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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Dec 16. 2021

나의 첫 번째 (구)독자

두 달 전 브런치 작가가 됐다는 메일을 받고 며칠이 지나 남편에게 말했다.

"나 요즘 좀처럼 재미있는 일이 없었는데, 그나마 재미있는 일이 하나 생겼어. 브런치 작가 신청했는데 됐어."

"오, 그래? 잘 됐네. 응원할게. 계속 잘 써봐."

남편은 응원한단 말과 함께 나의 첫 번째 구독자가 되어주었다. 

담담한 축하와 응원의 말에 나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며칠 후, 노트북 앞에 앉은 내게 남편은

"이욜~~~~~ 작가!"

라며 과장된 몸짓과 얄미운 말투로 말했다.

"어우, 그러지 좀 마. 사람을 왜 놀려?"

"놀리는 거 아니야. 내가 널 왜 놀려? 그냥 호들갑 떠는 거지. 내가 호들갑 총량이 정해져 있어서 호들갑을 떨어줘야 해."


나의 남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사귀기 시작하자마자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결혼 날짜 잡자마자 자랑하기, 임신 확인하자마자 자랑하기 등등의 호들갑 전적이 있었다. 

그 중 최고봉은 내가

"회사 생활 힘들다. 나 휴직할까? 나 진짜 버텨보고 몇 달 후에 휴직할 거야." 했더니 시부모님께 "JOO가 곧 휴직한대요."라고 말했던 일이었다. 곁에 있는 남편에게 투정처럼 말한 거였는데 그걸 그대로 전할 줄은 몰랐다. (난 쉬겠다고 말해놓고 안 쉬고 5년을 더 다니고 있다.)

나는 좀 신중한 편이라 오래 생각하고 내 마음이 다 결정됐다고 느꼈을 때 사람들에게 말하는데, 남편은 그런 면에선 나와 정반대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이선균이 아직 상무로 승진한 것도 아니고 상무 후보만 됐을 뿐인데, 형과 동생이 설레발을 치고 동네 지인들을 불러 파티를 하는 그 장면! 

그 장면에서 나는 남편을 떠올렸다. 우리 남편도 호들갑에 설레발만큼은 그들에 뒤지지 않으리라.  

 

출처: tvN 나의 아저씨 동영상 캡처 (남편이 사진 추가 요청하여 넣음ㅋㅋ)

그렇지만 남편도 이제 사회적 지위도 있고 체면을 생각하다 보니 밖에선 맘껏 호들갑을 떨진 못 하던 차에 건수를 하나 잡았으니 이해가 안 가는 바도 아니었다.

  

"그래. 하긴 밖에서 편하게 호들갑 못 떠니까 집에서라도 떨어야지. 근데 자기가 그러면 놀리는 거 같아서 나 못 쓰겠어."

"아니야. 재미있게 읽고 있어."

"자기는 그냥 내가 올리는 거니까 무조건 라이킷 누르잖아."

"내가 그렇다고 생각해? 아니야. 내가 얼마나 냉정한데. 난 재미있는 것만 라이킷 눌러."

...라고 하면서 모든 글에 라이킷을 눌러주는 남편.


때로는 "으아닛, 내가 라이킷 1빠를 놓치다니!"라고 카톡이 오고

"잘 읽었다."라고도 카톡이 온다.




지난 주 일요일 저녁, 남편과 밥을 먹으며 대화를 하다가 남편이 올해 아주 열심히 살았다면서 자신의 성과에 대해 얘기를 했다. 듣고 있자니 갑자기 서글퍼졌다.

내 남편이 좋은 성과를 낸 것은 응원할 만한 일이다. 남편은 실제로 정말 열심히 산다. 

그러나 거기엔 나의 시간과 체력도 갈려 들어가 있는 셈이다. 

남편은 주말에도 일을 해서 내가 애들을 주로 본다. 물론 아이들이 아주 어리지 않고 형제 둘이서 잘 놀기 때문에 나도 애들한테 계속 매달리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뭔가 필요로 할 때 아빠가 집에 있어도 엄마를 주로 찾는다. 나는 왠지 억울하고 힘에 부칠 때가 많다. 

 

브런치 작가님들을 보면 참 부지런한 사람이 많다. 생업에 종사하며 매일매일 글을 올리시는 분들은 어떻게 저런 시간과 에너지가 있을까? 존경스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난 평일에 일하고서 아이들을 보면 방전이 되기 때문에 주말에라도 글 쓸 짬을 내보고 싶은데 여의치 않다. 

내가 노트북 앞에 앉으면 애들은 와서 조잘조잘댄다.

작은 아이는 "엄마, 뭐 해? 나랑 놀자."

큰 아이는 "엄마, 나도 노트북 바꾸고 싶다. 엄마 쓰는 거 같은 걸로 쓰고 싶다. 노트북 새로 사주면 안 돼?" 

그러면 아지랑이처럼 잠시나마 피어 오르던 글감이 그대로 스쳐 지나간다.


"아니, 브런치에 보면 평일에 일하고 주말에 카페 가서 글 쓰는 워킹맘 작가님들 많던데. 나는 자기가 주말에도 바빠서 그렇게 못 하고."

"주말에 카페 갔다 와."

"됐어. 내가 뭐 대단한 글을 쓴다고... 자기는 주말에 일하면 돈 벌지만 내가 뭐 글 쓴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에이, 글 쓰는 게 너의 자아실현인데 중요하지. 주말에 카페 갔다 와." 


자아실현이란 말을 참으로 오랜만에 들었다.

여성도 일을 해야 하는 이유 중에 자아실현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난 회사에선 결단코 자아실현이 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고 나랑 잘 맞는 일도 아니지만 그래도 돈 버는 건 좋으니까 그냥 그렇게 참고 살았다. 그나마 입사하고 한 10년은 '여기서 자아실현이란 게 가능한 걸까?'란 생각이라도 했지만 이젠 아예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았는데. 


틈틈이 짬내서 쓰면 되지, 일부러 시간까지 내서 쓰냐고 하지 않아서 고마워요.

내 글이 재미있다고 해줘서 고마워요.

나를 항상 응원하고 지지해 줘서 고마워요.


나의 첫 번째 독자이자 구독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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