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휘파람 존 (John the whistle)
도시 끝자락의 밤은 어둡고 조용했다. 별들이 땅을 조요했고 드문드문 보이는 불빛은 별처럼 말없이 빛났다. 그곳은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진 영원한 밤하늘이었다. 존의 마음이 그랬다.
어둠에서 슬며시 나온 그림자 셋이 빛과 어둠을 지나 결국 가장 요란한 불빛으로 들어갔다.
존, 피터, 제임스가 펍으로 들어서자 시끄러운 EDM이 그들의 귀를 때려댔다. 펍의 요란한 음악과 달리 그곳의 대부분은 차분한 규정복 차림의 등록인원들이었다. 존 일행은 그들을 지나 구석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맥주를 시켰다. 존의 옆 테이블에는 깡마른 남자 둘이 한창 논쟁 중이었다. 그들은 규정복 사람들이 늘 그렇듯 자기가 도시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 목청껏 어필하고 있었다.
“내가 10분마다 빨간 버튼을 안 누르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도시의 전력이 끊어진다고!”
“허, 그래? 나는 5분에 한 번씩 레버를 위로 올렸다가 내려야 한다고! 안 그러면 수도가 끊긴다고! 물이 전기보다 더 중요한 건 알지? 게다가 내가 너보다 더 여러 번 일한다는 건 내가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뜻 아니겠어?”
“멍청하기는. 그 말은 반대로 내 일의 가치가 더 높다는 거야!”
“뭐? 멍청? 그 말은 내가 바보라는 거야?”
논쟁은 곧 주먹다짐으로 번졌다. 그러자 2미터 덩치의 펍 주인이 그들에게 다가가 늘 있는 일이라는 듯 무심히 둘을 문밖으로 던져 버렸다.
“다들 대단해. 정말 중요한 일을 하며 살고 있어. 우리들만 빼고 말야.” 존이 말했다.
“존, 무슨 말이야! 우리도 중요한 일을 맡고 있다고! 우리 같은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 봐! 어떻게 되겠어? 피터, 네가 요새 가장 열심히 하는 일이 뭐지?” 제임스가 피터를 보며 물었다.
“음, 마법연습?”
“맞아! 그럼 네가 없다면?”
“마법 같은 건 없는 세상이 되겠지?”
“맙소사, 마법 없는 세상이라니, 그야말로 재앙이 따로 없군!”
“그런가? 마법 없어도 딱히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은데?” 존이 대꾸했지만 제임스는 존을 막아서며 자기 논리를 이어갔다.
“존, 존.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고! 우리? 우리는 세상의 균형을 맞추는 존재들이야! 우리가 없다고 생각해 봐. 세상은 저런 빨간 버튼에만 집착하는 변태 싸이코들만 남을 걸! 그리고 분명 우리 같이 도태되는 놈들도 생기겠지. 싸이코면서 부랑자인 놈들이 말이야. 저 놈들은 ‘거기 먹을 것 좀 주쇼!‘ 대신 ‘거기 빨간 버튼 좀 주쇼!‘ 할 놈들이라고!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그나마 우리처럼 젠틀하고 선한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워주고 있다는 사실에 저놈들이 감사해야지! 쟤네 좀 봐! 이 즐거운 펍에서 일 얘기로 싸운다는 게 말이 돼? 우리마저 없었다면 온 세상이 싸움터가 됐을 거라고!”
“음... 그런가?”
“이런, 이런. 존, 아직도 의심하고 있군. 네 문제를 누가 해결해 줬지?”
“물론, 제임스 너였지.”
“만약 내 다양한 경험과 위대한 업적들 없이, 물론 나의 총명함을 빼놓아서는 안 되겠지만, 그러니까 내가 저 샌님들처럼 일에만 빠진 채로 살았다면 너의 그 메모리스틱 내용을 알아낼 수 있었을까?”
“아마 힘들었겠지.”
“그것 보라고! 다양성! 얼마나 중요한 거냐고!”
“다양성은 중요하지. 네 말이 맞아. 알려줘서 고마워, 제임스"
"헤이! 너희 머리 아픈 얘기 그만해! 여기 봐! 맥주가 울고 있잖아!“ 피터가 맥주잔에 맺힌 물방울을 보며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빨리 건배나 하자고! 자, 우리 문제를 해결해 준 제임스를 위하여!”
피터가 소리 높여 건배를 외치자 여기저기서 다른 제임스들도 함께 환호했다.
