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배려하는 어른이면 좋겠습니다
일을 마치고 버스에 올라 뒷좌석 창가에 앉았다. 해가 기울기 시작한 늦은 오후, 밖은 벌써 어둑어둑해졌다. 정류장마다 사람들이 탔다. 자리는 모두 찼고 대여섯 명 되는 사람들이 손잡이를 꼭 잡고 서 있었다.
한 아빠가 유모차를 밀며 천천히 탑승했다. 네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양손을 모은 채 유모차에 앉아 있었다. 아빠는 유모차 방향을 돌리려고 했다. 주변 승객들은 자연스럽게 몸을 옆으로 비켜 주었다. 뒤따라 올라탄 사람들은 잠시 멈추고 기다렸다. 배려하는 모습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두 정거장이 지나자 아빠는 내릴 준비를 했다. 유모차를 끌어 문 앞으로 옮기는 동작이 익숙해 보다. 자상한 아빠시네 생각하며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버스가 속도를 줄이며 멈췄다. 문이 열렸다.
“에이 씨, 정류장에 대야지 씨.”
들으란 듯 내뱉는 남자의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한숨과 짜증 섞인 음성은 어수선한 버스 안을 가르며 퍼져나갔다. 열려있는 문 앞으로 나무 기둥이 보였고 오른쪽에는 낙엽이 담긴 비닐봉지가 놓여 있었다. 앞차가 정차해 있어 버스가 정류장보다 조금 뒤에 섰던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유모차를 내리지 못할 정도의 문제는 아니었다. 주변 승객들도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아이가 앉아 있는 바로 뒤에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 감정이 어린아이의 작은 세계에는 닿지 않았기를 바랐다.
얼마 전 저녁, 첫째 아이가 울면서 집에 들어온 날이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통화하다가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올라오는 동안 전화기에 대고 계속 화를 냈다고. 아이는 아주머니의 표정과 목소리가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아이에게 놀랐겠다고 다독이면서 속으로 화가 났다. 아이가 함께 있는 공간에서, 아이가 보고 듣는 자리에서 어른이 조금만 더 조심해 줄 수 없었던 걸까.
며칠 뒤 아이는 1층에서 그 아주머니를 또 만났다고 했다. 다행히 그날은 통화 중이 아니어서 엘리베이터를 함께 탔다고. 어디에 사는 지도 알아냈다며 말하는 아이의 표정은 해맑았다. 그 모습을 보며 웃었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쓰렸다.
돌이켜 보면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아이들 등교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습관처럼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메시지 확인하고, 뉴스 읽고, 짧은 영상들을 보곤 했다. 어느 날 고개를 들었는데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문득 ‘아이들은 폰만 보고 걷는 어른을 보면 어떻게 느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내 아이 앞에서는 조심하려 애쓰면서 다른 아이들 앞에서는 무심하게 행동하고 있던 건 아닐까. 그날 이후 중요한 연락이 아니라면 등하굣길에는 휴대폰을 꺼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에서 어린아이가 말똥말똥 주변을 구경하고 있으면 그 순간만큼은 폰을 내려놓는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눈에 담는다. 스쳐 지나가는 작은 몸짓과 표정도 오래 기억한다. 오늘의 내 행동이 누군가의 어린 시절 한 장면이 되어 마음 어딘가에 남을지도 모른다.
보고 배우는 아이들을 위해, 어른은 배울 것을 보여주는 사람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