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 존 (Lucky John)

3. 럭키 존 (Lucky John)

by 레드뷔

이틀 뒤, 존은 풀려났다. 하지만 함께 간 노인은 그러지 못했다. 존의 예상과 달리, 노인은 경찰서 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경찰서 문을 나온 뒤, 존은 노인이 궁금했다. 걱정도 됐다. 그는 돌이켜 경찰서를 바라봤다. 거대하고 하얀 경찰서 건물이 그를 압도하듯 내려다봤다.

‘뭐, 큰 일이야 있겠어? 아마 잘 계시겠지.’

존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자신의 거처로 향했다. 제3스마트시티 4 구역 서쪽 끝 버려진 지하철역이 존의 보금자리였다. 조금 전 4 구역 경찰서에서 서쪽으로 10km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백색의 스마트시티는 한쪽 길이가 60km의 정사각형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도시는 루빅스 큐브처럼 한쪽 길이가 20km인 9개의 정사각형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각 구역의 중심부에는 경찰서, 소방서, 주민센터 및 업무용 고층빌딩들이 위치했는데 가장 중앙의 5 구역 중심부는 다른 구역보다 3배 높은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기하학적인 도시 형태 덕분에 도시 어디에서도 중심부인 5 구역을 알아볼 수 있었다. 한편 도시의 외곽 경계부는 다른 세상이었다. 특히 도시를 둘러싼 장벽이 있는 최외곽 부는 비등록 부랑자들의 차지였다.

각 구역의 경계는 반듯하게 정비된 왕복 8차선 도로로 구분되었다. 도로를 따라 있는 도로명 표지와 건물 주소표지는 이곳이 4 구역임을 알 수 있도록 큼지막한 숫자 4로 시작되었다.

8차로 도로의 중앙 왕복 2차로는 스마트 시티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자동차들을 위한 도로였다. 그리고 그 좌우 6차로는 대다수가 이용하는 자전거 도로였다. 도시의 자전거들은 모두 공용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디든 편안하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 다만, 공용자전거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스마트폰이 필요했는데, 비등록자인 존은 스마트폰을 발급받을 수 없었기에 자신의 거처까지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존은 자전거 도로 외측 인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는 일반인들을 피해 마치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 양 길 가장자리로 걸었다. 그게 편했다.

10여 분을 걷던 존은 20대 남자 하나가 인도 곁에 주저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여느 일반인들처럼 흰 셔츠에 검정 바지를 입고 있던 그는 얼마나 지쳤는지 눈이 퀭하니 쑥 들어가 있었다. 존은 그의 셔츠 왼쪽 주머니를 힐끔 봤다. 6이라는 숫자가 쓰여 있었다.

‘6 구역 사람이군. 못해도 30km는 떨어진 곳인데... 길을 잃었나?'

종종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존은 일반인들이 자신 같은 비규정복의 사람들을 혐오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를 피해 가기로 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가 먼저 존을 불러 세웠다.

“이봐.”

존은 주위를 둘러봤다. 자기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네? 저요?”

“그래. 당신. 여기는 도대체 어디지?”

“여기는 4 구역입니다.”

“뭐라고? 4 구역이라고? 왜지? 여긴 5 구역일 텐데?”

“아, 여긴 4 구역입니다. 여기 건물에 주소 보이시죠? 4로 시작하지 않습니까?”

“그게 4 구역과 무슨 상관이지?”

존은 이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터라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여기 4로 시작하는 주소는 4 구역이라는 뜻입니다. 5로 시작하면 5 구역, 6으로 시작하면 6 구역이죠.”

“아, 그래서 내가 살던 곳이 6-2-153번지였군.”

“네, 그럴 겁니다.“

“그럼 6 구역으로 가려면 어떡하지?”

“6 구역으로 가시려면 우선 5 구역으로 가야 합니다. 여기서 동쪽으로 가다 보면 5 구역이 나오고요, 계속해서 더 가다 보면 6 구역이 나올 겁니다.”

“뭐? 동쪽으로 가면 5 구역이라니!? 5 구역은 서쪽이라고!”

