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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Jan 22. 2024

복직 전 작은 다짐

예전에 회사 다닐 때 가장 귀찮은 게 컵 씻기였다. 종이컵을 안 쓰려고 머그컵과 텀블러를 사용했는데 설거지하러 가는 게 너무 싫었다. 매번 물로만 대충 씻거나 정수기의 뜨거운 물로 휘이 소독(?)하거나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종이컵을 썼다. 사정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책상에 컵을 놔두고 종이컵, 또 종이컵.


어느 날 한 팀원이 텀블러용 세척솔과 세제를 사다 놓더니 말했다.

“환경을 생각합시다. 이제 이걸로 컵 씻으세요.”


세심한 후배의 마음이 고마워 귀찮음을 참고 컵에 세제를 쭉 짜서 설거지하러 나섰던 기억이 난다.


사실 컵을 씻으러 가지 못한 데에는 귀찮음도 있었지만 휘몰아치는 업무 때문에 초조한 마음이 컸다. ‘이것까지만, 이것까지만’ 하다 보면 전화와 메신저와 상사의 호출 등 계속 새로운 일이 생기곤 했다. 설거지는커녕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는 시간조차 촉박했다.   


약 2년 간의 휴직 생활을 마치고 복직을 앞두며 내가 제일 먼저 한 생각은 ‘컵 씻기를 귀찮아하지 말자’였다. 일이 바쁜 건 바쁜 거고, 컵을 씻으러 가는 시간을 잠깐의 휴식으로 생각하자고. 몇 시간 쉬지 않고 내리 일한다고 하여 일이 금방 끝나는 것도 아니니 나에게 컵을 씻을 여유 정도는 주자. 컵을 씻으러 간 김에 컵 씻기 다음으로 귀찮은 스트레칭도 하고.


어떻게 하면 일에 함몰되지 않고 나를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해 내내 고민했었다.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찾은 듯하다. 첫 출근을 앞두고 내가 가장 먼저 챙긴 짐은 바로 수세미와 주방 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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