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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Dec 19. 2023

기분 전환

뭔가 짜증 나는 아침이었다. 병원에서 아이의 진단서를 떼기 위해 가족관계증명서가 필요하여 병원 내 서류발급기에 갔는데 암만 해도 지문이 인식되지 않았다. 기계의 지문 찍는 부분을 닦고 내 손가락에 입김을 불고 별 걸 다 해봐도 안 되었다. 서른 번 넘게 시도하다 결국 포기했다.


일단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는 집에 와서 컴퓨터로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으려는데 자꾸 입력한 주민등록번호와 인증서의 주민등록번호가 다르다고 나온다. 그동안 잘 이용하던 사이트와 인증서인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지문도 인식되지 않더니 주민등록번호도 틀렸다고 하니 순간 내가 사회에서 거부당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객센터에 문의하여 결국 해결했지만 서류 하나 뽑는 데 시간을 지체하여 조금 짜증이 올라왔다.


병원에 다시 가야 하는 번거로움을 참고 길을 나섰다. 병원 가는 길에 점심도 사 먹고 평소 점찍어둔 카페도 가봐야겠다 생각했다. 그 카페는 겉에서 보기에 작고 아늑해 보였는데 손님이 늘 많지 않아서 조용히 시간 보내기 좋을 듯했다. 그런데 오늘 지나며 보니 카페에 사람이 많다. 몇 안 되는 테이블이 꽉 차서 들어갈 수 없다. 오늘은 뭔가 잘 안 풀리는 날인가 보다.


카페는 잠시 미뤄두고 점심을 가볍게 먹으려고 김밥집에 들어왔다. 마음에 썩 드는 메뉴가 보이지 않아 수제비와 꼬마김밥이 나오는 수제비세트를 주문했다. 수제비가 나오는데 옆 테이블 아주머니 둘이 대화한다.

"수제비 맛있겠다!"

"어, 수제비 진짜 맛있어 보인다! 다음엔 수제비 먹어야겠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중대한 기로에서 탁월한 선택을 한 것처럼, 그 선택을 널리 인정받은 것처럼.


수제비는 짜고 마늘맛이 강해 생각만큼 맛있진 않았지만, 기분 전환은 확실히 되었다.


외부의 요인으로 기분이 나빠졌다가 타인에 의해 기분이 좋아진 오전. 남은 시간은 나 스스로 기분 전환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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