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보다 과정을 배우는 시간
첫째 아이가 체스에 푹 빠져 있다.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배워 오더니 하루에도 몇 번씩 아빠와 대국을 벌였다. 아빠가 좀 봐주기도 했지만 결과는 늘 아빠의 승리였다. 나는 체스 규칙조차 모르니 두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전문 용어들은 낯설기만 했다.
어느 날, 아이가 학원에 다녀오면서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피라미드 공격법(?)을 생각해 냈다며 아빠랑 다시 체스를 두어야겠다는 것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도전장을 내밀었다.
잠시 후 “와! 이겼다!!” 하는 환호가 들려왔다. 남편에게 봐줬냐고 물으니 방심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아이에게는 충분히 기분 좋은 승리였다.
체스로 가까워진 부녀의 흐뭇한 모습을 보니 영화 《승부》가 떠올랐다. 바둑계의 전설 조훈현과 그의 제자 이창호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이창호는 스승이 가르쳐준 대로 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을 찾으려 한다.
"선생님 바둑은 화려하고 강하지만 저하고는 맞지가 않아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바둑을 찾을 거예요."
스승은 제자를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이창호는 편지를 남기고 떠나려 한다. 버스터미널에서 두 사람은 다시 마주한다.
"답이 없는 게 바둑인데 내가 너한테 답을 강요했다. 미안하다. 어설프게 뛰느니 또박또박 걷는 게 낫지. 네 바둑을 찾았으니 그걸로 됐어."
늦은 사과와 담담한 이해. 경쟁을 넘어 서로를 통해 성장하는 관계였다.
남편과 딸이 체스를 둘 때, 남편은 아이에게 "그건 왜 그렇게 했어?" 하고 묻는다. 정답을 알려주기보다, 아이 스스로 생각해 방법을 찾게 한다. 아이만의 체스를 찾도록 기다리는 모습이 조훈현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며칠 전엔 첫째와 루미큐브를 했다. 아빠랑 해서 이기면 엄마한테 도전하라고 했었는데, 아빠를 두 번이나 이기고 나더니 나에게 온 것이다. 아이는 맞은편에 정자세로 앉았다. 괜히 나도 손에 땀이 났다. 마지막 칩을 내려놓는 순간까지 서로의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였다.
내가 이겼다. 아이는 잠깐 눈살을 찌푸리더니 이내 가지고 있던 칩을 내밀며 어디에 둘 수 있는지 물었다.
다음은 둘째 차례였다. 윷놀이판을 가지고 왔다. 아이가 "모!"를 외치며 윷을 높이 던지고 굴려보기도 했지만 나오는 건 '개'나 '걸'이었다. 내가 말 세 개를 업어 도착점에 가기 직전, 아이는 내 말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윷을 세 번 연속으로 던져 자기 말을 모두 도착시킨 아이는 두 팔을 번쩍 들고 흔들었다.
두 번째 판을 시작했다. 아이는 윷을 가지런히 정리해 거의 내려놓다시피 던졌다. 윷 하나가 반 바퀴 돌아 '도'가 나왔다. 내 말이 앞서자 아이가 이번에는 윷을 앞으로 세게 던졌다. 윷이 베란다 유리에 부딪혔다. 멈춰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만하자고 하니 아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집에서는 누군가 져 주기도 하지만 세상은 늘 그렇지 안을텐데. 내가 일어나려 하자 아이는 재빨리 책장으로 달려가 '고피쉬'를 꺼내왔다.
문득, 조금 전 첫째와 게임을 하며 긴장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사실 나도 지기 싫었다. 그러니 둘째를 나무랄 일만은 아니었다.
첫째의 체스 실력이 요즘은 부쩍 늘어 아빠가 겨우 이기는 날이 많아졌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절대 체스는 배우지 않으리라. 운이 통하지 않는 게임에서는 아이에게 지기 싫으니까.
생각해 보면 솔직하게 지기 싫다는 마음을 표현하고 울다가도 금세 도전하는 둘째야말로 나보다 훨씬 용감한지도 모르겠다.
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결과보다 과정을 즐기는 사람, 한 번의 패배에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 결국 가장 멀리 간다. 경쟁은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서로를 통해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아이들과의 게임 속에서도 그 사실을 새삼 배운다.
오늘도 아이들과 마주 앉아 게임판을 펼친다. 아이들이 지고 이기며 만들어가는 성장의 순간들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물론 나는 여전히 체스를 배우지 않을 생각이지만.