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 존 (Lucky John)

4. 올빼미 장난감

by 레드뷔

백색 도시의 서쪽 경계부는 옛 도시의 흔적이 가득했다. 신도시의 높은 장벽 안에 남겨진 구도시의 잔재들은 그 역사와 함께 원래의 가치를 잃은 지 오래였다. 대신 버려진 지하철 노선과 역들은 비등록인원들의 파라다이스로 제2의 호황기를 누리고 있었다. 존은 자신의 거처인 센트럴파크 역으로 들어섰다. 계단을 내려가 어두운 통로를 얼마간 걷자 버려진 상가들이 일렬로 늘어선 통로가 나왔다. 통로를 따라 걷던 존은 상가 중 하나로 들어섰다. 존과 룸메이트의 보금자리였다. 보금자리 내부는 혼돈 속의 질서, 질서 속의 혼돈으로 가득했다. 그나마 존이 사용하는 구역은 사람 사는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룸메이트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중 하나는 한 달 전 자기 생일날, 술에 취해 이제 마흔이 됐다며 동네방네 외치고 다닌 후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엉뚱하고 참견하기 좋아하는 나머지 한 명 역시 무슨 일이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존은 자기 침대에 털썩 누웠다. 장거리를 오래 걸은 탓에 무릎이 쑤셨다. 존은 주머니에서 올빼미 장난감을 꺼냈다.

‘그 할아버지는 왜 이걸 내게 줬을까? 내 휘파람 소리가 그렇게 좋았나?’

존은 올빼미 장난감을 이리저리 살폈다.

‘좀 낡았지만, 귀여운 모양인걸.’

장난감은 여기저기 칠이 벗겨진 상태였다. 특히 목과 몸이 연결된 부분이 많이 닳아 있었다.

‘칠만 안 벗겨졌어도... 어?’

장난감을 살피던 존은 올빼미의 목이 뒤로 돌아가 있다는 걸 알아챘다. 존이 좀 더 자세히 살펴보려는 찰나 참견쟁이 룸메이트 피터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170 cm 키에 100 kg의 거구는 산발의 검고 긴 곱슬머리 그리고 턱을 뒤덮은 긴 곱슬 수염을 하고 있었다. 그 덕에 그의 얼굴은 마치 수사자처럼 커 보였다. 존은 황급히 장난감을 주머니에 넣었다.

“존! 뭐야? 뭘 또 감추고 그래? 구치소에서 맛있는 거라도 가져온 거야?”

“아냐, 아냐.”

“아니긴 뭐가 아니야, 혼자 먹으려고 하는 거잖아. 치사한 영감탱이야! 나도 특식 먹고 싶다고!”

피터가 존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주머니에 넣은 존의 손을 손쉽게 빼냈다. 존은 어쩔 수 없이 손을 펴서 피터에게 장난감을 보여줬다. 피터는 존의 손에 있는 걸 가로채고는 실망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뭐야, 먹을 게 아니잖아.”

“내가 아니라고 했잖아.”

“네가 거짓말한다고 생각했지. 네가 구치소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거든.”

“그건 맞는데, 먹을 건 없어.”

“그렇군. 나 실망했어.”

“다음에는 꼭 갖다 줄게. 이제 그거 돌려줄래?”

“알았어. 그런데... 이거 머리가 돌아가 있는데?”

피터가 올빼미의 머리를 제자리로 돌려놓으려 머리를 비틀기 시작했다.

“피터, 그만둬! 그냥 돌려줘.”

“잠깐만 기다려 내가 금방 고쳐 줄게.”

피터가 말했다.

“피터! 그만 돌려주라고!”

하지만 그는 존을 무시한 채 더욱 힘을 줬다. 장난감에서 꽈드득하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피터!”

“거의 다 됐어!”

존이 피터를 저지하려 하는 순간 피터의 손에 있던 올빼미의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었다. 순간 존과 피터는 정지했다.

“미안해 존.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피터는 몸과 머리가 분리된 올빼미를 존에게 돌려줬다. 올빼미의 머리가 빠진 부분에 네모난 은색 금속이 노출되어 보였다.

“뭐 어쩔 수 없지. 다 지난 일이잖아.”

존은 조금 언짢았지만, 습관처럼 입에 붙은 말을 되뇌며 피터를 용서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이거 정말 중요한 거라고 했는데. 어쩌지.’

존은 자신의 부주의함을 자책하며 부서진 장난감을 바라봤다.

‘오래되긴 했어도 쉽게 망가지지는 않는다...’ 존은 문득 노인의 말이 떠올랐다. 존은 올빼미의 몸과 머리를 같은 방향으로 한 채 다시 끼웠다. 다행히 잘 맞았다.

“피터, 이것 봐 고쳤어.”

존이 의기소침해 있는 피터를 보며 말했다.

“어, 정말? 다행이야. 다시 한번 사과할게, 존.”

“괜찮아. 신경 쓰지 마.”

“고마워, 존.”

존은 다시 자리에 누워 장난감을 이리저리 살폈다. 하지만 여전히 이게 왜 중요한지, 누구에게 전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장난감을 보던 존은 문득 어린 시절 키드슨 할아버지에게 받은 목각 인형들이 떠올랐다.