피터와 제임스는 신나서 맥주를 마셔댔다. 타인에게 도움을 줬다는 뿌듯함, 그리고 뭔가 생산적인 일을 했다는 것에 잔뜩 흥이 나 있었다. 존도 그 분위기에 휩쓸려 함께 마셨다.
“잠시 소변 좀 보고 올게.”
존은 화장실로 향했다. 그 역시 오랜만에 생산적인 일을 했다는 뿌듯함과 적당한 취기 덕에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볼일을 보며 휘파람을 흥얼댔다. 존이 눈을 감고 휘파람을 불고 있을 때 누군가 존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 그게 무슨 소리요?”
존의 옆에서 소변을 보던 덩치 큰 비규정복의 남자가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그의 얼굴은 덥수룩한 수염으로, 그의 팔뚝은 문신으로 가득했다.
“거슬렸습니까? 미안합니다.”
“아니, 그냥 신기해서 물어봤소. 그 소리 그게 뭐요?”
“이건 휘파람이라는 건데요?”
“뭐라고요?”
“지금 제가 입으로 낸 소리를 휘파람이라고 합니다.”
“맙소사, 내 평생 그런 소리는 처음이오!”
그는 놀랍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홀 안으로 돌아갔다. 존이 볼일을 마치고 홀 안으로 돌아왔을 때 또 다른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말이라니까! 입으로 이렇게 후후 멜로디를 만들고 있었다고! 생전 처음 듣는 소리였다니까! 아, 저기 저 사람이야!”
소란의 중심에 있던 덩치 큰 사내가 존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헤이! 휘파람 맨! 여기 와서 그 멋진 것 좀 보여줘! 이놈들이 당최 안 믿어서 말이야!”
존이 손사래를 쳤지만, 덩치 큰 사내는 부탁을 멈추지 않았다. 평소라면 끝까지 거절했을 존이었으나, 적당한 취기와 오랜만에 느낀 성취감에 기분이 좋았던 존은 휘파람을 불기로 했다. 존은 테이블 위로 올라갔다.
“자! 조용히 해! 주인장! 그 EDM 좀 꺼주시오!”
펍의 모든 이목이 존에게 모였다.
“휘파람 맨! 이름이 뭐요?” 누군가 외쳤다.
“아, 저는 존입니다.”
“들었지? 우리 친구 존이 ‘휘파람’이라는 걸 불어줄 거야! 다들 조용히 하고 들어! 안 그러면 내가 엉덩이를 확 차버릴 테니까!” 덩치 큰 사내가 외쳤다.
존은 좌우로 고개를 돌려 주위를 봤다. 사람들 시선이 부담스러웠지만, 이내 ‘그까짓 거, 한번 하지 뭐.’ 하는 생각으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메모리스틱 속 음악 ‘꿈속의 고향’을 휘파람으로 불기 시작했다. 구슬픈 멜로디가 홀 안을 조용히 채웠다.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
옛 터전 그대로 향기도 높아
지금은 사라진 동무들 모여
옥 같은 시냇물 개천을 넘어
반딧불 좇아서 즐기었건만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
휘파람을 부는 동안 존의 머릿속엔 아내와 아들과 함께했던 시절, 그리고 그의 어린 시절 작고 행복했던 추억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휘파람이 끝날 때 즈음 존은 울고 있었다. 그리고 홀 안에는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존은 그제야 민망함을 느끼며 눈을 떴다.
'어?'
홀 안의 모든 사람이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존은 머쓱해 조용히 테이블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사람들은 미동 없이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존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어, 저기 여러분? 다들 괜찮으세요?"
존이 물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여러분! 정신 차리세요!!"
그러자 사람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원래대로 돌아왔다.
“봤지! 봤지! 저게 휘파람이라는 거야!”
덩치 큰 사내도 정신이 들었는지 흥분해 소리쳤다. 그러자 사람들은 “휘파람 존!(Whistle John) 휘파람 존!”을 외쳐댔다. 존은 생전 처음 받아보는 환호가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그것이 고작 휘파람 따위에서 비롯됐다는 사실도 민망했다.
“여러분! 진정하세요!”
존의 외침에 다시 정적이 흘렀다. 홀 안의 사람들 모두 존을 주목했다. 존은 사람들의 반짝이는 눈빛들이 부담스러웠다. 특별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던 존이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이며 대충 둘러댔다.