“6 구역에서 봤을 때는 5 구역이 서쪽입니다만, 여기 4 구역에서는 동쪽입니다.”

“5 구역은 서쪽인데...”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존을 쳐다봤다. 존은 누구나 바닥에 메모할 수 있도록 가로등마다 비치된 흰색 분필을 하나 꺼내 바닥에 커다란 정사각형을 하나 그렸다. 그리고는 그 안에 가로 2줄 세로 2줄을 더 그어 9개의 작은 정사각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왼쪽 상단부터 1부터 9까지 순서대로 숫자를 써나갔다.

“여기 보시면 4 구역이 있죠?”

존은 두 번째 줄 왼쪽 네모의 4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확실히 4라는 숫자군.”

“그리고 5 구역은 4 구역의 동쪽에 있죠?”

“어? 정말 그러네? 그런데 왜 5 구역은 항상 서쪽이었지?”

“그건 당신이 6 구역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6 구역에서 보면 5 구역은 서쪽에 있으니까요.”

“음, 5 구역은 서쪽인데……”

존은 차분하게 같은 내용을 10번 더 설명했다. 그리고 나서야 6 구역 젊은이는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맙소사, 당신 어떻게 이런 걸 알고 있는 거야?”

“허허. 운이 좋았죠.”

“그렇군. 당신은 참 운이 좋은 사람이군!”

“고맙습니다. 어쨌든 당신은 먼저 5 구역으로 가야 합니다. “

“혹시, 또 길을 잃으면 어쩌지?”

"그냥 이 동쪽 길로 쭉 걸어가시면 되는걸요?"

"이 길이 동쪽이란 걸 어떻게 아냐고?"

"지금 당신 얼굴이 향하고 있는 곳이 북쪽이니, 당신 오른쪽은 동쪽이 되죠."

“알았다! 얼굴을 북쪽으로 하고 오른쪽으로 가라는 말이지?”

그는 행여나 다시 길을 잃을까, 얼굴을 북쪽으로 고정한 채 오른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마치 게처럼. 존은 뭔가 더 얘기해주고 싶었지만, 그가 그 이상 이해하기 어려워 보였기에 그저 행운을 빌어 주기로 했다.

“조심히 가세요. 행운을 빕니다.”

“나도 당신처럼 운이 좋았으면 좋겠어! 이런 걸 다 알 수 있게!.”

“허허허. 그러게요.”

“당신 이름을 물어봐도 될까?”

“존이요.”

“당신은 정말 럭키 존이군!”

6 구역의 남자는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게걸음으로 5 구역을 향해 걸어갔다.

‘역시 클레오 말 대로야. 남을 돕는 건 행복한 거야.’

존은 멀어져 가는 그의 옆모습을 보며 기분이 좋아졌다.

그를 뒤로하고 존이 일곱 블록정도 더 걸었을 때, 멀리서 요란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존은 폐가 아래쪽으로 짓눌리고 숨이 막혀왔다.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존은 간신히 걸음을 옮겨 어느 상점 입구에 주저앉았다. 그는 몸을 웅크려 둥글게 말고 귀를 막은 채 덜덜 떨기 시작했다. 잠시 후 텅 빈 중앙부 차도로 빨간 스포츠카 한 대가 시속 30km의 속도로 쏜살같이 지나갔다. 자전거 도로의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그 광경을 넋 놓고 바라봤다. 일 년에 한 대조차 보기 힘든 내연기관 자동차였다. 존은 눈을 질끈 감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결국 존은 내연기관 차들이 꽉 막힌 과거 시절 도로를 떠올려 버렸다. 그리고 그 장면은 자연스럽게 과거 존이 소유했던 빨간 픽업트럭을 연상시켜 버렸다. 가장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었지만, 떠오르는 기억을 막을 수는 없었다.

