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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Dec 22. 2021

짧은 점심 외출 후 단상

오랜만에 재택근무를 하면서 점심시간에 크리스마스 카드를 사러 서점에 나갔다. 짧은 점심시간에 외출하는 것은 큰 결심을 요한다. 그러나 잠깐이나마 걷고 새로운 걸 보고 나면 기분 전환이 되기 때문에 길을 나섰다.


먼저 서점에 갔다.

무심코 크리스마스 카드를 집어들고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4,500원?

안 오른 물가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와! 4,000원대 카드라니!

내 기억으로 크리스마스 카드는 늘 1,000원이었건만.

그 카드만 특별히 비싼가 싶어서 서점에 진열된 카드란 카드 가격을 다 보았다.

3,000원 짜리도 있고 2,500원 짜리도 있었다. 1,000원 짜리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눈을 좀 더 비비며 샅샅이 찾았더니 코딱지만한 카드가 700원이었다. 유레카! 카드가 작으면 짧게 쓰면 되지 뭐. 그 옆에 크기가 적당하고 가격도 적당한 카드를 겨우겨우 찾았다. 1,200원.

회사였다면 가격 인상 근거를 갖고 와라, 인상폭이 적정한지 검토해라, 근거자료에 검토의견 줄줄이 써도 결재가 통과될까 말까였을 텐데. 비싸서 딴 거 사겠다고 하면 품목 적정성, 가격 적정성 따져봐라, 근거 자료 갖고 와라 그랬을 테지. 그래도 내가 개인적으로 구매할 땐 비싸서 안 사면 그만이고 싼 걸 찾으면 그만이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물가 인상의 씁쓸함을 한껏 느낀 쇼핑이었다.


다음은 서점 옆 정육점에 갔다.

저녁에 뭘 먹을까 찬찬히 보려는데 직원이 냉장고 뚜껑을 밀어 젖히면서 "뭐 드릴까요?"라고 무언의 압박을 준다. 헤드셋을 쓰고 모객 광고를 하면서 물건을 꺼내주고 계산을 하는 이 직원은 "구워 드실 거예요? 치맛살? 부채살? 뭐 드려요?"라며 나를 채근하는데, 그제서야 직원의 턱스크가 눈에 들어왔다.

맘 같아선 안 사고 오고 싶었지만 냉장고 문도 열어 제꼈겠다, 이 정육점이 다른 데보다 싸기도 해서 소고기 두 팩을 황급히 사갖고 왔다.


마지막으로 만두집에 갔다.

찜기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와서 가게 안에 있는 주인 아저씨 얼굴이 안 보인다. 내 옆에 아주머니는 만두가 쪄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좀 기다려도 주인 아저씨가 관심(?)을 주지 않길래 외쳤다.

"새우 교자 하나랑 김치 교자 하나요!"

그런데 쳐다보지도 않고 네, 란 대답도 없다. 제대로 주문이 된 게 맞나 고개를 갸웃갸웃 하며 안을 보니 냉장고에서 새우 교자와 김치 교자 판을 꺼내오더니 찜기에 올린다. '음, 주문이 들어갔구나.'

새로운 아주머니 손님이 왔다. 역시나 주인 아저씨는 본체만체 한다. 결국 아주머니가 말했다.

"만두 주세요."

주인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무슨 만두요? 뭔 만둔지를 말해야죠."

"아, 고기 만두요."

"고기 만두 뭐요?"

"어... 왕만두요."

"그렇게 말해야죠. 고기 만두가 교자랑 왕만두가 있는데 그냥 고기 만두라고 하면 어떻게 알아요? 다음부턴 구분해서 말해요."

주인은 짜증 섞인 말투로 손님에게 한껏 무안을 준 후에 고기 왕만두를 찜기에 올려놨다.

나는 생각했다. '다음? 과연 다음이 있을까? 저 따위로 말하는 가게는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을 텐데.'

나보다 먼저 온 아주머니의 고기 왕만두가 다 쪄졌다. 주인 아저씨는 뚜껑을 홱 열다가 왕만두 한 개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왕만두 대신 찐빵 넣을게요."

아주머니 손님이 오케이 하기도 전에 아저씨는 찐빵을 넣었고, 오래 기다린 아주머니는 그냥 고개만 끄덕여 받아가실 뿐이었다.

또 새로운 아주머니 손님이 왔다.

"고기 만두 주세요."

주인 아저씨는 또 한숨과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어떤 고기 만두요?"

"고기 왕만두요."

"여기는 고기 교자랑 왕만두가 있어서 고기 만두라고 하면 모른다고요. 어떤 건지 말을 해야 안다고요!"

옆에서 이 사태를 계속 지켜보던 나는 화가 나서

"사장님 아니세요? 사장님이면 그렇게 말씀 못 하실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상상 속으로만 수 차례 말하고 입밖으론 차마 내뱉지 못 했다.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는 바라지도 않는다. 손님에게 면박만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집에 오는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

기분 전환하려고 나선 점심 외출인데 씁쓸하게 돌아왔다.

그 만두 가게 다시는 가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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