“시간도 늦었는데 다들 집으로 가시죠. 내일도 열심히 살아야죠.”
그 말이 끝나자 펍의 사람들이 갑자기 펍 밖으로 나가 집으로 향했다. 심지어 펍 주인도 집으로 돌아갔다. 텅 빈 펍에 존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존은 황당했다. 그는 뒤늦게 피터와 제임스를 찾았지만, 그들도 집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뭐야? 다들 갑자기 왜 그러지? 내가 뭘 잘못했나?’
존은 한참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집으로 돌아간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존은 큰 거리로 나갔다. 거리는 어두웠지만 간간이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존은 사람들을 피해 길 한쪽 구석으로 걸어 집으로 향했다. 조금 전까지 왁자지껄했던 펍의 잔향 탓인지 왠지 더 쓸쓸했다. 그는 조금 전 휘파람과 함께 했던 따뜻한 추억을 떠올렸다. 다시 그 행복감에 젖고 싶었다. 존은 휘파람으로 다시 꿈속의 고향을 흥얼거렸다. 몇 걸음 못 가 그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두운 거리의 사람들이 자리에 멈춰 존을 보며 울고 있었다. 존은 섬뜩했다.
“왜들 그러시죠?”
하지만 그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실례지만 가시던 길들, 마저 가시겠습니까?”
그러자 울고 있던 사람들이 다시 각자 길로 가기 시작했다.
존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자리에 잠시 멈추십시오!”하고 외쳤다.
그러자 걷던 사람들이 다시 자리에 멈췄다. 존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존의 휘파람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존의 명령에 따른다는 것이었다.
‘맙소사. 이게 무슨 일이지? 제임스의 말대로 정말 그 음악에 악마의 힘이라도 있었던 걸까?’
존은 당황스러우면서 흥분됐다. 어째선지 존의 휘파람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존의 말에 따랐다.
‘맙소사. 뭐야! 내가 사람들을 조종하다니! 혹시 다른 데서도 통하려나?’
존은 최고급 호텔로 향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호텔 입구를 서성이자 호텔 직원들이 나와 부랑자를 쫓아내려 했다. 존은 휘파람을 불었다. 하지만 존의 기대와 달리 그들은 아랑곳 않고 존을 몰아냈다.
‘이게 아닌가?‘
존은 다시 휘파람을 불었다. 꿈속의 고향을. 그러자 호텔 직원들이 존의 명령에 따르기 시작했다.
‘이 노래의 힘이었군!’
존은 스위트 룸을 빌렸다. 룸서비스도 잔뜩 시켰다. 따뜻한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온갖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킹사이즈 침대에 누운 존은 오늘 있었던 일들과 갑자기 벌어진 행운을 떠올렸다.
‘이거 정말 엄청난 걸! 내일은 뭘 하지? 맥주를 무한정 먹어볼까? 아니면 하루 종일 따뜻한 물로 샤워를? 그것도 아니면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제일 비싼 음식들을 모조리 시키고 한입씩만 먹고 버려볼까? 아 참, 제임스와 피터를 불러서 함께 해야겠군! 그래. 그거 참 좋은 생각이야!’
한동안 부푼 꿈에 빠져 있던 존은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불편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이건 도둑질이나 마찬가지야. 아무런 노력 없이 이런 것들을 즐기다니. 클레오나 칼이 이런 나를 봤다면 분명 부끄러워했을 거야.’
존은 자신이 잘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옷을 입었다. 그리고 어지럽혔던 스위트 룸 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침구류를 정리하고 욕실과 바닥의 머리카락을 주워 휴지통에 버렸다. 그리고 탁자에 놓인 메모지에 ‘오늘 저녁 따뜻하고 훌륭한 식사와 아늑한 잠자리를 제공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이 비용은 언젠가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언젠간 정말로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존은 호텔 밖으로 나왔다. 새벽 공기가 제법 쌀쌀했다. 거리의 사람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존은 텅 빈 도로를 걸어 거처로 향했다. 그는 하늘을 쳐다봤다. 여전히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밤하늘 끝은 이제 밝아오고 있었다. 존은 클레오와 칼을 떠올렸다. 그들이 다시 존에게 미소를 보내주었다.
‘휘파람 존’은 텅 빈 거리의 한가운데로 걸으며 휘파람을 불었다. '아, 목동아(Danny Boy)'의 멜로디가 존의 걸음 뒤로 차분히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