20여 년 전 존은 아내와 아들을 잃었다. 그리고 그 끔찍한 사건의 발단은 ‘1, 2차 대재앙’이었다. 적어도 존은 그렇게 생각했다. 2025년 ‘1차 대재앙’의 시작은 전 세계를 뒤흔든 대지진이었다. 지진은 쓰나미는 물론, 전 세계의 화산을 깨웠다. 화산의 직접적인 피해도 무시할 수 없었지만, 문제는 전 지구의 하늘을 꽉 메운 화산재였다. 하늘을 뒤덮은 화산재는 6개월간 내려오지 않았다. 그 탓에 6개월간 지상은 어둠에 갇혔다. 그리고 지구의 기온은 평균 3도가 하락했다. 수많은 동식물이 죽었다. 그리고 이어진 대기근으로 인구는 60억으로 줄었다. 성실한 농부였던 존은 창고에 비축된 식량 덕분에 그 기간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대부분이 그 시절을 불운하게 보냈던 것과 달리 존은 운 좋게 아내 클레오를 만났고 이듬해 아들 칼을 얻었다. 그리고 그 해 ‘2차 대재앙’인 전염병이 발생했다. 그리고 백신과 치료제가 겨우 개발된 2028년 무렵 전 세계 인구는 이미 40억으로 줄어 있었다. 운 좋게도 존과 그의 가족은 그 시기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클레오는 전염병에 부모님과 절친들을 모두 잃었다. 존 역시 형네 가족과 부모님을 잃었다. 다행히 존의 가족은 전염병에 걸리기 전 백신을 접종할 수 있었다. 존은 클레오와 칼만이라도 살아남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클레오는 그렇지 못했다. 부모님과 절친들의 상실에서 비롯한 우울감이 그녀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그녀뿐 아니라 1, 2차 대재앙으로 30억의 인구를 잃은 인류의 대부분이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것은 거대한 사회적 현상이었다. 인류는 무기력에 빠졌고, 생의 의지를 잃은 인류는 농업은 물론, 상업, 공업, 금융업 등 모든 경제활동을 멈췄다. 기근이 다시 반복되었다. 기아, 그리고 거대한 우울증으로 인한 대규모 자살로 인류는 1, 2차 대재앙 시절에 잃은 인구보다 더 많은 33억 명을 잃게 되었다. ‘3차 대재앙’이었다. 클레오와 칼은 불행히도 이 ‘3차 대재앙’을 넘기지 못했다. 우울감을 간신히 참고 있던 클레오가 마트에서 돌아오던 길에 절벽으로 존의 빨간 픽업트럭을 몰아 생을 달리했던 것이었다. 5살의 칼과 함께. 그 후 존은 집을 떠나 노숙 생활을 시작했다.

한편 인류는 3번의 대재앙을 겪으며 심각한 지능저하를 겪게 되었다. 망각이나 지능저하를 통해 정신적 고통을 줄이려는 뇌의 방어기제가 작동했는지는 어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남은 인류는 심각한 기억력 감퇴와 더불어 지능의 퇴행을 겪게 되었고, 그들의 평균 IQ는 80 이하에 머물게 되었다. 다들 바보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때마침 전 세계에 자급자족이 가능한 완벽한 시스템을 갖춘 10개의 스마트시티가 완성되었다는 것이었다. 생존한 7억의 인류는 신설된 스마트 시티로 이주했다. 존은 운 좋게 살아남았고, 얼떨결에 그들과 함께 도시로 이주했다. 새 도시들의 주요 교통수단은 자전거였다. 차는 모두 전기차로 대체되었다. 안전하고 깨끗했다. 하지만 존은 내연 자동차가 희소해진 도시에서 오히려 트라우마를 겪기 시작했다.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내연 자동차는 존에게 아내와 아들의 죽음을 떠올리게 했고, 그때마다 존은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게 되었다.

길가에 앉아 몸을 웅크리고 있던 존은 한참 지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존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주머니에서 뭔가가 툭하고 떨어졌다. 올빼미 장난감이었다.

‘맞아, 그 선생님이 내게 부탁했었지.’

존은 올빼미 장난감을 주워 꽉 쥐었다. 마음이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타인에게 받은 오랜만의 기대가 존의 마음을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었다. 아내와 아들을 위해 살던 시절 이후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목적 없이 살던 존의 마음에 작은 불꽃이 일었다.

존은 일어섰다. 그리고 걸었다. 인도의 중간으로. 일반인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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