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표정은 어땠을까

아이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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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같은 요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한 아이와 엄마를 마주친다. 학원 버스를 기다리는 듯하다. 길을 지날 때면 자연스레 시선이 그들에게로 향한다.


핸드폰만 바라보는 아이, 아이만 바라보는 엄마.


엄마는 아이의 얼굴을 손끝으로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예뻐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다. 아이의 시선은 단 한 번도 엄마에게 향한 적이 없다. 손에 든 핸드폰에만 몰두해 있다.

바람이 차갑던 어느 날, 엄마는 무릎을 구부려 아이를 꼭 안고 있었다. 아이는 엄마의 어깨너머로 핸드폰을 붙잡고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들의 사정을 모른 채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다. 아이가 하루 중 유일하게 핸드폰을 보는 시간일 수도 있다. 둘만의 익숙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아이가 엄마를 바라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점이 조금은 안타까웠다.


나는 아이들과 마주할 때 어떤 표정과 시선으로 서 있을까. 아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핸드폰을 멀리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일상이 폰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쉽지 않다. 생필품 검색하느라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날도 있었다. 시험공부한다며 노트북 앞에서 아이들의 말을 건성으로 흘려보내기도 했다. 화면에 마음을 빼앗긴 엄마. 그렇게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이 떠오르며 미안해졌다.

그러고 보니 아이가 핸드폰만 보고 있더라도 그 아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엄마가 새삼 대단해 보인다.




며칠 전 아침, 둘째와 집을 나섰다. 문 열자마자 찬 공기가 훅 들어왔다. 각자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었다. 사거리 횡단보도 앞, 빨간불에 멈춰 섰다. 그때 옆에서 "엄마!"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마다 할머니와 등교하는 세 남매였다. 아이들은 환하게 웃으며 맞은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길 건너편에는 롱패딩에 모자를 푹 눌러쓴 여성분이 서 있었다. 그런데 표정이 화난 것처럼 굳어 있었다. 저분이 맞나 싶어 눈동자 굴려 아이들과 번갈아 쳐다봤다.


“우리 엄마 밤에 출근하고 지금 집에 오는 거야."

여자아이가 친구에게 말하며 다시 엄마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맞은편에서 여전히 굳은 얼굴로 서 있던 여자분은 연신 지퍼 올리는 시늉을 했다.


잠시 후 초록불이 켜졌다. 남자아이가 먼저 달려가 엄마 품에 안겼다. 이어 여자아이도 엄마 팔에 매달렸다. 그제야 엄마 얼굴에 미소가 조금 번졌다. 점퍼를 매만져주며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서서히 부드러워졌다.


왜 처음부터 웃어주지 않았을까.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지만 나는 괜히 민망했다. 그래도 아이들이 엄마를 향해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아마 엄마도 마음은 누구보다 반가웠을 것이다. 다만 피곤한 몸으로도 아이들 감기 들까 걱정이 먼저였겠지.


생각해 보면 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멀리서 나를 향해 뛰어오는 아이에게 나는 반가움보다 "뛰지 마, 다쳐!"가 먼저 나온다. 하교하는 아이의 얼굴이 보이면 화하게 웃다가도, 점퍼와 가방이 흘러내릴 듯한 모습을 보면 금세 눈살이 찌푸려진다. 아이에게 가장 먼저 건네는 말은 "옷 제대로 입어야지"이다.


걱정에 시선을 빼앗긴 채 아이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날이 많았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도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부모만이 할 수 있는 사랑의 방식이기도 하다.


아이가 가끔 징징거리며 말할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예쁘게 말하라고 한다. 하지만 아이의 징징거림도 어쩌면 사랑의 표현일지 모른다. 엄마니까, 편하니까, 마음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 역시 걱정스러운 마음을 전할 때 잔소리 대신 조금 더 예쁘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


핸드폰 너머에 마음을 두지 않고, 걱정이 앞서는 순간에도 먼저 사랑을 보여주는 엄마. 아이가 이름을 부르며 달려올 때, 아이의 얼굴을 가장 먼저 바라보고 웃어줄 수 있는 엄마.


오늘 아침, 아이가 말을 걸 때마다 고개를 돌리느라 분주했지만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아이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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