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받을 수 없는 이유 : 6

아프니깐 청춘이라는 말 좀 그만해

by 똠또미
그래서 누가 치료 해 줄 건데?




하루하루 살다 보면 문득 이유 없이 찾아오는 허탈감이 있다.

난 무엇을 위하여 이렇게 열심히 살았나 하는 생각과 함께 하루를 돌아보면 제대로 일궈둔 것 없는 결과에 괜히 바쁘고 득 없는 하루가 아쉬울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또 끝없는 허탈감의 소용돌이에 빠져든다. 그리고는 잘난 남들과 나를 비교하며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낸 나 자신을 채찍 하며 아파한다.


이런 고민과 생각을 이야기하면 어른들은 말씀하신다.

"청춘은 늘 바쁘고 힘든 때다. 아프니깐 청춘이다"




한때 청춘을 상징하는, 청춘이기에 공감했던, 청춘이라 당연했던 말일 수 있었다.

20살 초반 열정을 가지고 모든 것을 쏟아내도 체력이 남아돌았기 때문에 나 자신이 힘들고 아파도 쉬지 않고 하루를 꽉 채워 살았던 것 같다. 내가 열심히 하면 어떠한 결과든 내 눈에 보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너무 열심히 살아서 아팠던 걸까.

나는 누구를 위하여 이렇게 열심히 살려고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열심히 생각을 해봐도 생각에 대한 정답은 나오지 않는다.


엄마의 자랑이자 아빠의 희망이 되고 싶었던 걸까?

인생은 내 행복을 위해서 산다지만 정작 열심히 산 나 자신은 행복하지 않았음을 20대가 지나가는 지금 깨닫는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했지만 내 마음에 차지 않는 하루는 뭣 때문일까?

자유를 얻고 싶지만 내 선택에 대한 자유는 어떠하든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날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


'아프니깐 청춘이다.'라는 말은 성장하는 과도기에 어른과 아이도 아닌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20대의 나의 힘듦을 포장하는 말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말이 이제는 싫다. 선택은 하고 싶지만 책임은 지기 싫은 건 누구나 당연한 것 아닐까? 하지만 그 힘듦과 아픔을 청춘이라는 말로 담아내기엔 난 아프고 싶지 않다.


아프지 않기에 청춘이고, 앞을 모르기에 당돌하고 당당할 수 있었다.

내 선택조차 남 탓하기 바쁘고, 내 입 채우기가 우선이며 남에게 손가락질해도 나에게 쏟아지는 손가락질에 겁먹는 게 인간이다.


내 나이가 몇 살인들 언제나 아플 수밖에 없는 인생, 청춘이라는 핑계로 아프고 싶지 않다. 매번 열심히 살라고 하지만 그 열심히는 누가 만든 기준이며, 어느 정도가 열심히인지도 모르겠다.


일은 가야하고, 멋은 내고 싶고.


나는 내 청춘을 즐기고 싶다.


허탈감과 무망감을 버리고 만족감을 많이 느끼고 싶다. 나도 나 자신이 잘났다 칭찬하고 싶고, 힘든 일에 즐거움을 느끼며 하루를 돌아봤을 때 만족스러운 결과가 없어도 기분 좋게 웃고 싶다.


내가 선택한 일에 대한 결과는 모르지만 책임을 지기엔 아직 마주 할 날들을 더 멀리 두고 아프고 싶지 않은 청춘이고 싶다. 나도 아직은 모르기 때문에 내달리며 배우는 거고, 내가 만나는 아이들 또한 아픈 미래에 겁먹지 않고 달렸으면 한다.


아프면 서럽다. 아프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청춘이라는 말로 포장하지 마. 난 아프고 싶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