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는 "크롱" 뿐이지만 엔딩 크래딧엔 넘버 투

조용히 곁을 지키는 존재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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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아이들과 영화관에서 《뽀로로 극장판 스위트캐슬 대모험》을 봤다. 쿠키 영상을 기다리며 엔딩 크래딧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 위로 많은 이름들이 올라갔다.


성우 소개 자막이 나왔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뽀로로 – 이선

크롱 – 이미자

포비 – 김환진

루피 – 홍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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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크롱' 때문이었다. 성우 이름이 내 어릴 적 별명과 같아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이름이 올라간 순서였다.


크롱은 "크롱"이라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


기쁠 때는 "크롱크롱"

슬플 때는 "크로오오옹...."

화날 때는 "크로오오옹!!!!"

놀랄 때는 "크롱~~~~"


언제나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에디, 따뜻하게 말해주는 루피보다 크롱의 대사량은 훨씬 적었다. 이번 영화에서는 마법사로 나오는 버니의 분량이 더 많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크롱은 엔딩 크래딧의 두 번째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었다.


크롱이 "크롱"이라는 대사 한마디로도 넘버 투 자리에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뽀로로의 세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기 때문이다. 뽀로로가 기쁠 때 가장 먼저 눈을 마주치는 친구이고, 사고 칠 때 늘 곁에 있는 존재다. 그 관계가 크롱을 특별하게 만든다.




우리의 일상도 조금 닮아 있지 않을까.

"밥 먹자", "잘 다녀와", "사랑해"

하루를 채우는 말들은 비슷하고 단순하다. 하지만 그 말들이 모여 아이와 남편의 삶이라는 영화 속에서 가장 든든한 배경이 되어 준다.


주부로 살다 보면 하루를 길게 설명할 말이 많지 않다. 밥하고 아이 픽업하고 집안을 정리한다. 특별한 성과를 적을 일도 없다. 그저 같은 자리에 있고, 같은 일을 반복할 뿐이다.


세상은 종종 얼마나 많은 말을 했는지, 얼마나 눈에 띄는 일을 했는지로 가치를 묻는다. 하지만 뽀로로의 엔딩 크레딧은 다른 기준으로 이름을 올렸다. 분량이 아니라 관계로, 소리가 아니라 존재로 말이다.


오늘도 가족 곁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우리들. 화려한 수식어는 없어도 우리 집이라는 영화 속에서 가장 중요한 주연급 파트너다.


내가 하는 사소한 일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 엔딩 크레딧 두 번째 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크롱을 떠올려 보려 한다. 나의 가치는 대사 분량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해지는 온기에 있으니까.



+ 남편은 크롱의 성우가 "크롱" 하나로 모든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에 대단한 거라고 했다. 그래서 두 번째에 있는 거라고.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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