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 존 (Lucky John)

9. 직장인 존

by 레드뷔


존은 상수도 관리시설인 4-1번 유틸리티에 도착했다. 12시 5분. 아직 점심시간이었다. 존은 스마트폰의 지시에 따라 1층 식당으로 향했다. 식사를 마친 그는 다시 스마트폰의 지시를 따라 10층으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존이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 한 감독관이 그에게 다가왔다.

“너! 옷이 그게 뭐야? 왜 규정복을 안 입고 있는 거야?”

“안녕하세요. 저는 존이고 오늘 처음 왔습니다.”

“이, 바보 자식!”

감독관은 존에게 대뜸 화를 냈다. 하지만 존은 공손한 태도로 물었다.

“죄송합니다, 감독관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규정복은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요?”

“이 바보 자식! 질문을 한 번에 두 개씩이나 하면 어떡해! 그런다고 네가 똑똑해 보일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바보 같으니라고.”

“죄송합니다. 감독관님. 그런 뜻은 없었습니다. 제가 어디서 규정복을 구할 수 있을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어? 음... 잠시만. 이럴 때는 어떡해야 하지? 내 스마트폰 메시지에 뭔가 있을 것 같은데.”

감독관은 스마트폰을 들고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리며 한참을 씨름했다. 존은 업무 시작까지 10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간 도시의

수도 공급에 차질이 생길지 모를 일이었다.

“감독관님, 혹시 제가 좀 봐도 될까요?”

“흠, 그래. 한번 봐봐.”

감독관의 스마트폰을 건네받은 존은 메시지를 살폈다.


[오늘의 할 일]

당신은 오늘 감독관 역할을 해야 합니다.

(1) 세탁소로 가시오.

(2) 감독관의 옷을 입으시오.

(3) 4-1번 유틸리티 시설로 가시오.

(4) 모든 사람들에게 말할 때 ‘이 바보 자식’이라는 말을 덧붙이시오.

(5) 09시부터 17시까지 계속하시오.

(6) 배가 고프면 언제든 1층 식당에서 밥을 먹으시오.

(7) 17시에 집으로 가서 자유 시간을 가지십시오.


존은 그제야 왜 감독관이 자신에게 바보 자식이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이 ‘오늘의 할 일‘인 것이었다. 그리고 옷을 구하기 위해서는 세탁소에 가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감독관님.”

“뭐야! 이 바보 자식!”

“세탁소에 다녀오겠습니다.”

“뭐? 왜?”

“규정복을 구하려면 세탁소로 가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 스마트폰에 그렇게 쓰여 있나?”

“네 맞습니다.”

“그럼 확실하군. 빨리 다녀와! 이 바보 자식!”


존은 서둘러 세탁소로 향했다. 세탁소 입구에 스마트폰을 갖다 대자 문이 열렸다. 그곳에는 규정복뿐 아니라 감독관 옷, 그리고 청소부의 옷도 있었다. 존은 규정복인 흰 셔츠와 검정바지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자신과 일행의 주황색 청소부 옷 3벌을 챙겼다. 존은 유틸리티 시설로 서둘러 돌아갔다. 감독관이 로비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 너! 이 바보 자식! 멈춰봐! 거기 손에 든 게 뭐야?”

존은 들고 있던 청소부 복장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아, 이건 말입니다...”

“어? 아까 그 바보 자식이잖아! 이것도 스마트폰에 쓰여 있었나?”

“아, 네 맞습니다.”

“그래? 너, 네가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줄 아는데 내가 너 지켜볼 거야. 알았지?”

감독관이 두 손가락으로 존을 지켜보겠다는 제스처를 하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감독관님 죄송합니다.”

“흠, 그래, 알았어 가봐.”


존은 10층으로 올라갔다. 10층을 비롯한 각 층에는 수백 명의 사람이 칸막이로 막힌 하얀 장치 앞에 앉아 있었다. 장치마다 설치된 빨간 반구 모양의 등이 여기저기서 깜빡였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각 자리에 있는 단순한 장치를 작동시켰다. 누군가는 빨간 버튼을, 누군가는 노란, 또 누군가는 초록버튼을 빨간 등이 들어올 때마다 눌렀다. 빨간, 노란, 초록의 동그란 고무가 달린 레버 앞 사람들도 불빛에 맞춰 레버를 위, 아래로 작동시켰다. 사람들은 진지하게 각자 사명을 다해 일하고 있었다.

