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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Feb 20. 2022

문구점 유죄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러 나가겠다고 했다. 겨울 내내 아이들의 운동량이 너무 부족했던 지라 내심 기뻤다. 애들은 놀라고 하고 나는 아파트 도서관에 갔다.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를 골라서 앉았다. 영화 '마션'의 주인공이 화성에 혼자 떨어진 어려운 상황에서도 춤을 추는 등 유머를 잃지 않았다는 부분에서 '그래, 나도 가끔씩 닥치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괴로움을 웃음으로 승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갑자기 큰 아이 건이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들이 다쳤거나 뭐 급한 일이 있나 싶어서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엄마!"

"엄마 지금 도서관이야. 이따 얘기하자."

"엄마, 윤이가 문구점에서 하나 사준대는데 사도 돼요?"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포켓몬 카드가 (여전히, 1년 가까이) 유행이다. 우리 아이들은 나에게 매주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천 원씩 용돈을 받아서 포켓몬 카드를 산다. 포켓몬 카드가 아닌 다른 물건이 사고 싶을 경우 내가 준 천 원에 자기 용돈을 보태서 2천 원이나 3천 원짜리를 사 오는 경우도 있다. '자기 용돈'은 할아버지가 만날 적마다 주셨던 용돈이다.


어쨌든 나는 도서관 안에 있어서 오래 통화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 일단

"알았어. 대신 다음에 윤이한테 사줘야 해."라고 하는데 도서관 사서가 와서

"여기서 통화하시면 안 돼요."라며 나를 저지시켰다. (의도치 않게 진상으로 등극!)


윤이는 건이와 3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한 친구다. 윤이가 포켓몬 카드를 하나 사주면 다음번에 건이가 윤이에게 사주면 될 거 같았다. 읽고 있던 책이 얼마 남지 않아서 나머지 부분을 다 읽고 저녁 찬거리를 사서 집으로 갔다.


그런데, 내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거실 바닥에 윤이가 사줬다는 물건들이 쫙 깔려 있었다. 아이들이 산 것은 포켓몬 카드가 아니었다.

24색 사인펜, 어몽어스 스퀴시, 몰랑이 스퀴시, 허기워기 스퀴시, 불 나오고 소리 나오는 광선총(?).

이건 꿈일 거야. 이건 현실이 아닐 거야!


"얘들아, 윤이가 이걸 다 사준 거니?"

"응!"

아이들이 해맑게 대답한다.

"아니, 사준다고 이걸 다 골라오면 어떡해?"


윤이가 문구점 들어가서 "원하는 거 다 골라!" 하고 우리 아이들은 부자 친척 어른이라도 만난 것처럼 신이 나서 장바구니에 잔뜩 담은 걸까?


"윤이가 사준다고 해도 이렇게 많이 사는 건 안 되지. 너희들이 친구끼리 사줄 수 있는 건 천 원, 이천 원 짜리 오뎅 하나 정도지. 값도 많이 나갔을 텐데 이걸 다 사 오면 어떡하니?"


작은 아이 규는 천진난만하게 말한다.
"윤이 누나가 사준다고 문구점 가자고 먼저 말했단 말이야."

"너는 누나가 사준다고 같이 신나게 고른 거야?"

"응! 허기워기랑 총이랑 샀지."


나는 큰 아이에게 당장 윤이에게 전화해서 얼마냐고 묻고 돈을 갖다 주라고 했다.

"알았어요. 엄마, 대신 전화하는 거 듣지 마요."

건이는 방에 들어가 전화를 하였다.

"3만 원이래요. 이따가 시간 될 때 다시 연락 준대요."

"그래, 이따가 엄마랑 같이 나가서 주고 오자."


건이는 저녁을 먹은 후 윤이 전화를 받았다.

"엄마, 돈 주고 올게요. 근데 저 혼자 가면 안 돼요?"

아이의 자존심을 지켜주고자 혼자 보냈다.  


"건이야, 엄마는 네가 친구한테 3만 원어치를 사줬다고 하면 기분이 안 좋을 것 같거든? 그 친구가 돈을 뺏은 게 아니고 네가 사줬다고 해도 그 친구랑 앞으로 놀지 말라고 할 거 같아. 윤이도 자기 용돈으로 너한테 사줬다고 해도 윤이 부모님이 그 사실을 알면 널 안 좋아하게 될 걸? 윤이랑 친한 친군데 그렇게 되면 너도 안 좋잖아. 앞으론 절대 그러지 마."

"네, 알았어요."


아이들을 키울 땐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들이 많이 발생한다. 매 상황에서 부모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

인간관계에선 어느 정도 기브 앤 테이크의 균형이 갖춰져야 하고 세상에 일방적 테이크는 없는 것이거늘, 준다고 덥석 받아온 아이들에 생각이 많아지는 이다.


#아이들을유혹하는문구점유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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