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동차를 좋아한다.
내 차는 마세레이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중고차를 한 대 구입했다.
졸업 후 본격적으로 일을 하려 하는데 차가 필요했다.
프리랜서 상담사이다 보니 매일 출근지가 달랐고, 강사 일을 겸하고 있어서 지방에 출장을 가는 일도 종종 있다. 하루에 바쁘게는 3-4곳을 출근하기도 해서 차가 없으면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에 나에게 차는 생활용품과 비슷하다.
이전에는 언니가 산 오래된 중고차를 같이 타서 불편함도 없었으며 차 가격이 그렇게 비싼지 몰랐다.
물건을 많이 싣을 수 있으며 이동 시간에 여유가 될 때는 눈을 붙이고 쉴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그러면서도 가지고 있는 전재산에서 보험비를 포함해서 살 수 있는 차를 선택하다 결국 레이를 구매하게 되었다.
처음 차를 샀을 땐 마냥 좋았다.
차 연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열심히 끌고 다녔다. 나갈 일이 없는 날에도 열심히 놀러 다녔다.
시간이 중간중간 빈다면 차에서 동영상을 보고 있기도 했고, 날이 좋으면 공원 근처에 차를 세워두고 의자를 젖혀서 넓은 뒷좌석에 누워있기도 했다.
중고차지만 나에겐 최고의 차였다.
언니와 싸운 날, 괜스레 집에 일찍 들어가기 싫은 날차에서 치킨을 시켜 먹었다.
작은 트렁크지만 그 안에 우산, 손전등, 작은 책상, 돗자리가 늘 있다.
책상을 꺼내고 음료 꽂이에 음료를 두고, 뒷좌석 바닥에 둔 쓰레기통에 치킨 뼈를 쏙쏙 골인시키며 먹는 치킨은 스트레스를 녹여주기에 충분하다.
남자친구가 패션 일을 하기 때문에 종종 야외에서 촬영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옷이 한 벌일 때면 입고 데이트를 하기도 하지만 종종 2-3벌의 옷을 촬영해야 하거나 자신이 평소에 즐겨 입지 않는 옷을 찍어야 할 때는 여벌의 옷을 가져오기도 해서 짐이 많은 날이 있다.
그럴 땐 차에서 옷을 갈아입거나 한가득인 짐을 뒤에 쌓아 놓아도 앞 좌석에 둘이 앉는다면 우리에겐 연예인이 타고 다니는 벤처럼 넓게 느껴진다.
그럼 종종 남자친구는 연예인이 되고, 나는 매니저가 되는 상황극을 한다.
장난스러운 농담을 하며 데이트 아닌 데이트 공간이 되어주게 하는 나의 자동차가 참 좋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뭐 그리 돈이 많은지 다들 외제차에 세단, 큰 차를 끌고 다니며 앞으로 불쑥 들어오거나 굉음을 내며 위협을 하기도 한다. 경차를 타는 젊은 여자라면 자신의 처지를 이해한다. 길에서 무시받기 딱 좋은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난 무섭지 않다. 이미 수없이 경험했기 때문에 이제는 "그래~ 먼저 가라~ 저승길도 먼저 가라~"라며 장난을 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어리다고 무시하는 어른들이 있다면 절대 지지 않기 위해 빡센 선글라스를 끼고 운전한다. 유리창이 커서 해가 많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눈에 뵈는 것이 없으면 무서움도 없다.
베르사체의 금장테가 찐하게 박힌 선글라스를 쓰고 창문을 내리고 운전을 하면 소리를 지르려고 옆에 섰다가도 흘끔 보고 말없이 간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겠는가 더러워서 피하지. 이런 생각으로 같이 더러워지노라면 도로 위에 최강 미친x이 될 수 있다.
좁은 찻길도 가로질러 갈 수 있다.
큰 차들 사이를 욱여넣어 가면 뒤에 차들은 나를 따라온다. 하지만 역시나 불가능 일 것이다.
쥐띠인 주인이 타고 다니는 작은 쥐새끼만 가능한 좁은 공간에 제격인 녀석이니깐.
종종 특유의 비싼 차임을 자랑하며 굉음을 내며 오는 차들도 있다.
하지만 내 차도 만만치 않게 굉음을 낼 수 있다.
작은 엔진이지만 열심히 언덕을 올라가거나 무거운 짐을 싣고 갈 때 속도가 잘 나지 않으면 세게 액셀을 밟는다. 그때 들리는 엔진음은 마치 카레이서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섹시한 소리가 난다.
마세라티 특유의 엔진음은 따라가지 못하지만 내 엔진음도 꽤나 괜찮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종종 우리는 '마세레이'라고 부른다.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애칭이 참 많은 나의 자동차가 좋다.
늦은 밤 드라이브를 즐기며 낭만을 느낄 수도 있고, 차박도 가능한 이 녀석이 참 좋다.
남들에게는 자기 합리화 혹은 정신승리자로 보일 수 있을 것 같겠지만 그래도 내가 좋으면 장땡이다.
얼마나 더 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이 녀석과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며 오래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