존은 배정된 01번 자리에 앉았다. 존의 업무는 자리에 빨간 등이 켜지면 빨간 버튼을 누르는 일이었다. 빨간 등은 15분마다 켜졌다. 존은 그때마다 버튼을 눌렀다. 도시의 상수도 공급이 자신에게 달렸다는 생각에 존은 적잖은 중압감과 책임감을 느꼈다. 그와 함께 묘한 자부심도 마음 아래서 싹텄다. 내일의 기대도 생겼다. 오랫동안 그에게 없었던 것이었다.


17시가 되자 업무를 마친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존 역시 오늘의 임무를 마쳤다. 긴장이 풀리며 정신적 피로가 확 몰려왔다. 비어 가는 사무실을 보며 존은 이러다 17시 이후에 상수도 공급이 멈추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는 화장실로 가서 물을 틀었다. 상수도는 이상 없이 공급되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했다. 모두가 퇴근하고 그는 한번 더 화장실을 확인했다. 그의 걱정과 달리 물은 여전히 콸콸 나왔다. 그제야 그는 조금 안심했다. 그리고 뭔가 대책이 있겠거니 하고 자기 거처로 향했다.


규정복을 입고 스마트폰을 갖게 된 존은 이제 일반인들처럼 인도의 중앙으로 걸었고, 일반인들처럼 자전거를 빌렸다. 일반인들처럼 원하는 상점에 들러 물건도 구입했다. 상점 등에 비치된 단말기에 스마트폰을 태그하는 것으로 이 모든 것이 가능했다. 대신 존은 스마트폰의 메시지를 놓치지는 않을까, 수시로 스마트폰을 확인하게 됐다.


존이 자전거를 타고 도시 끝자락 자기 거처에 다다랐을 무렵 스마트폰에서 앙칼진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경고] 위험지역 진입.

지정된 거주지(4-1-143 주거구역의 25019호)로 가시오.


존은 화면에 뜬 경고 메시지 아래 ‘확인’ 버튼을 눌러 거슬리는 알람을 껐다.

‘위험지역? 여긴 내가 사는 집일 뿐인데?’

존은 비록 부랑자들이긴 하나 함께 평화로이 살고 있는 도시 끝자락이 위험지역으로 표시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첨단기술이 탑재된 스마트폰이 거짓말할 리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혼란스러웠다. 그 후로도 스마트폰은 두어 번 경고 메시지를 울렸다. 존은 스마트폰의 지시를 어기는 것에 마음이 불편했지만, 그래도 익숙한 자기 거처에서 쉬기로 했다.


두어 시간 후, 피터가 돌아왔다.

“피터, 왔어?”

“말할 기운도 없어.”

피터가 자기 침대에 쓰러지다시피 누웠다. 침대의 프레임이 부서질 것처럼 삐걱거렸다.

“젠장, 못해 먹겠군.”

제임스가 투덜대며 뒤이어 방으로 들어왔다.

“제임스? 여긴 웬일이야?”

“힘들어서 도저히 우리 집까지 못 가겠어.”

“아, 그럼 저기 빈 침대에서 자고 가. 어차피 저 친구 오늘도 안 들어올 것 같아.”

“고마워. 근데 이 침대 주인은?”

제임스가 빈 침대에 앉으며 물었다.

“그 친구 얼마 전에 마흔 번째 생일이었거든. 그래서 ‘이제 파라다이스로 간다’며 신나서 자랑하고 다니던데, 그 뒤로 감감무소식이야. 어쩌면 벌써 파라다이스로 갔을지도?”

“도시에서 제일 높은 빌딩 거기 말이지? 거긴 일 안 해도 되고, 항상 맛있는 음식이 차려져 있다던데? 게다가 뭐든지 할 수 있고. 나도 빨리 마흔이 돼야 할 텐데!” 피터가 말했다.

“젠장, 나도 이 빌어먹을 일 때려치고 거기 가고 싶다고! 하지만 내가 그만두면 도시의 가스 공급이...” 제임스가 투덜댔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늦었어?” 존이 물었다.

“늦어? 우리는 끝나자마자 왔는데?”

“그러는 존 너는 언제 왔는데?”

“난 두 시간 전에 왔지.”

“뭐? 말도 안 돼! 존, 너 혹시 상수도 공급을 내팽개치고 온 거야?”

“아니, 일 끝나고 왔는데.”

“맙소사 어떻게?”

“자전거 타고 왔지.”

“자전거? 공용 자전거 말이야? 그건 일반인들만 이용할 수 있잖아!”

“응? 스마트폰을 단말기에 대니까 사용할 수 있던데?”

“뭐라고! 존! 그런 중요한 정보를 왜 이제 알려주는 거야?” 피터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분노했다.

“미안. 난 너희들이 아는 줄 알았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 게다가 난 일하기 싫다고!”

