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 존 (Lucky John)

6. 존, 악마의 소굴에서 무사히 나오다

by 레드뷔



존과 피터는 제임스를 따라 두 블록을 더 걸어 버려진 상점들이 모인 작은 번화가에 도착했다. 제임스가 한 상점 앞에 걸음을 멈춰 주변을 경계했다. 상점 간판에는 DVD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쓰여 있었다.

“여기야?”

“그래. 여기가 바로 악마의 소굴이지.” 제임스가 목소리를 깔며 답했다.

“여기가 왜 악마의 소굴이라는 거야?” 뒤따르던 피터가 물었다.

“이런... 바ㅂ, 잘 봐! DVD라고 쓰여 있잖아! 바로 DeVil’s Den의 약자라고!”

“맙소사! 이런 곳에 버젓이 악마의 소굴을 숨겨놓다니!”

피터가 소름 끼친다는 듯 말했다.

“그나저나 여긴 어떻게 들어가지?”

존의 질문에 제임스가 특유의 능글능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잘 봐!”

제임스가 문의 네모난 곳에 손을 대자 도어록에 숫자가 나타났다. 제임스가 6666을 입력하자 '띠리릭'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봤지? 내가 왜 악마의 소굴이라고 하는지 알겠지?"

"아니? 왜지?"

"이런 바ㅂ, 아니 이 친구야. 6은 악마의 숫자라고! 6이 네 개나 있다면 그건 '악마악마악마악마'라는 뜻이라고!! 그야말로 사악한 주문 말이야."

"오! 그렇군. 맞아, 악마의 소굴보다 더 사악한 것은 없지. 그런데 주문은 어떻게 알아낸 거야?"

"흠, 이 천재 제임스도 이 수수께끼를 알아내는 데 꽤 애를 먹었지. 3일이나 걸렸거든. 처음 여기를 발견하고 들어가려는데 도무지 알 수가 없었지. 그래서 '논리적으로' 1111부터 눌러보기 시작했지. 1112, 1113... 숫자가 커질수록 난 느낄 수 있었지. 내가 목숨을 건 도박을 하고 있다는 걸. 그 압박감 탓에 숫자를 잊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순간도 있었어! 엄청난 위기였지. 하지만 난 개의치 않았어! 왜냐면 나 제임스는 모험을 좋아하니까. 게다가 이 암호체계야말로 바로 내 지적 호기심을 채울만한 것이었지. 그리고 마침내 나는 알아냈지. 이 암호가 6666 이라는 것을. 나의 놀라운 통찰력을 통해서.

"그럼 3일 동안 이걸 일일이 다 눌러본 거야?" 피터가 물었다.

"그 무엇도 제임스를 막을 수는 없지." 제임스는 피터의 질문을 가볍게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는 깨달았지. DVD가 악마의 소굴(DeVil's Den )이라는 뜻임을."

"놀랍군요. 제임스!" 존은 그의 끈기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자, 들어가자고"

존과 일행은 DVD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DVD 상점 안에는 수만 개의 DVD가 꽂혀있었다.

“이것 봐봐, 바로 여기야. 악마의 물품을 파는 곳이지. 악마에 대한 모든 자료들이 있다고.”

제임스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까 패리호터도 여기서 가져온 거야?” 피터가 물었다.

“물론. 하지만 패리호터는 아무것도 아니야. 저길 봐, 저쪽에서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지?”

제임스가 빨간 글씨로 18이라고 써진 코너를 가리켰다.

“저기에는 그야말로 온갖 악마의 자료들이 가득하더군. 살육과 공포, 그리고.... 사랑 같은.”

“오, 맙소사. 진짜야?”

피터가 다가가 DVD 하나를 꺼내었다. 그리고 케이스의 표지를 보더니 질겁을 하고는 떨어뜨렸다.

“윽 징그러. 제임스, 이 징그러운 모습은 뭐야?”

떨어진 DVD 표지에는 두 남녀가 키스하는 모습이 있었다. 존은 그것이 지금은 사라진, 과거 사랑하는 사람끼리 흔히 했던 행동이라는 걸 알았지만 입을 닫았다.

“흐흐흐, 봤지? 그게 바로 키스라는 거야.”

호들갑 떠는 피터를 보며 제임스는 자기는 다 안다는 듯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키스? 그게 뭔데?”

“서로 입술을 맞추고 부비는 거지.”

“왜 그러는 건데?”

“사랑의 표현이지.”

“근데 왜 입술끼리 부벼야 하는 거지?”

“옛날에는 이런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했지. 비위생적이고 미개하게 말이야.”

피터는 비위생적인 남녀 간 신체 접촉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나저나 제임스, 내 부탁은 언제쯤...”

“아참, 내 정신 좀 봐. 영감, 그거 가져와 봐.”

제임스가 올빼미 메모리스틱을 받아 들고 카운터에 있는 DVD플레이어로 향했다. 버튼을 누르자 DVD 스택이 스르륵 빠져나왔다. 제임스가 스택 위에 올빼미를 대충 놓고 다시 버튼을 누르자 스택이 스르륵 들어가며 닫혔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올빼미는 덜 닫힌 스택에 엉성하게 끼인 채로 제임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제임스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DVD플레이어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존은 뭔가 잘못된 것 같아 보였지만 전문가인 제임스를 믿고 그저 지켜보기로 했다.

“응? 왜 재생이 안 되지?”

제임스가 재생 버튼을 몇 번 누르고 DVD 플레이어와 모니터를 쾅쾅 때려댔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존, 불행히도 이 메모리스틱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제임스, 내 생각에는 말이야, 이걸 혹시 여기에 꽂아야 하는 게 아닐까?”

존이 DVD플레이어 옆에 놓인 PC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내가 그걸 하려고 했는데 말야. 역시 늙은이들은 참 이렇게 눈치가 없다니까!”

