니 줄이 길어도 금방 줄어드는 모양이었다. 나는 줄을 일단 서고 남편에게 큰아이를 보내라고 전화했다. 나와 큰아이가 자이로 드롭을 타는 동안 둘째는 남편과 안 무서운 놀이기구를 탔다. (나중에 아이한테 들어보니 아기들 타는 놀이기구라 진짜 재미 없었다고.)  


자이로 드롭은 아파트 25층 높이까지 올라갔다가 시속 94km로 3초 만에 떨어지는 놀이기구다. "엄만 타본 적 있어요? 어때요?"라고 묻는 큰아이의 말에 나는 "어, 올라가서 멈췄을 때만 무섭지. 순식간에 내려와서 괜찮아."라고 기세 좋게 대답했지만 나도 내심 떨렸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기다리는 동안 빗방울이 살짝 떨어지던 터라 운행이 중단될까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비가 많이 오지 않아 탈 수 있었다. 자리에 앉아서 안전바를 내리고 안전벨트도 채웠다. 예전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얼굴 앞에 가림막이 생겼다. 코로나 때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자이로 드롭 바깥에는 '진짜 재미 없는' 놀이기구를 막 타고 온 남편과 작은아이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큰아이와 나는 둘에게 손을 흔들며 위로 올라갔다. 살짝 옆으로 돌면서 위로, 위로, 위로 올라간다!  


최고 높이까지 올라갔다. 자이로드롭은 잠시 멈췄다. 모두가 숨 죽이고 곧 닥칠 운명을 마주할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먼 곳까지 훤히 보이는 전경을 잠시 즐긴다. 그리고 휘잉 내려가기 시작. 1초, 2초, 3초. 몸이 붕 뜨면서 내 심장도 한 번 들썩이는 느낌이다. 순식간에 바닥으로 내려왔다. 아이가 무섭지 않았을까 약간 걱정했는데 아이의 표정이 밝다. 아이는 자신이 해냈다며 상기된 얼굴이다. 나도 듬직한 놀이기구 메이트가 생겨서 마음이 든든하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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