“미안해 피터. 혹시 제임스 너도 몰랐던 거야?”

“뭐, 뭐라고? 존, 내가 모르는 건 없다고. 난 그저 좀 걷고 싶었을 뿐이었어.”

“거짓말 마, 제임스. 너도 나랑 같이 걸어오면서 계속 투덜댔잖아! 괜히 존을 도와주려다가 이렇게 노예 신세가 됐다면서!”

“미안해, 친구들.”

존은 둘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대신 내일 아침 일하러 갈 때 같이 자전거 타고 갈까? 일 끝나고는 상점에도 들르고, 그래! 맛있는 저녁도 먹자고.”

“존! 말이 되는 얘기를 해! 상점은 일반인이나 들어갈 수 있는 거라고! 레스토랑도 마찬가지고!”

“우리는 일을 하잖아. 게다가 이 스마트폰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더라고.”

“뭐? 진짜야?”

피터와 제임스가 놀란 눈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그래, 피터, 우리는 이제 일반인이 된 거야! 어디든 마음껏 드나들 수 있는 일반인 말이야! 물론 일을 하긴 해야겠지만.”

“하지만 일하는 건 싫다고! 지루하고 부담스러운 전력 뭐시기를 내 손으로 좌지우지하고 싶지도 않다고! 그 빨간 등만 생각하면... 이것 봐! 내 심장이 벌써 벌렁대고 있잖아!”

“피터, 레스토랑이야. 무려 레스토랑! 거기서는 핫도그나 도넛을 먹을 수 있다고!”

제임스가 투덜대는 피터에게 말했다.

“핫도그? 도넛? 혹시... 초콜릿 도넛도 가능할까?”

“물론이지!”

피터의 얼굴이 금세 밝아졌다.

“그나저나, 경찰서는 어떡하지?”

“존, 미안하지만, 그 일은 좀 미뤄야겠어.”

“너무 힘들어서 그러지? 미안해.”

“존, 그게 아냐. 날 뭐로 보고! 지금 우리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을 맡고 있잖아! 너는 상수도 공급을, 피터는 전력을, 그리고 나는 도시의 가스를! 우리가 손을 떼면 이 도시는 망할지도 모른다고!”

존은 제임스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존은 못내 아쉬웠지만, 도시를 살리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했기에 부랑자 노인 일은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그나저나 이 스마트폰으로 뭐든지 할 수 있다 이거지? 근데 여기 뒤에 있는 숫자는 뭐지?”

피터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돌려보다 말했다. 그의 스마트폰 뒤에는 ‘4-387-7363’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어? 나도 있는데?”

제임스도 스마트폰을 돌려보고는 그들에게 말했다. 존은 어렴풋이 대재앙 이전에 스마트폰을 사용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그것이 각자 전화번호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제임스, 네 스마트폰에 있는 숫자 좀 불러 주겠어?”

“4-384-3284”

존이 제임스의 번호를 스마트폰에 입력하고 통화버튼을 누르자 제임스의 스마트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뭐야? 또 경고 메시지인가?”

“아냐, 제임스. 거기 초록 버튼을 눌러봐”

“이거?”

제임스가 초록 버튼을 누르자 알림이 꺼졌다.

“제임스?”

존이 자신의 스마트폰에 대고 말하자 놀랍게도 제임스의 스마트폰에서 존의 목소리가 들렸다.

“맙소사! 존! 존이야? 여기에 들어간 거야? 아닌데, 저기 분명히 있는데.”

제임스는 마치 귀신에 홀린 듯 놀라서 존과 스마트폰을 번갈아 가며 봤다.

“존!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피터 역시 그 광경을 보고 깜짝 놀라서 존과 제임스를 번갈아 봤다. 존은 제임스와 피터에게 차분히 전화통화에 관해 설명했다.

“그러니까 이걸로 서로와 연락을 할 수 있다는 거야? 아무리 멀리 있어도?”

“게다가 멀리 있어도 큰 소리로 얘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응. 이건 과거에는 흔한 연락 수단이었어. 대재앙 이전에 말이야.”

“역시 늙은이는 아는 게 많다니까.”

제임스가 존을 위아래로 한번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존은 피터와 제임스의 번호를 서로에게 저장하고 단축키지정까지 마쳤다.

“자, 이제 제임스와 통화를 하고 싶으면 1번을 꾹 누르고 있으면 돼. 그리고 피터와 통화를 하고 싶으면 2번을 꾹 누르고 있으면 돼. 그리고 나에게 전화를 하고 싶으면 3번을 꾹 누르면 돼. 알았지?”