제임스는 태연하게 PC를 켠 뒤 DVD플레이어에 억지로 끼어 있는 올빼미를 꺼내 PC의 메모리 슬롯에 꽂았다. 잠시 후 새로운 창과 함께 폴더들이 나타났다. NEXT WORLD PROJECT라는 폴더 아래 Cities, Foods, Pandemic, People 등의 폴더와 ‘뉴런’이니, ‘신경’이니 발음하기도 어려운 단어들로 가득한 다른 폴더들도 나왔다. 제임스가 그중 문서 파일 몇 개를 열어봤으나 어마어마하게 많은 단어들과 이해할 수 없는 사진들로 가득한 보고서에 정신이 혼미해질 뿐이었다. 당연히 셋 중 누구도 그 보고서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제임스가 ‘Master Key’라는 폴더를 발견했다. 거기에는 ‘Dvorak_sym9_2mov.mp3’라는 파일 하나가 들어있었다.

“훗, mp3파일이군.”

제임스가 자신 있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게 뭔데?”

“이걸 재생하면 음악이 나오지.”

“음악? 음악이 뭐지?” 피터가 물었다.

“EDM 말이야. 우리 음식점에서 맨날 듣잖아.”

“오! EDM 알지, 알지. 근데 음악은 뭔데?”

“됐다, 잊어버려.”

“뭐야? 나 무시하는 거야?”

투닥거리는 제임스와 피터를 두고 존이 파일을 재생시키려 하자 제임스가 그를 급히 말렸다.

“잠깐! 그건 위험할 수도 있어!”

“왜 그래?” 존이 제임스를 보며 물었다.

“그 제목을 봐!! 이건 우연이 아니라고! 여기 악마의 소굴(DVD)에서 네가 가져온 올빼미 메모리 스틱에 ‘바위 위의 악마’라는 노래를 트는 건 절대, 절대 우연일 리 없어!”

“바위 위의 악마?”

“잘 봐, 그 파일의 이름을. DVORAK! 봤지? 분명 바위 위의 악마[DeVil On Rak(Rock)]라는 뜻이 틀림없다고! 어쩌면 악마의 의식을 하던 바위 제단을 칭송하는 노래일지도.”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럼 sym은 뭘까?”

“상징(symbol)의 약자지. 9번째 상징.”

제임스의 기가 막힌 해석에 존과 피터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세상에, 악마라니... 난... 여길 나갈 거야!”

“멈춰! 피터! 이미 우리는 악마의 모든 비밀을 알아버렸어. 지금 네가 나가면 우리까지 위험해질 수도 있어! 존, 어떡할래? 계속 진행할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어쩌면 지옥문이 열릴지도...”

존은 조금 겁이 났다. 하지만 이걸 건네준 노인이 지옥문을 여는 장치를 자신에게 주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생해 보자.”

“후회하지 마.”

제임스가 긴장한 표정으로 파일을 재생했다. 적막이 흐르더니 잠시 후 스피커에서 방귀 소리 같은 것이 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악마의 방귀인가!!” 피터가 물었다.

“쉿! 기다려 봐!”

잠시 후 스피커에서 오보에 소리와 바이올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존은 이 음악이 뭔지 깨달았다. 드보르작 9번 교향곡 2악장 ‘꿈속의 고향’. 키드슨 할아버지가 좋아하던 음악이었다. 할아버지는 이 음악을 들으며 그리운 눈으로 서쪽 창밖을 말없이 바라보곤 했다. 존은 조용히 눈물을 닦았다.

“뭐야!...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는 내 생에 처음이야. 이게 도대체 뭐지? 악마가 우리를 홀리는 건가? 존, 넌 왜 울어? 벌써 악마한테 홀린 거야?” 피터가 걱정하듯 물었다.

“피터. 이것도 음악이야. 예전에 아주 오래전에는 이런 음악도 있었어. 지금 남은 음악은 EDM 밖에 없지만.”

“뭐? 이게 음악이라고? 맙소사. 너무 아름다운데...”


음악이 멈췄다.

눈을 감고 추억에 젖어있던 존은 눈을 떴다.

"제임스, 고마워. 네 덕분에..."

제임스에게 감사를 전하려 돌이키던 존은 흠칫 놀랐다. 제임스와 피터가 자리에 서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너희도 감동받았구나?"

존이 둘에게 말을 건넸지만 그들은 아무런 반응 없이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존은 조금 무서웠다.

"제임스, 피터! 왜 그래? 정신 차려!"

존의 말에 둘은 몸서리를 한 번 치고 원래대로 돌아왔다.

"둘 다 그렇게 눈물까지 흘릴 정도로 감동받은 거야?"

피터가 끄덕였다. 하지만 제임스는 지옥문이 열릴 거라던 본인 해석이 완전히 빗나가 지존심이 상했는지 "난 안 울었거든?"하며 괜한 심통을 부렸다.

“제임스, 고마워. 덕분에 여기 뭐가 들었는지 알게 됐어.” 존이 말했다.

“하하하, 내가 뭐랬어? 제임스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없다니까!”

존의 칭찬에 금세 자존심을 회복한 제임스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근데 여기 들어있는 나머지 파일들은 뭘까? 음악 말고 다른 것들도 잔뜩인데 알 수가 없단 말이야.”

“글쎄, 이걸 준 노인은 나한테 ‘똑똑한 사람’을 만나면 전해주라고 했어. 그 사람은 이게 뭔지 알 수 있겠지?”

“그럼, 그럼. 근데 그건 다음에 생각하고 맥주나 한잔하러 가자고!! 이 제임스가 다 해결해 줬으니 맥주는 존이 사고!!"

일행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악마의 소굴을 떠나 근처 펍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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