존의 이웃집 키드슨 할아버지는 동네 아이들에게 인기스타였다. 그의 집은 온갖 골동품들과 희귀한 잡동사니들로 가득 차 있었다. 화려한 도자기 인형, 오래된 회중시계, 각종 전통 모자, 어느 먼 타국에서 가져온 듯한 수많은 장식품. 할아버지의 집은 모험으로 가득한 보물선 같았다. 그리고 키드슨 할아버지는 보물선의 선장이었다. 아이들은 집안 가득한 잡동사니들을 키드슨 할아버지에게 하나씩 들고 와서는 눈을 반짝이며 ‘이건 뭐예요?’하고 묻곤 했고, 할아버지는 언제나 그 물건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이야기에 빠져들곤 했다.

존은 그중 모서리가 금속으로 덧대어진 커다란 상자들을 가장 좋아했다. 대항해시대와 해적들의 이야기가 깃든 상자들에는 금은보화가 가득 들어있을 것만 같았다. 존은 상자 안이 궁금해 할아버지를 졸라댔지만, 할아버지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끝끝내 상자 안을 보여주지 않았다.

키드슨 할아버지는 떠들썩한 아이들의 웃음을 좋아했다. 그는 자기 앞마당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2층 창문으로 흐뭇하게 내려다보며 “요놈들 초콜릿 줄까?”하고 초콜릿을 한 움큼씩 던져주곤 했다. 그러면 아이들은 함박웃음과 함께 환호성을 질러댔다.

존에게 키드슨 할아버지는 더욱 특별했다. 그는 농장 일에 치여 존에게 신경 쓰지 못하던 존의 부모님 대신 듬직한 보호자가, 또 친구가 되어줬다. 어리숙했던 존이 바보라고 놀림받고 올 때면 존을 꼭 안아주고, 옛 음악과 초콜릿으로 그를 달래줬다. 한 번은 외롭던 존에게 지혜와 용기라는 친구라며 색색 깃털의 올빼미와 위엄 있게 앉은 호랑이 목각 인형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존은 살아있는 것 같은 그 친구들이 썩 마음에 들어 주머니에 지니고 다녔다. 마치 지금처럼.

오랜만에 존은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졌다. 그 시절, 그때의 그 푸근한 분위기와 음악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따뜻했던 할아버지가 그리웠다. 할아버지는 따뜻했다. 겨울에도 여름에도 그는 따뜻했다.

‘맞아, 클레오도 할아버지랑 같은 음악을 좋아했었는데...’

존은 아내가 차에서 음악을 흥얼거리며 몸을 좌우로 우아하게 흔들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가 음악을 듣기 위해 차에 메모리 스틱을 꽂던 장면이 이어서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이 장난감의 머리가 분리됐을 때 나타났던 은색 네모와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맞아, 클레오는 여기에 음악을 담는다고 했었어. 여기에도 그런 음악이 담겨있으려나?’

존은 혹시나 하며 피터에게 물었다.

“피터, 옛날 물건들 좀 다룰 줄 알아?”

“얼마나 옛날인데?”

“글쎄, 한 20년 전쯤?”

“존, 난 20분 전 일도 잘 기억 못 해! 알잖아. 그렇게 오래된 걸 기억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게다가 20년 전 나는 겨우 10살이었다고. 아직 바지에 똥 싸던 시절이란 말이야. 뭐 며칠 전에도 실수하긴 했지만. 어쨌든 내게 그런 어려운 건 묻지 말아 줘, 바쁘니까.”

피터는 어디서 났는지 30cm 정도 되는 나무 막대기를 허공에 열심히 휘젓느라 정신이 없었다.

“미안해 피터.”

“헉헉, 괜찮아. 그건 그렇고 내 머리 스타일 어때? 패리호터의 해드리그 같아 보이지 않아?”

“오, 그래 정말 닮았네. 덩치도 그렇고 완전 해드리그야. 하하하.”

“고마워. 존.”

“응? 근데 지금 패리호터라고 했어? 그거 엄청 오래된 마법사 영화환데?”

“그런가? 아닐걸?”

“아냐, 그거 40년도 더 된 영화야! 네가 그걸 어떻게...”

“존, 존. 맙소사, 40년 전이라니. 정신 차려. 나 조금 전에 그거 보고 왔다고.”

“뭐라고? 어디서?”

“시티홀 역에서 봤지.”

“어떻게?”

“거기 역에 큰 화면 있잖아. 거기서 봤다 이거야. 그나저나 이거 왜 안 되지? 로무스!!(Lomus, 원래 Lumos를 외쳐야 하나, 바보라서 틀림. Lumos는 지팡이 끝에 작은 불을 켜는 마법주문)”

존은 그제야 피터가 나무 막대기로 하려던 것이 마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로무스! 로무스! 젠장, 이 자식 불량품을 팔았어, 300달러나 줬는데! 가만 안 두겠어!”

피터는 마법이 생각대로 되지 않자 불같이 화를 냈다.

“누구한테 샀는데?”

“제임스, 그 자식이야.”

“그 골동품 파는 제임스?”

“그래, 그 자식! 영화 끝나고 하나 남은 전설의 마법 지팡이라며 팔길래 내가 바로 샀지.”

“혹시 영화도 그 친구가 틀어준 거야?”

“그래. 맞아. 이 자식, 어디로 내빼기 전에 빨리 찾아내야겠어.”

존은 어렴풋이 메모리스틱을 TV에 꽂아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피터가 옛날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고 생각한 존은 거기서 올빼미 안의 내용도 확인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도 같이 갈까?”

“그러던지.”

존은 올빼미 장난감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씩씩거리는 피터의 뒤를 따라 시티홀 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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