“제임스는 1번, 피터는 2번, 존은 3번이라는 거지?”

“맞아 피터.”

피터와 제임스는 새로운 장난감에 신이 나서 서로에게 전화를 해댔다. 존은 그들의 천진한 모습을 보며 죽은 아들 칼이 떠올랐다. 마음 한편이 아파 왔다.


“아빠는 1번, 엄마는 2번이라는 거죠?”

클레오가 새로 산 스마트폰을 칼에게 건네자 칼이 확인 차 물었다.

“응. 무슨 일이 있거나 하면 1번이나 2번을 꾹 누르면 아빠나 엄마한테 전화가 갈 거야.”

“알았어요, 엄마. 고마워요!”

칼은 말을 마치자마자 존과 클레오에게 번갈아 가며 전화를 걸어댔다. 칼의 신나 하는 모습을 보며 존과 클레오는 서로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칼은 존이 집에 있을 때도 존에게 전화를 걸곤 했다. 존은 그런 칼이 귀여워서 일부러 방이나 화장실에 들어가 멀리 떨어진 것처럼 통화하며 장단을 맞췄다. 칼은 통화 끝에 언제나 사랑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영특한 아이였던 칼은 남들보다 조금 느리고 부족한 아빠를 언제나 걱정해 주었다. 존이 약속된 귀가 시간보다 조금이라도 늦을 때면 어김없이 칼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존이 언제쯤 들어오는지 확인하고는 꼭 사랑한다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그날, 농장에서 일하던 존은 주머니에서 울리는 스마트폰을 꺼내어 전화를 받았다.

“아빠, 엄마랑 마트에 다녀올게요! 뭐 필요한 거 있어요?”

“음... 초콜릿?”

존은 초콜릿을 좋아했다. 달콤해서 먹는 순간 바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단순하고 확실한 방법이었다. 아들 칼 역시 존처럼 초콜릿을 좋아했다. 하지만 클레오는 건강을 이유로 두 부자가 초콜릿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때문에 칼은 종종 엄마 몰래 초콜릿을 먹고 시치미를 떼곤 했다. 하지만 입가에 묻은 초콜릿과 자기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행복한 미소 탓에 칼은 번번이 들키곤 했는데 그 어이없는 모습에 존과 클레오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알겠어요. 아빠! (엄마, 아빠가 초콜릿 사 오래요! 아니, 내가 먹고 싶은 게 아니고 아빠가 그랬어요! 진짜예요!)”

클레오가 마지못해 허락하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 멀리서 들렸다.

“아빠! 초콜릿 잔뜩 사 올게요. 이따 봐요. 사랑해요.”

“응, 그래 나도 사랑해.”

농장 일에 몰두하던 존은 한참 뒤, 칼에게 부재중 통화가 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존은 시계를 봤다. 아직 귀가할 시간은 아니었다. 존은 칼에게 전화를 되걸었다. 하지만 칼은 받지 않았다. 존은 다시 클레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 역시 받지 않았다. 해 질 무렵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존은 집에 불이 꺼져 있는 걸 발견했다. 평소 같았으면 존의 트럭 소리를 듣고 뛰쳐나왔을 칼도, 저녁 준비에 한창일 클레오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자동차 역시 보이지 않았다.

그날 존은 아내와 아들을 잃었다. 우울증을 이기지 못한 클레오가 충동적으로 절벽 아래로 차를 몰았다. 칼에게 온 부재중 전화는 그 찰나였다. 존은 어쩌면 칼이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했을지 모를, 아니면, 그저 사랑한다고 말하려고 했을지 모를, 그리고 클레오와 칼의 마지막이 되었을지 모를 그 전화를 받지 못했다. 그것이 그렇게 존의 가슴에 사무쳤다.


피터와 제임스가 통화하는 모습을 보며 존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피터와 제임스는 그런 존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존, 왜 울고 그래? 영감이 되면 다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우는 거야?”

“응, 피터. 그런가 봐. 나이가 들면 마음이 약해지나 봐.”

존이 부끄러워서 대충 둘러댔다.

“어? 그럼 그 경찰서에 갇혀있다는 영감도 울고 있을 수도 있겠네. 왠지 불쌍한걸?” 제임스가 말했다.

“그래.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존과 일행은 내일 다가올 일을 걱정하기에도 벅찼다. 누군가에겐 오랜만에, 누군가는 처음으로 한 노동은 그들 마음에서 여유를 앗아갔다. 노인의 일은 우선순위에서 저 뒤로 밀린 지 오래였다. 그들은 침대에 누웠다. 고단한 하루를 보낸 피터와 제임스, 존의 코 고는 소리가 방안에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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