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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Feb 06. 2022

사랑이 왜 이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려지는 사랑은 달콤하다.

눈에 콩깍지가 씌어 상대의 단점마저도 아름다워 보이고, 사랑의 힘으로 상대를 변화시킬 수 있다. 주인공의 사랑은 운명적으로 이어져 있다. 몇십 년 전, 혹은 몇천 년 전부터 이어지도록 정해져 있다. 절절하고 애틋하고 무조건적이다.


그런데, 내 사랑은 아닌데?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단점이 그대로 다 보이고 거슬리던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힘으로 변화되지 않고, 나 역시도 사랑의 힘으로 변화하지 않던데?

이거 뭔가 잘못됐다. 아무래도 나처럼 이성적인 인간은 낭만적인 연애하기 글러먹은 것 같다.

나는 내가 하는 사랑이 의심스러웠다. 난 상대를 무조건적으로, 100% 사랑하지 않는데 이건 분명 진정한 사랑이 아닐 거야.


젊은 시절 내가 했던 생각이다.

그러나 나보다 훨씬 더 심한 인간이 있었으니 바로 알랭 드 보통이다.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제목은 많이 들어 봤던 책이다. 읽어보려고 몇 번은 들췄다가 철학적인 말들과 대화 없는 긴 서술체에 지레 겁먹어 시도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막상 읽어보니 재미있다!

 

사랑에 빠지는 과정부터 연애의 과정을 각종 지식을 동원하여 서술하고, 이 사람을 왜 사랑하게 됐는지, 이 연애가 맞는 연애인지, 우리는 왜 싸울 수밖에 없는지 지속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책 전반에 사랑의 필수 요소인 '낭만'이라곤 코딱지만큼도 넣지 않았다. ('낭만'이라는 단어는 매우 많이 등장한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사랑이냐 자유주의냐'라는 챕터에서 클로이와 '내'가 클로이의 구두 때문에 싸우는 장면이었다. '나'는 클로이의 구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을 하고 클로이는 기분이 상한다.

 

"너는 왜 모든 걸 그런 식으로 망쳐야 하는 건데?"
"너를 좋아하니까. 누군가는 너한테 진실을 알려주어야 하잖아."
(중략)

우리의 말다툼에는 사랑과 자유주의의 역설이 담겨 있었다. 클로이의 구두가 어쨌든 간에 그것이 왜 중요하단 말인가? 클로이에게는 다른 좋은 점이 많으므로, 내가 이 자잘한 일에 눈길을 고정시키는 것은 우리의 게임을 망치는 행동이 아니었을까? 왜 보통 친구들에게 하듯이 예의바르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까? 나의 유일한 변명은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 그녀는 내 이상형이라는 것 - 구두만 빼면 - 따라서 나는 이 작은 결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보통 친구에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이다.


사랑하는 여자의 취향마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아닌 건 아니라고 대쪽같이 말하여 구두에 얻어맞을 뻔한 '나'의 이야기가 어찌나 유쾌하던지. 이 대목에서 나는 엄청 웃었다.


'사랑이 왜 이래? 내가 하는 사랑이 이상한가? 나는 연애에 몰입하지 못하는 인간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이 마음의 위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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